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문한답] 에너지 위기 극복과 탄소 중립,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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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정
2024년 03월 9일 오후 6:34 업데이트: 2024년 03월 9일 오후 7:11

에너지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요?

답변_정용훈 카이스트(KAIST)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교수
한국과학기술원(KAIST)을 졸업한 후 동 대학원에서 원자력 및 양자공학 전공으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주요 연구 분야는 원자력발전소 설계 및 안전 해석, 원자력수소, 해수담수화 등이다.

-‘에너지 위기’가 일상 용어가 된 듯합니다.

“유럽의 가스 수요 증가와 공급 불안으로 시작된 에너지 위기가 현재도 진행 중입니다. 2021년 가을 유럽의 풍력 발전량이 줄고 대체재인 가스의 수요가 늘어나면서 가스 가격이 오르고 있었죠. 여기다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유럽으로의 러시아 가스 공급이 극히 제한되면서 유럽의 가스 가격은 10년간 최고 높았던 가격의 10배 수준까지 치솟는 에너지 위기가 발생했습니다. 저점 대비로는 무려 50배 정도가 오른 것이었습니다. 러시아 가스에 절반 가까이 의존하던 유럽은 안보 문제로 인해 러시아산 가스 비중을 줄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고요. 현재 진정되고 있지만 여전히 과거 높았던 가스 가격 수준에 머물고 있고, 언제 다시 위기가 있을지 알 수 없어 불안합니다. 특히 러시아에 대한 의존을 탈피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액화천연가스로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와 일본의 가스 가격 또한 2020년 여름 MMBTU당 2달러까지 떨어졌던 것이 2022년 봄 40달러 수준으로 무려 20배 상승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고 에너지 사용을 줄일 수 있을까요?

“한 잔에 5천 원 하던 커피 가격이 20배 상승해 10만 원이 된다면 커피 소비는 어떻게 될까요? 아마 거의 제로 수준으로 떨어질 겁니다. 끊기 어렵다는 담배도 한 갑에 10만 원이 된다면 아마 대부분 끊게 되겠죠. 그러나 가스의 경우는 2021년 대비 2022년 3% 줄어드는 데 그쳤습니다. 에너지는 필수재라서 가격이 어떻게 변해도 그 수요는 거의 비슷합니다.”

-다른 나라는 어떻게 대처하고 있나요?

“에너지 위기를 겪으면서 원자력의 역할이 커지고 있습니다. 유럽의 경우 탈원전을 선언했던 벨기에가 원전 2기에 대해 계속 운전 기한을 기존 2025년에서 2035년으로 10년 연장했고, 프랑스도 10년 단위로 지속적인 계속 운전을 추진하면서 현재 50년 운영 허가를 받은 원전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후쿠시마 사고를 겪은 일본도 2023년 5월 기존 60년이던 계속 운전 제한 기간을 연장했습니다.”

“에너지정보문화재단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12월 말 기준 전 세계 가동 원전 439기 중 계속운전을 승인받은 원전은 전체의 53%인 233기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계속운전의 대상이 되는 최초 운영 허가 기간을 초과한 원전은 총 252기로, 이 중 92%에 달하는 233기의 원전이 계속운전을 했거나 계속운전 중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다시 말해 원전 열에 아홉은 최초 운영 허가 기간이 만료된 후 새로운 운영 허가 기간을 받아 운영하고 있습니다.”

-운영 허가 기간을 넘긴 원전은 물리적 수명을 다한 원전이라 위험하지 않을까요?

“아닙니다. 운영허가 기간과 물리적 수명은 전혀 무관합니다. 원전의 설계 수명이라는 의미는 최초의 운영허가 기간을 의미하는데 통상 40년 내외입니다. 운전면허로 따지면 운전면허를 최초 취득 시 부여받는 유효기간에 해당하는 기간이 설계수명의 개념입니다. 수명을 넘어가면 너무 낡아서 망가지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죠. 적성검사 후 운전면허를 갱신하면 새롭게 운전면허 기간을 부여받듯이 최초의 운영허가 기간(설계수명)이 만료되면 안전성 평가 후 새롭게 운영허가 기간(계속운전 설계수명)을 부여받아 운영하는 것입니다.”

-원전 운영 기간은 얼마나 되나요?

“원전 운영을 가장 오래 해온 미국의 경우 최초 운영허가 기간(설계수명)이 40년입니다. 40년으로 최초 운영허가 기간을 정한 것은 원전의 물리적 수명이 아니라 시장에서의 독점이슈 때문이었습니다. 40년 이상 허가해줄 경우 발전사업이 특정 사업자가 장기간 독점할 수 있으므로 40년으로 제한한 것이죠. 이후 허가를 갱신할 때마다 20년씩 추가로 허가를 주고 있습니다. 현재 미국은 총 80년 운영허가를 받은 원전들이 속속 나오고 있고, 원전의 물리적 수명은 80년 이상 100년 정도가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프랑스는 10년마다 안전성 평가를 시행해 운영허가를 연장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떤가요?

“우리나라는 미국과 같이 최초 운영허가를 받을 때 설계수명을 가정하고 30~60년의 운전 기간을 허가받고, 이후 10년마다 주기적으로 평가받아 계속운전 허가를 받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의 규제와 프랑스의 규제를 모두 적용받는 상황이 돼 과도한 규제가 되는 측면도 존재합니다. 차제에 우리나라 계속운전 제도를 미국과 같이 20년 주기의 운영허가 갱신 제도로 통일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렇듯 원전의 계속운전은 물리적 수명이 다한 원전을 억지로 계속 운전하는 것이 아니라, 원래의 안전 성능이 그대로 유지되는 원전을 지속 활용하는 것입니다.”

