용(龍), 구름과 비를 부리는 신성한 존재…역사 곳곳에 실존

연유선
2024년 01월 11일 오후 6:00 업데이트: 2024년 01월 11일 오후 6:14

오늘날 용은 신화 및 전설에 등장하는 상상의 동물로 여겨지지만, 수많은 역사 기록이 남아 있는 생물입니다.

특히 동아시아에서는 신성한 동물, 즉 영수(靈獸)라고 하여 매우 귀하게 여겼습니다.

용이 모습을 드러내면 세상이 크게 변할 전조라고 믿기도 했죠.

일반적으로 많이 알려진 용의 모습은 9가지 종류의 동물의 모습을 합성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머리는 낙타, 뿔은 사슴, 눈은 토끼, 몸통은 뱀, 머리털은 사자, 비늘은 잉어, 발은 호랑이, 발톱은 매, 귀는 소와 닮았습니다.

상서롭고 신령한 동물인 용은 먹구름을 동반한 번개와 천둥, 폭풍우를 일으키고 물을 파도치게 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용은 신통력을 써서 하늘 꼭대기나 지하 깊은 곳까지 순식간에 도달하거나, 몸의 크기와 형태를 마음대로 바꾸는 능력도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신통력 때문에 용은 천계를 통치하는 옥황상제의 사자로 받들어졌습니다. 불교에서 용은 천왕팔부중의 하나로 불법을 수호하는 호법신입니다.

그런 까닭에 중국의 역대 황제들은 자신을 용에 비유했습니다.

황제의 얼굴은 ‘용안(龍顔)’, 황제의 옷은 ‘용포(龍袍)’, 황제의 보좌는 ‘용좌(龍座)’, 황제의 눈물은 ‘용루(龍淚)’, 황제가 타는 수레는 ‘용거(龍車)’라고 부르게 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죠.

이는 조선의 왕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조선의 왕은 ‘오조룡보’(五爪龍補)를 입었으며, 왕세자는 ‘사조룡보’(四爪龍補)를, 왕세손은 ‘삼조룡보’(三爪龍補)를 입었습니다. 심지어 경복궁 근정전 왕좌의 천장에는 발톱이 7개인 칠조룡(七爪龍)이 그려져 있습니다.

우리나라 역사에서도 용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14년(서기 553) 봄 2월, 임금이 담당관에게 명하여 월성 동쪽에 새 궁궐을 짓게 하였는데, 누런빛 용이 그곳에서 나타났다. 임금이 기이하다 여기고 절로 고쳐 짓고서 황룡(皇龍)이라는 이름을 내렸다.” 

-<삼국사기> 제4권 신라본기 제4 진흥왕 14년-

지금은 터만 남아있는 경주의 황룡사는 원래 왕궁터였으나 황룡이 나타나 사찰로 지어진 곳입니다.

신라 진흥왕 때는 용신을 섬기는 팔관회가 국가 차원에서 처음으로 개최되기도 했습니다.

나라가 홍수와 가뭄으로 어지러울 때 동양인들은 오히려 재난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고 용을 위로하는 제의를 베풀었습니다.

“자못 우리들이 정치를 잘못한 것이 그 원인이라, … 그러나 하늘의 못[澤]은 오직 용왕의 주도하는 바라, 용왕의 간청이라면 하늘이 어찌 듣지 않으랴. 이때에 비를 얻는 것은 관리의 효험이 아니고, 바로 용왕의 공입니다.”

-<동국이상국전집> 애사·제문-

태조부터 철종까지 472년의 기록을 담고 있는 조선왕조실록에는 용에 관한 기록이 매우 많이 실려 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은 그 역사 기술에 있어 진실성과 신빙성이 아주 높은 역사기록물이죠.

“병진년에 최해산(崔海山)이 도안무사(都安撫使)가 되었을 때, 치보(馳報)하기를, ‘정의현에서 다섯 마리 용이 한꺼번에 승천(昇天)하였는데, 한 마리가 도로 수풀 사이에 떨어져 오랫동안 빙빙 돌다가 뒤에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하였다.”

-<세종실록>

또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우리나라의 독자적인 용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로 이무기 설화인데요. 뱀이 500년을 지내면 이무기가 되고 이무기가 물에서 다시 500년을 지내면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갈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날에도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성공한 사람에게는 ‘개천에서 용 났다’고 합니다.

용의 해를 맞이해 어려운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성과를 거두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