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마윈 회장이 조기은퇴 결심하게 한 세 가지 배경

WANG HE
2019년 9월 19일 업데이트: 2019년 9월 19일

지난 10일 마윈(馬雲) 알리바바 그룹 회장은 55세 생일을 맞아 1년 전 예고했던 퇴임식을 특별한 이벤트로 치렀다. 이로써 창립 20주년을 맞은 알리바바 그룹은 창립자와 공식적으로 작별을 고하게 됐다.

마윈 회장의 퇴임에 대해 중국 언론들은 “성공적인 인수인계” “경영의 새 패러다임 개시” 등 호평 일색이었다. 한 언론은 “외신 주목 : 세대교체 후에도 여전한 마윈 회장의 위상”이라는 억지스러운 보도를 내놓기도 했다.

마윈은 사회주의 중국에서 인정받은 몇 안 되는 성공한 민간기업인이었다. 마윈 회장을 초기부터 알고 지낸 영국인 금융투자가 던컨 클라크(Duncan Clark)는 저서 ‘알리바바’에서 “중국 재계에서 제2의 마윈을 찾기는 쉽지 않다. 그런 인물은 당분간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한 마윈이 경영자로서는 한창인 55세에 후계자로 가족 대신 전문경영인을 발탁하고 “조기 은퇴해 공익사업 분야에서 제2의 인생에 도전하고 싶다”며 물러났다. 그것만이 퇴임 사유의 전부일까?

클락에 따르면 최근 중국은 국영기업 발전을 추진하며 민영기업 감독을 강화하고 있다. 밑바닥부터 시작해 중국이라는 통제사회에서 거대기업을 일군 마윈은 경영환경의 변화를 사전에 예리하게 포착했을 것이다.

중국 정부와 공산당이 민간기업에 대한 고삐를 죄는 상황에서, 민간기업의 대표적 인물인 마윈 회장으로서는 적잖은 부담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의 퇴임을 이해하기 전에 먼저 그가 퇴임 전 어떤 준비를 했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우선, 재산권 보존이다. 마윈은 2017년 말 기준 보유한 알리바바 지분은 6.4%로 약 28조 5천억 규모다. 마윈은 이중 개인지분 0.2%를 제외한 나머지 99.8%를 국제가족신탁, 해외 자선기금, 카이맨 홀딩스 같은 해외 사업체 형식으로 전환했다. 마윈의 배우자와 후손들은 혼인 관계 변화나 승계 여부와 관계없이 마윈의 신탁 증서에 따라 배분받고 이익을 얻게 된다.

다음은 경영권 유지다. 마윈은 알리바바 그룹 내에 ‘파트너 시스템’을 도입했다. 알리바바 창립 멤버는 18명이다. 2009년 마윈은 자신을 포함한 창립멤버 전원의 총사퇴를 선언하고 새로운 ‘파트너 시스템’을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이 제도는 주식보유 비율에 따라 이사를 선임하는 일반적인 동업개념과는 다르다. 알리바바의 파트너가 되려면 회사 근속 5년 이상, 사내문화에 대한 공감대 및 리더십 보유, 회사 발전에 긍정적인 기여 등 우수사원에 가깝다. 그룹 내 총 파트너 숫자는 2013년 정식 도입 이후 늘었다 줄었다 했는데 2019년 하반기 기준 36명이다.

파트너 시스템의 의미는 회사의 조직문화를 쉽게 바꿀 수 없도록 하면서 마윈 전 회장과 경영진이 총 10% 이하의 지분율로 경영권을 유지할 수 있게 했다는 점이다. 단지 사령탑만 바꾼다고 알리바바에서 마윈의 영향력을 밀어내기란 쉽지 않다. 마윈의 진의가 어떻든 그가 쉽사리 회사에서 손을 떼려 하지 않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어떤 제도와 안전장치를 마련하더라도 사회주의 중국에서 기업 경영권을 집권 공산당으로부터 완벽히 지켜내기란 불가능하다. 경영권과 재산권을 일정 부분 담보한 마윈에게 회사를 먼저 내주는 것은 최대한 실리를 챙기는 수단이기도 했다.

마윈이 이처럼 과감한 결단을 내리기까지는 중국 공산당에 대한 처절한 현실 인식이 기반이 된 것으로 보인다.

첫째, 마윈은 공산당이 낙인찍은 ‘5가지 검은 부류’(黑五類, 지주·부자·반혁명분자·범죄자·우파분자)’의 손자였다는 사실이다.

1964년 태어난 마윈은 어린 시절 ‘문화대혁명(1966-76)’을 겪었다. 마윈에 대해 다룬 책 ‘마윈: 세상에 어려운 비즈니스는 없다’에 따르면, 지방관리로 일하던 마윈의 할아버지가 문화대혁명 때 ‘5가지 검은 부류’로 찍히면서 마윈은 어려서부터 이웃들에게 놀림과 무시를 당했다고 한다.

마윈은 어린 시절의 아픈 기억을 뒤로하고 대학 시절 공산당에 입당했다. 마윈의 당원 신분은 오랜 기간 대외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2018년 중국 공산당은 마윈 회장이 공산당원이라는 사실을 깜짝 공개했다. 알리바바와 함께 중국 3대 인터넷기업으로 꼽히는 텐센트(Tencent)의 마화텅(馬化騰) 회장, 바이두의 리옌훙(李彦宏) 회장은 당원이 아니다.

마윈이 공산당원으로서의 자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의 속내를 가늠해볼 수 있는 발언이 있다. 마윈은 2015년 인터뷰에서 “정부와 연애하되 결혼은 안 해”라고 했다. 마윈의 공산당적을 생각하면 결혼상태에 가깝다는 반응이 많았지만, 마윈 스스로는 일정한 구분을 두고 있음이 분명했다.

