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와 힘의 상징, 말…예술가들에게 영감을 불어넣다

미셸 플라스트릭(Michelle Plastrik)
2023년 10월 25일 오후 8:53 업데이트: 2024년 02월 5일 오전 11:29

고대부터 예술 소재로 쓰여져
힘찬 움직임과 활기로 승리와 웅장함을 상징해

말은 수천 년 동안 승리의 상징으로 많은 예술가에게 영감을 줬다. 예술가들은 말의 생동감과 힘을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기법을 사용했다.

말은 선사 시대 예술품에서도 발견된다. 인도 중부의 빔베트카 암벽화와 프랑스 쇼베 동굴, 스페인의 알타미라 동굴 등 전 세계 동굴에서 말 그림을 찾을 수 있다. 선사 시대부터 문명의 발달과 함께, 말 그림 또한 세밀함과 표현력에 큰 발전이 있었다.

산마르코의 말

‘산 마르코의 말’(145~211 추정), 작자미상 | 공개 도메인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위치한 산마르코 대성당은 세계적인 관광 명소이자 베네치아의 상징적 장소이다. 원래 산마르코 대성당 동쪽 광장을 지키고 있던 ‘산마르코의 말’은 20세기 후반에 대성당 내부로 옮겨졌다.

‘산마르코의 말’의 제작 시기는 전문가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하다. 많은 이들은 기원전 5세기에서 기원후 4세기 사이로 추정한다. 그러나 주조될 때 수은이 사용된 점과 말의 갈기 모양, 금속 장식의 형태 등을 보아 고대 로마의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 시대(145~211)로 추정된다.

말들은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반짝이는 눈, 활짝 벌어진 콧구멍, 튀어나온 핏줄과 근육, 깔끔하게 정돈된 갈기가 돋보인다. 강렬한 인상을 주는 말 조각상은 개별로 주조된 조각을 함께 엮는 간접 주조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이 조각상은 사실 제4차 십자군 전쟁의 전리품이다. 1204년, 콘스탄티노플(현재의 이스탄불)을 점령한 십자군이 이 조각상을 약탈해 베네치아로 옮겼다. 그로부터 약 60년 후, 조각상은 산마르코 대성당 외관을 장식했다. 당당한 자세가 위엄 있는 이 말들은 베네치아 십자군의 승리와 정치적 권력을 상징하며 문화 발달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산 마르코 광장의 행렬’(1496), 젠틸레 벨리니. 캔버스에 템페라와 유채 이탈리아 델라카데미아 갤러리 | 공개 도메인

조각상이 베네치아로 옮겨진 후, 많은 사람은 이 조각상을 이상적인 예술 작품의 표본으로 여겼다. 초기 르네상스 시대에는 이 조각상의 복제품이 다수 생산되어 유통되었고, 도나텔로, 안드레아 델 베로키오와 같은 유명한 예술가들은 이 작품에서 영감을 얻어 다수의 예술품을 탄생시켰다. 15세기 이탈리아의 화가 젠틸레 벨리니는 그의 작품 ‘산마르코 광장의 행렬’에 이 조각상을 등장시키기도 했다.

‘산 마르코 광장의 행렬’(1496)의 일부, 젠틸레 벨리니. 캔버스에 템페라와 유채 이탈리아 델라카데미아 갤러리 | 공개 도메인

1797년, 나폴레옹의 베네치아 정복으로 말 조각상은 또 한 번 옮겨졌다. 조각상은 프랑스 군에 의해 또다시 약탈당해 파리로 옮겨졌다. 그러나 나폴레옹의 권세가 꺾인 후 이탈리아 조각가 안토니오 카노바(1757~1822)에 의해 다시 베네치아로 돌아오게 되었다. 이후 세계 1・2차 대전을 겪고 결국 야외가 아닌 산마르코 성당 내부에 보존하기로 했다.

스터브스의 종마

‘휘슬재킷’(1762), 조지 스터브스. 캔버스에 오일. 영국 내셔널갤러리 | 공개 도메인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말 초상화 중 하나는 영국의 화가 조지 스터브스(1724~1806)의 ‘휘슬 재킷’이다. 스터브스는 역사상 최고의 동물 화가로 꼽힌다. 야생 동물, 이국적인 동물을 주로 소재로 삼은 스터브스는 해부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사실적이며 표현력이 뛰어난 화가로 알려져 있다.

그림의 모델이 된 실제 ‘휘슬 재킷’은 뛰어난 종마였다. 휘슬재킷의 소유주였던 한 귀족은 스터브스에게 그림을 의뢰했고, 세로 약 3미터, 가로 약 2.5미터의 대형 작품이 탄생했다. 당시 동물 그림에는 아름다운 자연이나 화려한 배경이 항상 동반되었지만, 스터브스는 이 작품에서 배경을 아예 배제하는 혁신적인 시도를 했다. 여기에 고전적인 포즈를 취한 말을 그려넣음으로 후대 예술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반짝이는 구릿빛 털과 흰색이 섞인 꼬리와 갈기를 휘날리는 휘슬 재킷은 연한 금색 바탕의 캔버스 위를 활보하고 있다. 자연주의적인 섬세한 묘사와 생동감이 돋보이는 이 작품은 고전적인 말 조각상의 자세를 그대로 취하고 있다. 그림 속 휘슬 재킷은 기수나 안장 등 사람과의 연관성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휘슬 재킷이 취하고 있는 자세는 ‘르바드(levade)’라는 자세로, 주로 승마에서 말에게 기본적으로 교육하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이 자세는 귀족이나 고위층을 상징할 때 주로 사용되었다. 16세기 예술가 루벤스, 벨라스케스 또한 역사적 영웅의 초상화를 그릴 때 이 자세를 차용해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앞다리를 들고 있는 자세를 통해 자연의 힘과 대담함, 자유를 나타낸다.

보뇌르의 ‘말 시장’

‘로사 보뇌르의 초상’(1898), 안나 엘리자베스 클럼프. 캔버스에 오일.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 공개 도메인

스터브스와 함께 동물화의 거장으로 불리는 인물은 영국의 여류화가 로사 보뇌르(1822~1899)이다. 그녀는 스터브스의 낭만주의 사조에 많은 영향을 받았고, 해부학적 측면에서 동물을 그리기 위해 많은 심혈을 기울였다.

‘말 시장’(1852), 로사 보뇌르. 캔버스에 오일.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 공개 도메인

‘말 시장’은 파르테논 신전의 프리즈(건물 외벽 윗부분을 장식한 띠 모양의 그림이나 조각)에서 영감을 받아 그려진 작품이다. 그림 속에는 실제 프랑스 파리의 말 시장의 풍경이 펼쳐져 있다. 역동적인 움직임이 돋보이는 이 작품은 말의 아름다움과 힘을 모두 묘사했다. 조련사들은 말의 주체할 수 없는 힘을 통제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이 작품은 1853년 파리에서 처음 공개되자마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유럽 전역과 미국에까지 전시되며 세계적으로 사랑받았다.

예술적 성취를 이룩한 작품들

‘산마르코의 말’, ‘휘슬 재킷’, ‘말 시장’ 세 작품은 기술과 관찰력, 미학적 측면에서 놀라운 예술적 성취를 이뤘다. 이 작품에는 각각 시대의 상징성과 역사적 가치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 속에 담긴 메시지와 예술적 가치는 지금까지도 인류에게 감동과 영감을 주고 있다.

미셸 플라스트릭은 뉴욕에 거주하며 미술사, 미술 시장, 박물관, 미술 박람회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글을 쓰고 있습니다.

*류시화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기사화에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