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산 칼럼] 미중 갈등은 ‘냉전’ 아닌 ‘온전’…전면 대결은 이미 시작

스산(石山)
2021년 9월 24일
업데이트: 2021년 9월 25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1일(현지시간) 첫 유엔총회 연설에서 “미국은 동맹과 함께 중국과 치열한 경쟁을 할 것”이라고 강조하면서도 이것이 신냉전이라는 것은 부인했다.

중공은 당연히 미국의 주장을 믿지 않았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자매지인 환구시보의 후시진(胡錫進) 편집장은 그의 동영상 채널에서 “누가 믿겠느냐”며 강한 어조로 불신을 표했다.

후시진의 발언은 앞서 있었던 시진핑 중국 공산당 총서기의 내부 강화 내용과 잘 맞아떨어진다. 시진핑은 중앙당교에서 열린 가을학기 중년·청년 간부 교육과정 개강식 연설에서 “환상을 버리고 투쟁을 준비하라”고 주문했다. 따라서 바이든이 신냉전이 없다고 했지만, 중공은 당연히 믿지 않을 것이다.

사실 필자도 믿지 않는다. 물론 필자가 믿지 않는 이유는 중공의 그것과 다르다. 중국 공산당은 예로부터 규범을 지키지 않고 약속을 중시하지 않는 등 ‘말 따로 행동 따로’였다. 우리는 이런 조직을 음모집단이나 조직폭력배라고 부르는데, 이런 집단이 남이 한 말을 믿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필자가 믿지 않는 이유는 다르다.

먼저 냉전의 개념부터 말해보자.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미소 패권시대가 열리면서 세계는 미국을 비롯한 자유 민주주의 진영과 소련을 위시한 공산당 독재국가 진영으로 나뉘었다. 양대 진영은 이데올로기와 경제제도에서 각을 세웠고, 정치와 군사 부문에서는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치달았다.

그러나 2차대전이 막 끝난 데다 핵무기라는 초유의 대량살상무기가 등장했기 때문에 강대국 간의 전쟁을 원하지 않았다. 전면전으로 인한 세계 종말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소 양국 군대는 이후 30여 년간 정면 대결은 하지 않았다. 즉 열전(熱戰 ·뜨거운 전쟁)은 없었다.

그러나 미·소 양대 진영 간에는 저강도 또는 중강도의 군사적 대결이 끊이지 않았다. 이는 무기 경쟁, 지정학적 경쟁 형태로 나타났고, 직접적인 군사적 대결은 ‘대리 전쟁’ 양상으로 진행된 경우가 많았다. 그런 점에서 미·소 간에는 모종의 묵계가 있었던 게 분명하다.

예를 들면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 아프간전쟁의 상황이 그러하다. 미국이 출병하면 소련은 출병하지 않고 미국의 상대에게 자금과 무기만 제공했고, 반대로 소련이 출병하면 미국은 출병하지 않고 상대에게 다양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러한 모델은 소련이 해체될 때까지 계속됐다.

이는 일종의 해괴하고 흥미로운 모델로, 쌍방은 전면 대결이나 전면 투쟁을 하면서도 직접적인 전쟁은 하지 않는다.

‘냉전’이라는 표현은 ‘동물농장’과 ‘1984’를 쓴 영국 작가 조지 오웰이 제기한 용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한 달 뒤인 1945년 10월 19일, 오웰은 영국 신문 트리뷴(Tribune)에 기고한 칼럼에서 ‘냉전’이란 표현으로 핵전쟁의 그늘에 살고 있는 세계를 묘사했다.

그는 이런 세계는 “평화 없는 평화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오웰은 그가 말하는 냉전이란 소련과 서방의 이데올로기 충돌을 의미한다고 했다. 그는 1946년 3월 10일의 또 다른 글에서 “지난해 12월 모스크바 회의 이후 러시아(여기서 사실상 소련을 지칭)는 브리튼과 대영제국을 향한 ‘냉전’을 준비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 후 ‘냉전’이란 표현은 국제 정치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기 시작했다. 1948년, 소련은 서방을 압박하기 위해 서베를린을 10개월간 봉쇄했다. 1949년 미국과 유럽 민주국가들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소련과 동유럽 공산당 정권 국가들이 바르샤바조약기구를 결성하면서 두 군사동맹 그룹의 정면 대결 구도가 형성됐다. 이후 양측의 변경(邊境)이 모두 닫히고 베를린 장벽이 60년대 초에 완성됐다. 전 세계의 정치인들은 이런 상황을 냉전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평화 없는 평화’, ‘뜨거운 전쟁 없는 충돌’, 이것이 아마 냉전일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유엔 총회에서 “중국과의 냉전은 없을 것”이라면서도 가치관이 같은 국가들과 동맹을 결성하고 중공과 “대국(大國) 경쟁, 더 나아가 치열한 경쟁을 할 것”이라고 했다. 만약 ‘경쟁’이란 표현을 ‘투쟁’으로 바꾸면 아마 이것이 바로 냉전임을 더 분명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시진핑 중국 공산당 총서기(좌)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우) | AP/연합뉴스

우리가 본 상황은 바로 이러하다. 미국 대통령이 인정하든 안 하든 하나의 새로운 전면적 충돌 혹은 ‘전면적 경쟁(바이든 대통령이 한 말)’은 이미 시작됐다. 그것을 냉전이라 부르든 정면 대결이라 부르든, 가치전이라 부르든 이익전이라 부르든 사실 아무 상관이 없다.

