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순수함을 오선지 위에…로베르트 슈만

아리아네 트리브스웨터(Ariane Triebswetter)
2024년 02월 9일 오전 10:32 업데이트: 2024년 02월 9일 오후 2:31

많은 이들에게 어린 시절은 꿈과 희망으로 가득한 시기다. 지난 수 세기 동안 많은 예술가가 순수함과 진실함을 음악으로 표현하려 했지만, 낭만주의 작곡가 로베르트 슈만(1810~1856)만큼 순수하고 참된 동심(童心)을 음악에 잘 표현한 이는 없었다.

낭만주의 시대의 거장

1826년경 젊은 나이의 로베르트 슈만의 초상화 | gave pianist/CC BY SA 4.0

독일의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였던 슈만은 가장 위대한 낭만주의 작곡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그는 주로 피아노를 위한 곡을 썼지만, 관현악곡, 가곡, 교향곡 등 다양한 음악을 남겼다. 하지만 그가 가장 잘 표현한 것은 어린이의 순수함이었다.

슈만에게 어린 시절은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기이자 영감의 원천이었다. 그는 어린이와 그들이 생각하고 꿈꾸는 세계관을 사랑했다. 1838년, 그는 자기가 작곡한 여러 소품곡(小品曲) 중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곡 13개를 선정해 ‘어린이 정경(Kinderszenen)’이라는 표제로 출판했다.

어린이 정경에는 쉽게 외울 수 있는 멜로디의 짧은 곡이 대부분이다. ‘술래잡기’ ‘목마의 기사’ ‘이상한 나라와 사람들’ ‘떼쓰는 아이’ 등 어린 시절을 연상시키는 제목의 곡들이 수록돼 있다.

하지만 제목과는 달리 이 곡들은 어린이를 위한 작품이 아니다. 수록된 모든 곡은 어른의 시각에서 바라본 아득한 유년기의 아름다움과 동심의 세계를 떠올리게 하며 서정적인 깊은 감정을 담고 있다.

정서적 그리움을 묘사하다

‘어린이 정경’(1900), 로베르트 슈만. 브레이트코프 & 하르텔 | 공개 도메인

어린이 정경의 곡들은 연주할 때 기술적으로 어렵지는 않지만,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을 전달해야 하고 어린 시절의 감정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상당한 감수성과 정서적 성숙을 요구한다.

13개의 작품 중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은 7번 곡 ‘꿈(Traumerei)’이다. 이 곡은 아름답고 감동적이면서도 어른의 감성과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어린아이가 연주할 때는 연습용으로 쓰일 만큼 쉽지만, 작품 특유의 몽환적인 감성을 표현하기는 어렵다. 성인이 연주할 경우 루바토(박자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연주하는 기법) 형태로 연주돼 감정 표현을 극대화하기도 한다.

정서적 서정성을 보여주는 또 다른 곡은 마지막 수록곡인 13번 ‘시인이 말하기를’이다. 이 곡은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서정성으로 음악과 언어가 하나가 되는 새로운 차원을 보여준다. 이는 낭만주의 예술가들이 불러일으킨 변화의 일환이다. 음악은 후원자들의 요구에 맞춰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 작곡가의 자아 표현이자 예술 그 자체를 위해 존재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또한 그는 어린이 정경에 수록될 곡을 선정할 때 전체적인 균형을 잡고자 했다. 대부분의 피아니스트는 전체 곡이 아닌 일부 곡만 개별적으로 연주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곡 간의 연결성을 중시해 주제에 맞춰 서술식으로 배치했다. 첫 번째 수록곡 ‘이상한 나라와 사람들’은 그가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인 유년기의 아름다움과 동경의 서문을 열어준다.

클라라를 위한 선물

슈만은 아내이자 작곡가인 클라라 슈만(1819~1896)을 위해 이 모음집을 만들었다. 그는 결혼 2년 전 그녀에게 이 작품을 선물로 보내며 “당신이 내게 써준 글에 대한 음악적 답장이다. 당신에게는 내가 때때로 어린아이처럼 보였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로베르트 슈만과 클라라 슈만’(1847), 에두아르트 카이저 | 공개 도메인

어린이 정경은 아내에 대한 그의 사랑을 상징하는 모음집으로, 그는 이 작품에 대해 “우리의 미래처럼 가볍고 부드럽고 행복하다”고 묘사했다. 그는 자신의 음악적 지위를 잊고 그저 이 곡을 있는 그대로 즐겨달라고 그녀에게 부탁했다. 그녀 또한 이 곡을 모두 좋아했고, 1838년에 쓴 편지에서 “이 곡은 우리 둘만의 것이며, 항상 마음에 두고 있다. 단순하지만 따뜻해 당신과 매우 닮았다”고 표현했다.

그들뿐만 아니라 많은 예술가도 이 작품을 좋아했다. 슈만의 친구였던 작곡가 프란츠 리스트(1811~1886)도 이 모음집을 좋아해 딸에게 자주 연주해 줬다. 다른 낭만주의 음악가들도 이 작품의 독창성과 실험성에 감탄했다. 그러나 당시 대중들은 처음엔 이 곡들의 파격적인 구조와 노골적인 감정 표현에 낯설어했다. 이후 이 곡들은 대중의 사랑을 받으며 낭만주의 음악의 대표곡으로 자리 잡게 된다.

순수성을 표현하다

어린이 정경은 악보에 기록돼 형식이 정해진 곡이지만, 연주자마다 곡에 대한 해석이 다르다. 청중에게 음악을 전달할 때 어린이의 영혼과 순수성을 이해해 작곡가가 의도한 바를 어떻게 표현하느냐는 연주자의 몫이다. 20세기, 21세기의 유명 피아니스트 중 많은 이들이 이 곡을 녹음했지만, 각기 다른 해석과 감정을 표현해 비교하며 듣는 즐거움을 준다.

어린 시절은 낭만주의 시대에 많이 쓰인 주제 중 하나다. 이는 유년기로의 회귀와 상상력으로 가득 찬 세계를 구현하는 것으로, 시적이고 덧없는 모든 것을 포착하고자 했던 낭만주의 예술가들에게 완벽한 주제였다. 그러나 이 주제를 가장 잘 이해하고 유년기 기억 속 장면을 포착해 완벽한 아름다움으로 묘사한 작곡가는 로베르트 슈만이 아닐까 싶다.

아리아네 트리브스웨터는 현대 문학과 클래식 음악에 대한 배경지식을 갖춘 국제 프리랜서 저널리스트입니다.

*류시화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정리에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