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20년 거주한 중국 공산당 선전매체 50대 여기자 추방

한동훈
2024년 04월 9일 오전 10:46 업데이트: 2024년 04월 9일 오전 10:48

현지서 환경관련 매체 운영…中 대사관 돈 받고 기사 게재
통일전선 조직과 연계, 공산당 정보기관 관계자과도 밀접

스웨덴 정부가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된다며 50대 중국인 기자를 추방했다고 스웨덴 언론이 8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이 여성은 중국 공산당의 대외 선전매체를 운영 중이다.

현지 매체인 스웨덴 텔레비전(SVT)에 따르면, 이 기자는 지난해 10월 스웨덴 보안국에 체포됐으며 지난주 스웨덴 정부에 의해 추방됐다. 이름이 공개되지 않은 이 여성은 평생 재입국이 금지됐다.

또 다른 현지 매체 ‘키나 미디어’는 추방된 중국인 기자가 온라인 매체 ‘노르딕 그린 포스트’의 대표를 맡고 있는 천쉐페이라고 전했다.

천쉐페이는 중국-유럽 문화협회 회장을 겸직하고 있는데, 각국에서 중국과의 문화교류나 친선을 내세운 협회들은 상당수가 중국 공산당과 연계된 간첩 조직인 통일전선 단체라는 점에서 그녀가 중국 간첩이라는 의혹이 짙어지고 있다.

관련 보도를 종합하면, 천쉐페이 체포 후 추방까지 6개월 가까운 시간이 걸린 것은 천쉐페이가 혐의를 부인하며 항소하는 등 법정 공방으로 버텼기 때문이다.

스웨덴 이민국은 지난해 11월 천쉐페이 추방을 결정했지만, 그녀는 항소했고 법무부에서 항소 기각 결정이 내려진 후인 올해 4월 4일에야 추방이 확정됐다.

SVT에 따르면 천쉐페이는 약 20년 전 스웨덴에 입국해 거주허가증을 획득했으며 스웨덴 남성과 결혼해 자녀를 낳았지만 진정으로 스웨덴 사회의 일원이 되려고 했는지는 불분명하다.

키나 미디어에 따르면 그녀는 스웨덴 주재 중국 대사관 및 중국 정권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과 접촉했고, 스웨덴 보안국에 의해 중국 공산당 보안기구 관리와도 긴밀히 접촉한 사실이 포착됐다.

그녀가 운영하는 현지 환경 관련 매체인 ‘노르딕 그린 포스트’ 역시 중국 공산당의 입김을 받았음이 드러났다.

중국 관련 정책과 이슈를 분석·보고하는 ‘스웨덴 국립 차이나 센터(SNCC)’의 지난해 보고서에 따르면, 이 매체는 스웨젠 주재 중국 대사관으로부터 대가를 받고 일부 기사를 실어준 것으로 밝혀졌다.

이 매체의 콘텐츠는 대부분 중국 공산당 관련 매체 및 중국 공산당 통일전선공작 조직에 연계된 스웨덴 현지인들로부터 제공받은 내용이었다.

지속 가능한 발전에 관한 기사뿐만 아니라 북유럽에 설치된 공자학원 소식이나 스웨덴 선거에 대한 논평 등을 중국어로 게재했으며 종종 영어 콘텐츠도 제공했다.

현지 중국계를 상대로 중국 공산당에 유리한 여론을 조성하고 현지인들과 접촉해 포섭 공작을 벌이고 있었을 가능성 등이 지적된다.

매체 홈페이지에서는 설립 목적으로 화교와 중국계, 전체 중국인들에게 지속 가능한 발전에 관한 뉴스와 정보, 지식을 제공하고 중국과 스웨덴 사이의 우호 발전을 이끄는 교량 역할을 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스웨덴에서 설립된 중국어 매체 ‘노르딕 그린 포스트’의 매체 소개 화면. 천쉐페이를 설립자로 밝히고 있다(빨간 네모) | 화면 캡처

천쉐페이 측 “국가안보 위협 아니다” 혐의 부인

천쉐페이의 변호사 루트림 카드리우는 SVT에 “그녀가 스웨덴의 국가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다만 카드리우 변호사는 “국가안보 사안과 관련돼 자세한 내용을 밝히기는 어렵다”며 구체적인 문제는 언급을 피했다.

인접 국가인 노르웨이의 NRK 방송은 천쉐페이가 노르웨이와 덴마크, 핀란드, 아이슬란드 등 북유럽 국가에 대한 보도를 담당하고 있었다고 보도했다.

스웨덴은 북유럽 국가로는 최초로 중국 공산당과 외교 관계를 수립한 국가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중국과의 관계가 긴장된 관계를 유지해 왔다.

중국 공산당은 양자 투자보호협정을 체결하고 스웨덴에 110억 달러(약 14조 8천억원) 이상을 투자하는 등 환심을 얻었으나 2015년 중국 태생의 스웨덴 국적자 구이민하이를 몰래 납치해 장기간 구금한 사건을 계기로 스웨덴과 사이가 틀어졌다.

스웨덴 정부는 자국민 보호를 위해 중국 공산당에 구이민하이 석방을 요구했으나, 중국 공산당은 이를 거부했고 구이민하이에게 ‘해외에 불법적으로 정보를 제공한 혐의’로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구이민하이는 홍콩의 한 서점에서 시진핑의 사생활을 폭로한 책을 판매했다.

한편, 스웨덴 법원은 지난 2018년 4월 현지의 한 티베트 라디오방송 직원에게 간첩 혐의로 유죄판결을 내리며 징역 22개월을 선고했다. 이 직원은 스웨덴에 망명한 티베트 난민과 반체제 인사들에 관한 정보를 수집해 중국 공산당에 제공한 사실이 드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