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정수를 담은 예술…바로크 시대 오페라

아리아네 트리브스웨터(Ariane Triebswetter)
2024년 03월 2일 오전 10:10 업데이트: 2024년 03월 2일 오전 10:10

많은 이들이 궁극의 예술 형식으로 간주하는 오페라는 성악과 오케스트라, 연기, 감정이 절충적으로 결합한 장르로, 가장 완벽하고 복잡한 형태의 예술이다.

르네상스 시대의 사람들은 고대 그리스 신화 속 이야기를 극 형태로 만들었다. 이것이 현대 오페라의 시초가 되었고, 바로크 시대(1600~1750년)에 이르러 그 형식이 정립됐다. 오페라는 바로크 시대에 전성기를 맞았고, 유럽 전역에 퍼지며 시대의 정수를 대표하는 장르로 자리매김했다.

그리스 신화를 담은 오페라

오페라는 1600년대 초, 사람의 감정을 자극하는 음악의 힘을 빌려 극적인 효과를 높이기 위해 처음 등장했다. 당시 문화의 중심지였던 이탈리아 피렌체에는 카메라타(Camerata)라는 예술가 집단이 생겨났다. 피렌체를 기반으로 활동하던 지식인과 음악가들로 구성된 카메라타는 고대 그리스 연극을 바탕으로 오페라의 전통적 요소인 춤과 합창, 연설과 독백 등 여러 가지를 도입해 오페라의 형식을 창조해냈다. 기존 르네상스 시대의 연극은 폴리포니(Polyphony·여러 성부가 독립적 선율을 동시에 부르는 음악)를 사용했지만, 그들은 단일 선율을 주로 사용했다.

‘의상을 입은 작곡가 야코포 페리’(1589), 베르나르도 부온탈렌티 | 공개 도메인

최초의 오페라로 알려진 ‘다프네(1598)’는 초기 바로크 시대의 작곡가 야코포 페리(1561~1633)의 작품이다. 현재 이 작품은 악보가 소실돼 정확한 정보는 알 수 없지만, 그의 또 다른 오페라 작품 ‘에우리디케’와 함께 초기 오페라로 평가받는다.

당시 많은 오페라 작곡가와 마찬가지로 페리도 고전 신화에서 영감을 얻었다. 다프네는 태양과 음악의 신 아폴론이 님프 다프네를 월계수로 변신시키는 이야기다. 에우리디케는 신화 속 전설적인 음악가 오르페우스와 이우리디케의 사랑과 지하 세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원작을 각색해서 만든 이 작품들은 비극적 요소를 순화해 관객들에게 좀 더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했다.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의 초상’(1630), 베르나르도 스트로치 | 공개 도메인

페리의 첫 작품 이후 오페라 장르는 점차 형식이 정립됐고,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1567~1643)에 이르러 진정한 형태를 갖춘 오페라가 처음 등장했다. 1607년 초연된 작품오르페오는 에우리디케와 마찬가지로 신화 속 오르페우스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극적인 통일성을 이루다

몬테베르디는 오페라를 통해 음악적 형식을 새로운 차원으로 발전시켰다. 이 작품에는 시와 음악, 연극이 완벽한 조화를 이뤄 새로운 형태의 스펙터클(연극이나 영화의 웅장한 장면)을 창조했다.

르네상스 후기 예술계에 등장해 바로크 음악의 선구자로 여겨지는 인물인 몬테베르디는 음악을 통해 극의 줄거리를 전달하고 등장인물을 정의하며 강렬하고 아름답게 감정을 표현했다.

이전 작곡가들은 오페라에서 대사를 전달할 때 문자 자체에 집중해 대화하듯 자연스럽게 낭송하는 형식으로 극을 이어갔다. 그러나 몬테베르디는 풍부한 화음과 악기의 소리를 융합해 오페라를 완성했다. 감성적인 대사와 음악적 효과로 노래하듯 부르는 대사를 돋보이게 했고 이 형식은 현재 오페라의 기틀이 되었다.

‘코벤트 가든 극장의 전경’(1808), 작자 미상 | 공개 도메인

궁극의 표현력

바로크 후기에 이르러 오페라는 예술적 역량과 극적 표현력이 최고조에 달했다. 배우의 화려한 아리아(독창곡)와 정교한 무대장치, 화려한 의상 등 볼거리로 가득 찬 오페라 무대는 유럽 전역을 사로잡았다.

오르페오가 초연한 지 30년이 흐른 1637년, 베네치아 최초 오페라 극장인 산티 조반니 파올로에서 ‘포페아의 대관’이 처음으로 무대에 올랐다. 네로 황제와 그의 정부 포페아의 이야기를 담은 이 공연은 인간의 다양한 모습을 잘 반영해 당시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성악가의 변화

오페라가 유럽 전역에서 인기를 끌면서 오페라 전용 공연장이 많이 생겨났다. 합창보다 독창의 비중이 늘어나며 성악가는 마음껏 기교를 뽐낼 수 있게 됐고, 그를 받쳐주는 오케스트라의 연주 또한 극적 효과를 더했다.

‘카를로 브로스키의 초상’(1734), 바르톨로메오 나자리 | 공개 도메인

바로크 시대의 오페라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오페라 가수를 탄생시켰고, 그들은 많은 부와 인기를 누리며 새로운 시대를 만끽했다. 특히 바로크 시대에는 카스트라토(Castrato·남성 거세 가수)의 수요가 많았다. 이들은 높은 음역과 맑은 목소리를 유지하기 위해 사춘기 이전에 거세됐다. 경이로운 가창력과 기교를 선보이며 18세기까지 여성 배역은 대부분 이들이 맡아 연기했고, 대중의 찬사를 받았다. 이들 중 한 명인 카를로 브로스키(1705~1782)의 일생을 담은 영화 ‘파리넬리(1994)’는 바로크 시대의 모습과 문화를 잘 보여준다.

계속 진화하다

음악의 어머니로 불리는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1685~1759)은 당시 오페라에 정교함을 더했다. 그는 성악가가 곡의 첫 부분을 반복해 부르면서 가창력과 기교를 뽐낼 수 있는 솔로 다 카포(Da capo) 곡을 오페라에 도입했다. 헨델의 오페라 중 유명한 작품으로는 ‘이집트의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성에 갇힌 공주를 구하러 가는 왕자의 이야기를 담은 ‘리날도’가 있다. 특히 리날도 중 ‘울게 하소서’는 영화 파리넬리를 통해 널리 알려져 현대인들에게도 친숙한 음악이다. 이렇게 헨델은 이탈리아 바로크 시대 오페라의 대가로 자리 잡았다.

‘헨델의 초상’(1726), 발타자르 데너 | 공개 도메인

시대의 상징

후기 바로크 시대에 오페라는 국제적 예술 형식으로 발전했다. 프랑스와 영국에서는 궁정 축제의 일부로 오페라를 도입해 대중과 귀족을 사로잡았다. 그들은 이탈리아어가 아닌 모국어로 쓴 새로운 오페라 형식을 고안해 새로운 오페라 곡을 다수 탄생시켰다.

바로크의 오페라는 사실주의가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한 시대의 정수를 상징하며 이후 오페라 발전의 토대를 마련했다.

아리아네 트리브스웨터는 현대 문학과 클래식 음악에 대한 배경지식을 갖춘 국제 프리랜서 저널리스트입니다.

*류시화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정리에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