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현들에게 바치는 헌정: 라파엘로의 ‘서명의 방’ 벽화

류시화 인턴기자
2022년 10월 15일 오전 7:35 업데이트: 2022년 10월 15일 오전 7:35
Stanza della Segnatura (서명의 방), 사도 궁전, 바티칸 시국. | Isogood_patrick/Shutterstock

라파엘로 산지오(Raffaello Sanzio)는 1483년 이탈리아 태생의 화가로, 25세 나이에 유명세를 떨쳤다.

그는 교황 율리오 2세의 후원을 받으며 교황의 공식 관저인 사도 궁전에 벽화를 그리도록 선택받는 큰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당시 라파엘로는 동료 예술가인 미켈란젤로의 유명세에 가려 대형 작품을 그릴 기회가 거의 없었다. 그러나 그는 궁전의 ‘서명의 방(Stanza della Segnatura)’에 그린 벽화 덕에 큰 명성을 얻었다.

서명의 방

당시 교황 율리우스의 개인 서재로 사용되었던 ‘서명의 방’의 벽에 그려진 그림들은 예술적 기교를 보여준 완벽한 작품이었다.

이 작품들은 고대 이상과 기독교 신앙을 통합해 예술과 학문에 나타난 ‘진·선·미’와 믿음과 이성, 바른 삶을 표현했다.

교황 율리우스는 라파엘로에게 ​​네 개의 벽면에 인간 지식의 네 분야인 신학(Theology), 철학(Philosophy), 법학(Jurisprudence), 시(Poetry)를 주제로 벽화를 그릴 것을 요구했다.

‘시문(The Parnassus)’, 1511년. Stanza della Segnatura의 프레스코화. 바티칸 시국의 사도 궁전. | 공용 이미지

이에 라파엘로는 서명의 방 북쪽 벽에는 ‘시문(The Parnassus)’이라는 작품을 그렸다.

그림 속에는 각각 그리스, 로마, 중세 유럽 기독교의 가장 위대한 서사시 작가인 호메로스, 베르길리우스, 단테가 자리하고 있고, 수십 명의 작가와 신화 속의 인물들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다.

라파엘로, 1511년, ‘신학적 덕목과 법(The Cardinal and Theological Virtues and the Law)’, 바티칸 시국의 사도 궁전. | 공용 이미지

맞은편인 남쪽 벽에는 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이 중요한 자질로 여겼던 ‘신학적 덕목과 법(The Cardinal and Theological Virtues and the Law)’이 그려져 있다.

작품의 상단에는 네 가지 기본 덕목 중 신중함, 강인함, 절제가 인간의 형태로 묘사되어 있다. 네 번째 주요 덕목인 정의는 천장에 그려져 있다.

더불어 왼쪽과 오른쪽 하단에는 각각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와 교황 그레고리우스 9세가 있으며, 그들의 민법전과 교회법전이 있다.

라파엘로, 1509년, ‘성체 논의(Disputation of the Holy Sacrament)’. 바티칸 시국의 사도 궁전. | 공용 이미지

서쪽 벽의 ‘성체 논의(Disputation of the Holy Sacrament)’는 제단을 둘러싼 수많은 성경의 인물, 성인, 교황이 함께 기독교 신앙과 신학적 학문을 논의하는 장면을 구현했다.

아테네 학당

라파엘로, 1509~1511년. ‘아테네 학당(School of Athens)’. 바티칸 시국의 사도 궁전. | 공용 이미지

다른 작품들 또한 라파엘로의 명성을 확고히 하는 데 일조했지만, 특히 네 번째 동쪽 벽의 그림은 고대 르네상스 전성기의 가장 결정적인 작품으로 꼽히는 것 중 하나로, 바로 ‘아테네 학당(School of Athens)’이다.

이 작품 가운데에는 아치와 조각상에 둘러싸인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서 있다. 그 주변에는 소크라테스, 유클리드, 피타고라스 등 많은 고대 학자가 있다.

라파엘로는 아테네 학당을 배경으로 선택한 이 작품을 통해 고대 학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와 ‘과거의 위대한 정신’에 대한 존중과 찬사를 표하는 동시에 역사와 상징성을 혼합했다.

당시 예술가들은 후원자들의 재정적 지원과 헌신을 통해 활동을 이어 나갈 수 있었고, 후원자를 그림 속 인물의 모델로 사용하는 것은 일반적인 관행이었다. 그러나 ‘아테네 학당’에는 후원자의 얼굴이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

중세 시대에 예술가는 석공, 목수들과 동급인 노동자 계층으로 취급되었다. 그러나 이후 르네상스 시대 예술가들은 그들의 작품이 시와 철학처럼 높은 수준의 아름다움을 추구하기에 더 좋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에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 공용 이미지

이에 라파엘로는 작품에 상징성을 부여하기 위해 동료 예술가들을 그림 속 철학자와 지식인의 모델로 차용했다.

그는 플라톤의 모델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얼굴을 사용했고, 그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인문학자 발다사레 카스틸리오네를 조로아스터의 모델로 삼았다.

‘아테네 학당’에서 기원전 4세기의 그리스 화가 아펠레스를 나타내는 라파엘로의 자화상(L). | 공용 이미지

또한 자신과 라이벌로 지목된 예술가인 미켈란젤로를 그의 작품에 대한 찬사의 의미로 헤라클레이토스를 모델로 삼아 작품의 정면 중앙에 그려 넣었다. 이어 라파엘로는 본인의 얼굴을 작품에 포함했다.

그는 이를 통해 예술계에서 화가와 조각가들의 위상을 높이는 동시에, 그들이 고전적인 전통과 고대인의 가치를 계승하는 것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암시했다.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가들은 깊은 상호 존중을 바탕으로 한 치열한 경쟁을 치러왔다. 그들은 동료의 천재성을 보며 받은 자극을 노력으로 승화했다. 또한 그들은 선의의 경쟁을 통해 예술을 점점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서명의 방’의 벽화들은 그 경쟁의 가장 위대한 산물 중 하나일 뿐만 아니라 예술에 대한 최고의 찬사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