그러나 이 전쟁은 미국이 시작한 것은 아니다. 중공이 조용히 전쟁을 시작한 지 이미 20년이 넘었다. 1999년 중공군 작가 차오량(喬良)은 ‘초한전(超限戰·무제한 전쟁)’이란 책을 통해 미국을 이기려면 반드시 “정면 대결(熱戰)이 아닌” 방식을 써야 한다고 했다.

중공의 군사력이 너무 뒤처져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피해야 한다는 점에서 초한전 개념을 제시한 것이다. 이 개념에 따르면, 문화·예술·언론·여론·경제·무역 등 모든 분야가 전장(戰場)이고, 교류를 할 때마다 특단의 무기로 상대를 공격한다. 물론 목적은 상대를 무너뜨리는 것이다.

테러 공격을 예로 든다면 ‘초한전’에는 비행기가 빌딩을 들이받는 개념까지 들어 있다. 여기에다 인종이 복잡하고 충돌성이 강한 미국의 특성을 이용해 각종 갈등을 부추기거나 계급과 인종 갈등을 이용하는 것 등도 포함된다. 이 책은 또 군비 강화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도 했다.

실제로 중공은 그 경로를 따랐고, 그런 전략에 따라 움직였다. 지난 20여 년간 중공의 각종 핵심 전략은 이 전략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다.

이것이 냉전이 아니면 무엇이 냉전인가? 중공은 미군과 직접 열전을 벌이는 것을 제외하고는 문화에서부터 경제무역, 외교관계에 이르기까지 모든 방법을 동원해 미국을 와해하려 했다. 이는 중공이 일방적으로 일으킨 냉전이다.

구소련과 달리 중공은 미국과 전면적으로 반목한 적이 없다. 중공은 고위층과의 공개적인 교류나 미국의 유력 인사 및 상류층과의 교류에서 항상 웃음을 띠며 부드러움과 저자세로 일관했다. 그러나 미국에 대한 중공의 적개심과 증오심은 버린 적이 없다.

신화통신은 중앙선전부 직속으로 기본적으로 중국공산당 중앙의 대변인이다. 신화통신의 인터넷판 신화망에는 아주 오랫동안 미국 관련 기사 제목 주변에는 늘 살인과 성폭력, 재난 관련 뉴스 제목이 있었다. 설령 미국에서 발생한 일이 아니더라도 미국 뉴스 제목 옆에 배치했다. 물론 미국 관련 뉴스는 대부분 매우 부정적이었다. 특히 미국 대통령의 이름이 등장할 때는 반드시 매우 부정적인 뉴스가 함께 등장한다.

이 방법은 히틀러의 선전부장인 요제프 괴벨스가 발명한 것으로, 유대인 이슈를 다룰 때 제목 근처에는 분명 쓰레기 같은 소식이 등장한다. 이런 은연중의 암시는 선전선동에 사용되는 중요한 수법이다.

미국인은 이를 알고 있을까? 물론 알고 있다. 미국 CIA에는 전 세계 각국 언론의 보도를 집계하는 전문 부서가 있다. 각종 보도에 대해 다양한 계산과 분류를 하는데, 미국에 대한 태도를 전문적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10년 전쯤으로 기억하는데, 한 포럼에서 한 전문가가 이런 말을 했다. “중국 대륙의 관영 언론을 보면 국제정치를 언급할 때는 90% 이상이 미국을 적대시하고, 군사적인 내용을 다룰 때는 그 적대감이 더 심하다.”

하지만 미 지도부는 이를 큰 문제로 여기지 않고 있다. 중국 역사서에 나오는 “태평세월이 길어지니 사람들이 전쟁을 모른다”는 말이 이를 두고 한 말 같다. 평화가 너무 오래 지속되다 보니 맏형 노릇에 익숙해져 위기를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미국은 대기업 중심으로 의사 결정을 하고, 국책 전반이 기업의 돈벌이에 편중돼 있다. 내로라하는 사람이 중국에 가면, 그가 미국 정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황제 대접을 받는다. 평생 받아 본 적이 없는 대우를 받고 나면 ‘전쟁’ 개념이 있겠는가? 이런 예는 중국 역사에서 너무나 흔하다.