-원전을 계속운전하면 좋은 점이 있나요?

“경제성입니다. 왜냐하면 40년 정도 운영한 원전은 초기 건설비용이 이미 오래전에 회수돼 자본비용 혹은 건설비용이 없는 공짜 원전이기 때문이죠. 핵연료와 운전원만 있으면 운영할 수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 원전의 발전단가는 2022년 기준 kWh당 52원으로, 가스 발전이 239원, 신재생 에너지가 271원인 것에 비하면 현저히 저렴합니다. 52원에는 건설비용의 감가상각, 핵연료 비용, 기타 운영 비용, 사용후핵연료 관리 비용, 원전 해체 비용, 방사성폐기물 처분 비용 등이 모두 포함됩니다. 특히 사후처리비용(사용후핵연료, 해체, 폐기물 처분)은 다른 나라보다 월등히 많은 금액을 적립하고 있습니다. 핵연료 비용은 6원 정도에 불과한데 이 중 천연우라늄의 비용은 2원에 불과하므로 우라늄 가격이 2배로 올라도 발전단가는 2원이 추가될 뿐입니다. 실제로 가스 가격이 10배 이상 뛰면서 우라늄 가격도 2배 수준으로 증가한 적이 있지만, 워낙 미미해서 원자력의 발전단가에 의미 있는 영향을 미치지 못했습니다.”

-발전단가가 어느 정도 저렴한가요?

“신규 원전의 경우 70% 내외가 건설비용이라 계속 운전하는 원전은 발전단가가 20~30원 수준에 불과하고, 이는 가스나 신재생 에너지보다 훨씬 저렴합니다. 예를 들어 1000MW의 원전 1기가 1년간 계속운전을 한다면 가스 발전이나 신재생 대비 연간 1조5천억 원 정도 절약됩니다. kWh당 200원 이상의 차액이 발생하고, 85% 정도의 이용률을 가정하면 연간 절약되는 비용이 1조5천억 원에 이르는 겁니다. 가스 가격이 낮았던 시기 기준(가스발전 kWh당 150원)으로도 7000억 원 정도의 비용이 절약됩니다. 지난 정부에서 원전의 계속운전을 불허한 여파로 계속운전 신청 적기를 놓친 원전이 6기인데 이들이 한꺼번에 가동 중단된다고 가정하면 한 해 최소 6조 원의 손해가 발생하게 될 것입니다. 한전의 1년 매출이 60조 원이므로 전기요금이 10% 올라야 합니다.”

-탄소중립과 원자력은 상충한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탄소중립에도 원자력의 역할이 필수적입니다. 도움이 되는 정도가 아니라 원자력이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으면 탄소중립은 불가능합니다. 원자력 발전은 같은 양의 전력을 생산하는 데 배출되는 온실가스의 양이 태양광과 비교해도 1/3 수준에 불과하고, 풍력과 유사한 수준입니다. 따라서 원자력은 재생에너지와 같은 청정 발전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원자력은 가장 빠른 탄소중립 달성 방안입니다. 1980년 이후 10년간 원전이 추가되면서 우리나라 전력에서 원전 비중은 50%를 넘어섰습니다. 10년의 기간에 절반의 전기를 무탄소로 바꾸는 것이 가능하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나라 원전을 수출한 UAE의 경우 바라카에 원전이 4기 건설되면서 전체 전력의 1/4이 무탄소로 바뀌게 됐습니다. 10년 남짓한 기간에 25%의 전력을 청정전력으로 바꾸는 게 가능해진 것이죠. 이는 태양광이나 풍력으로 청정전력 공급을 늘리는 것보다 훨씬 빠른 것입니다. 독일의 경우에도 과거 독일의 원전이 증설되던 시기에 1인당 청정전력 공급량이 늘어나던 속도가 최근 태양광과 풍력으로 청정전력 공급량을 늘렸던 속도보다 더 빨랐습니다. 계속운전하는 원자력발전소는 이미 건설돼 있는 원전이기 때문에 바로 투입될 수 있는 무탄소 전원입니다. 다시 말해 빠른 탈(脫)탄소에는 원자력이 가장 적합하고, 이를 위해선 계속운전이 필요합니다.”

-에너지 위기 극복과 탄소 중립을 동시에 이룰 수 있을까요?

“그러려면 원전 발전 용량을 2050년까지 현재 대비 3배 수준으로 늘려야 할 겁니다. 인공지능 서비스가 확대되고, 데이터센터와 전기차가 더 늘어나고, 전기를 활용한 냉난방이 보편화되고, 공장과 제철소의 수소 수요가 늘어날 것이므로 앞으로 전기 수요는 폭증할 것입니다. 우리나라 탄소중립 계획에 따르면 2050년 예상되는 전력 수요는 현재의 2배를 넘는데요. 2050년 원자력으로 50%, 재생에너지로 50%를 공급하려면 현재 25기의 원자력발전소는 계속 운영하면서 추가로 50기의 신규 원전이 더 필요합니다. 이런 이유로 두바이에서 열린 COP28에서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국, 프랑스, 영국, 캐나다, UAE 등 22개국이 2050년까지 원전 용량을 현재의 3배로 늘리겠다고 선언했습니다. 2050년까지 50기의 신규 원전 건설은 아주 도전적인 목표이고, 50%의 전력을 재생에너지로 공급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목표가 됩니다. 이 둘을 한꺼번에 충족해야 2050년 우리나라는 탄소중립 근처에 가 있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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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선진화재단 한선브리프 통권28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