둘째, 새로운 ‘재경 관계’의 압박으로 중국의 최고 부호들이 도망가거나 체포됐으며, 죽거나 감옥에 갇힌 일이다.

예를 들어, 최근 몇 년 사이 샤오젠화(肖建華, 밍톈그룹 회장으로 2017년 1월 27일 갑자기 홍콩에서 중국 본토로 납치됐다), 우샤오후이(吳小暉, 전 안방보험 회장으로 징역 18년 형을 선고받고 1백억 위안이 넘는 재산도 몰수됐다), 예젠밍(葉簡明, 화신에너지 회장) 같은 중국 큰손들이 잇따라 조사를 받았고, 하이난 항공 그룹의 왕젠(王健) 회장은 지난해 8월 3일 프랑스에서 돌연사했다. 그 밖에 궈광창(郭廣昌, 푸싱그룹 회장)과 왕젠린(王健林, 완다그룹 회장) 등도 모두 중국 공산당으로부터 심한 압박을 받았다.

중국 공산당 통치 아래에서 사업을 하려면, ‘재경 관계’는 필수이다. 알리바바도 당연히 예외일 수 없다. 2014년 알리바바는 미국증시에 상장됐는데, 이 거래는 중국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민간 부문 파이낸싱으로 알려졌다. 뉴욕타임스의 ‘알리바바 상장 배후의 훙얼다이(紅二代·중국 혁명 원로의 자녀) 승자’라는 제하의 보도에 따르면, 알리바바에 투자한 중국 기업 4곳의 임원 가운데는 2002년 이후 중국 최고 지도부인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을 역임한 20여 명의 후손이 있다. 여기에는 장쩌민(江澤民)의 손자로 하버드대를 졸업한 장쯔청(江志成, Alvin Jiang)도 포함돼 있다.

중국의 ‘재경 관계’는 금전갈취에만 그치지 않고 당내 권력투쟁에 휘말리게 하는 경우가 많다. 베이징 당국은 2015년의 증시재앙을 경제정변이라 규정한 바 있다. 당내 권력투쟁에 기업가와 투자자들이 말려든 사건이었다는 의미다. 마윈으로서는 이런 소용돌이를 피하기 위해 ‘세대교체’를 통해 빠져나가는 것이 최선이었던 셈이다. 마윈의 알리바바 회장직 사임을 공식 발표한 직후, 온라인에서는 마윈이 과거 공개석상에서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다”라고 발언한 영상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셋째, 마윈이 ‘국가사업’과 ‘국제사업’을 한 일이다.

알리바바를 기반으로 마윈은 2002년 타오바오닷컴을 설립하면서 인터넷 쇼핑몰 사업에 발을 들여놓았다. 또한 2013년에는 위어바오를 출시해 인터넷 금융에 손을 댔고, 2015년에는 차이냐오물류를 만들어 크로스 보더 전자상거래를 시도했으며, 2016년에는 신유통(新零, 온라인+오프라인+물류 통합) 제시와 함께 빅데이터 사업에 뛰어들었다.

마윈은 인터넷을 하나의 산업으로 보지 않고, 모든 비즈니스 서비스 분야에 적용할 수 있는 수단으로 여겼다. 그는 알리바바가 사회 인프라의 공급자 역할을 맡게 되리라 생각했다. 그리하여 2014년 마윈은 처음으로 ‘국가기업’이 되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이전까지 중국의 경제인프라인 전력·금융·에너지·통신사 등은 기본적으로 국영기업·국유자본 소유였다. 그러나 오늘날 중국의 민영자본그룹은 소셜네트워크, 전자상거래, 모바일 페이, 부동산, 물류, 미디어 콘텐츠 분야에서 지배적 위치에 있다.

이런 현상은 국가와 국민통제를 강화하는 중국 정부와 공산당으로서는 그냥 놔둘 수 없는 현상이다. 그중에서도 알리바바는 가장 대표적 민간기업이다.

알리바바에 대한 중국 정부의 우려를 드러내는 사례가 있다. 중국의 경제학자 우샤오보(吳曉波)에 따르면, 그는 베이징에서 파견된 고위직 간부 몇 명과 알리바바를 시찰했다. 알리바바의 전자상거래 부서의 벽에는 거대한 디스플레이 화면이 있었는데, 각 성(省)의 상품 수출 거래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빠르게 표시되는 것이 장관이었다. 당시 광둥(廣東)세관에서 세금포탈을 적발한 사건이 있었는데, 알리바바 직원 중 한 명이 별 생각 없이 농담조로 “사실 이런 일은 우리가 있는 여기의 빅데이터가 어떤 부서의 감독관보다 더욱 정확하다”라고 말했다. 이때 우샤오보 옆에 있던 한 중국 정부의 부부급(副部級, 차관급) 간부가 움찔했다고 한다.

이러한 우여곡절을 겪던 중 마침내 마윈에게 은퇴계획을 실행에 옮길 계기가 주어진다. 2017년 1월 10일 마윈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 40분 동안 가진 회담에서 알리바바가 분석한 중국 시장 데이터를 공개하며 미국인 100만 명의 취업을 돕겠다고 밝혔다. 이 회담은 미중정상회담 3개월 전이었다.

소식통에 따르면, 이 때문에 중국 공산당은 마윈과의 웨탄(約談·사전약속을 잡아 진행하는 조사와 교육)을 통해 알리바바가 미국 증시 상장을 폐지하고 국내 A주로 돌아오든지, 퇴임하고 정부에게 지분을 넘기든지 선택하도록 했다. 마윈은 후자를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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