트럼프 시대에 들어서 이 같은 상황은 반전됐다. 트럼프는 대기업을 싫어하고 월가를 특히 싫어했다. 그는 미국 중하층 서민을 대표하겠다고 했다. 그는 미국 경제가 몽땅 털리는 상황을 목격했고, 이런 상황으로 피해를 보는 사람은 일반인들이기 때문이다. 상류층은 기득권자들이기 때문에 이런 상황이 눈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트럼프가 일으킨 무역전쟁을 ‘포퓰리즘’이라는 지적도 있다. 물론 실제로 중공의 불공정 무역정책은 이미 수십 년간 지속됐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재임 중이었던 작년 4월 18일(현지 시각) 중국 공산당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국가별 사망률을 설명하며 중국이 발표한 수치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 중국이 각종 수치를 조작한다고 자주 지적했다. | 로이터/연합뉴스

어쨌든 트럼프가 중공을 자극하는 바람에 중공의 본 모습이 폭로됐다. 알고 보니 중공이 발동한 기습적 냉전이 이미 오랫동안 지속됐음을 미국인들은 소스라치게 깨닫기 시작했다. 중국의 옛말에 “도둑이 훔치는 것보다 도둑이 노리는 것이 더 두렵다”는 말이 있다. 미국인들은 중공이 미국을 오랫동안 노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돌연 깨닫게 됐다.

1995년쯤 중국의 젊은이들이 미국을 겨냥해 ‘중국은 NO라고 말할 수 있다(中國可以說不)’는 책을 쓴 것으로 기억한다. 미국 정부는 이들 저자를 미국에 초청해 미국의 행사에 참여하게 하고 미국을 이해하도록 했다. 그 후 이들은 또 ‘중국은 불쾌하다(中國不高興)’는 책을 썼다. 미국은 여전히 이들을 미국에 초청했다.

미국인들은 ‘초한전’을 잘 썼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이것을 ‘손자병법’과 같은 병법서로 여기고 사관학교에서 배우기까지 했다. 하지만 지금은 중국 유학생들이 수시로 미국 세관에 입국 거부당하는 등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2018년이 전환점이었다. 그전에는 미국의 싱크탱크 엘리트들이 각성했을 뿐이고, 그 이후는 정책 결정팀이 전면적으로 바뀌었다.

필자는 바이든 행정부의 모순을 볼 수 있다. 한편으로는 그의 팀에서 과거의 밀월 시대로 돌아가려는 사람들이 있다. ‘황제 대우’를 포함해 그야말로 유혹적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중국 공산당의 냉전 성격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필자는 바이든 진영이 아직도 내부적으로 갈등을 겪고 있기 때문에 “냉전이 아니라 대국 경쟁”이라는 바이든의 발언이 나온 것으로 본다.

대국 경쟁이 가치관 및 이데올로기와 관련되고 군사적으로 뒷받침돼 전쟁을 준비하지만 전쟁을 하지 않으면 냉전이고, 치열하게 경쟁하면 치열한 냉전이다.

구소련은 제2차 세계대전 후에 부상해 공업 생산과 과학기술이 폭발적으로 발전했다. 특히 무기 제조, 항공우주 등에서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거나 심지어 미국을 추월했다. 전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첫 번째 유인 우주선, 첫 번째 제트 전투기는 모두 소련인의 것이다.

소련 사람들은 돈을 내고, 고문도 파견하고, 전 세계에 공산주의 혁명을 일으켰다. 미국과 직접 싸우는 것을 제외하면 기본적으로 전면 출격이었다. 구소련의 ICBM과 핵무기 수량은 미국보다 3분의 1이나 더 많았다. 1970년대에는 공산당이 집권한 국가가 전 세계의 3분의 1, 즉 약 70개국이나 됐다. 이들은 대부분 무력으로 정권을 잡은, 이른바 마르크스 레닌주의 공산당이었다. 물론 이들 정권은 1990년대에 들어서서 거의 다 무너졌다.

지금의 중공은 경제적으로 구소련보다 낫다는 것 외에는 소련과 비교가 안 된다. 재작년 워싱턴의 한 세미나에서 한 대변인이 ‘중국 공산당 치하의 중국 대륙은 아직 미국과 열전 또는 냉전을 벌일 자격도 자본도 없다’고 직격탄을 날린 적이 있다.

현 상황을 억지로 비교하자면 열전도 아니고 냉전도 아니고 ‘온전(溫戰)’쯤 될 것이다. 그냥 농담이다. 미군은 결코 중공군과의 전쟁을 두려워하지도 피하지도 않을 것이다. 남중국해, 대만해협, 동중국해 등 충돌이 일어나기 쉬운 중국 대륙 주변 지역에서의 미군의 태도는 분명하다.

그것은 중공군의 군사작전이 있을 경우 미군이 직접 개입한다는 것인데, 이는 분명 냉전의 태도가 아니다. 구소련이 헝가리와 체코에 군사 개입을 했을 때 미국은 반응하지 않았다. 하지만 대만과 남중국해의 상황은 분명 다르다.

그러나 여타 방면에서는 전면 대결을 한다는 점에서 미국과 중공은 정말 비슷하다. 그래서 미국과 중공의 관계는 냉전이 아니라면 냉전보다 더 ‘뜨거울’ 것이다.

이 기사는 저자의 견해를 나타내며 에포크타임스의 편집 방향성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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