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임·당뇨 유발 플라스틱, 다수 식품서 검출” 미 컨슈머리포트

나빈 아트라풀리
2024년 01월 7일 오후 6:49 업데이트: 2024년 01월 31일 오전 9:37

85종 테스트 결과 1종 빼고 전부 플라스틱 화합물질 검출
미·유럽 기준치에는 미달…연구팀 “안전 보장된 건 아냐”

미국인들이 일상적으로 소비하는 식료품 상당수가 당뇨병, 심혈관 질환, 불임 등을 유발하는 유해 플라스틱 화학물질에 오염됐다는 보고서가 나왔다.

비영리 소비자 조직인 미국 컨슈머리포트는 지난 4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음료, 패스트푸드, 유제품 등 11개 분야에서 85종 식품을 각 2~3개씩 표본 추출해 테스트한 결과 84종에서 프탈레이트가, 79%에서는 비스페놀이 검출됐다고 밝혔다(보고서 링크).

컨슈머리포트는 85종 제품 중 유럽연합(EU)과 미국 당국이 규정한 기준치 이상으로 검출된 제품은 하나도 없었다면서도 이것이 완전히 안심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강조했다.

현재 미국과 유럽은 비스페놀A와 일부 프탈레이트에 대해서는 기준치를 설정해 관리하고 있다.

이번 테스트에 참여한 컨슈머리포트의 식품 안전 연구원 겸 화학자 툰드 아킨레이는 “이런 기준치 중 상당수는 최신 과학 지식을 반영하지 않고 있다”며 “이 수치를 괜찮다고 말하기에는 마음이 편치 않다’고 말했다.

컨슈머리포트에 따르면, 최근 연구에서는 EU와 미국이 정한 기준치 이하의 프탈레이트만으로도 고혈압, 인슐린 저항성, 생식계 문제와 관련성이 나타났다.

사람들이 다양한 경로로 프탈레이트에 노출될 수 있기 때문에 단일 식품에 함유된 화학물질의 안전 한도를 정량화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는 점도 지적된다.

아킨레이 연구원은 “이런 화학물질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될수록 매우 낮은 수준에서도 사람에게 해를 끼칠 수 있다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고 말했다.

비스페놀·프탈레이트 대표적 내분비계 교란 물질

프탈레이트와 비스페놀은 폴리염화 비닐을 가공할 때 작업을 쉽게 하는 가소제로 쓰인다. 흔히 비닐봉지나 플라스틱 포장재를 만들 때 첨가된다.

그러나 일부 프탈레이트와 비스페놀은 인체에 일정량 이상 흡수되면 호르몬의 생성과 조절을 방해할 수 있어, 이른바 ‘내분비계 교란 물질’로 불린다.

호르몬 수치에 이상이 생기면 심혈관 질환, 불임, 당뇨병, 신경 발달 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

어린이는 비스페놀A(BPA)에 노출되면 뇌와 전립선뿐만 아니라 행동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또한 비스페놀A는 제2형 당뇨병, 심혈관 질환, 고혈압과도 관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프탈레이트는 비만, 제2형 당뇨병, 정자 운동성 및 집중력 저하, 여아 조기 사춘기, 암 발병과 함께 언급된다.

컨슈머리포트의 식품 안전 연구 책임자인 제임스 로저스 박사는 이번 테스트 결과에 관해 다수 제품에서 비스페놀A가 검출됐지만 2009년 테스트 때와 비교하면 검출량이 현저히 낮아졌다고 전했다.

로저스 박사는 “최소한 적어도 비스페놀에 대해서만큼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평가했다.

다만 그는 프탈레이트에 관해서는 “좋은 소식이 없었다”며 “거의 모든 식품에서 검출됐고 수치 역시 비스페놀보다 훨씬 높았다”고 밝혔다.

코카콜라, 와퍼, 치킨너겟서도 프탈레이트 검출

이번 테스트 대상 식품은 미국 시중에 유통 중인 음료, 통조림 콩, 조미료, 유제품, 패스트푸드, 곡물, 유아용 식품, 육류 및 가금류, 포장 과일 및 채소, 조리 식품, 해산물 등 11개 식음료 제품 총 85종이다.

컨슈머리포트에 따르면 85종 제품 중 프탈레이트 검출이 높았던 상위 제품은 △음료: 브리스크(Brisk) 아이스티 레몬, 코카콜라 오리지널, 립톤 다이어트 그린티 시트러스, 폴란드 스프링 100% 천연 샘물 △통조림 콩: 호멜(Hormel) 칠리 위드 빈스, 부시(Bush’s) 칠리 레드빈 마일드 칠리소스, 그레이트 밸류(월마트) 베이크드 빈스 오리지널이었다.

또한 △패스트푸드: 웬디스 크리스피 치킨 너겟, 모스 사우스웨스트 그릴 치킨 부리또, 치폴레 치킨 부리또, 버거킹 와퍼 위드 치즈, 버거킹 치킨 너겟, 웬디스 데이브스 싱글 위드 치즈가 지목됐다.

이 밖에도 유제품, 조미료, 유아용 식품, 곡물, 레토르트 식품류에서도 프탈레이트가 다른 제품에 비해 다량 검출됐다.

“비스페놀·프탈레이트 유해성 연구는 진행 중”

컬럼비아대 메일먼 공중보건대 환경보건과학 아미 조타 부교수는 이번 테스트 결과와 관련해 컨슈머리포트에 “(식품에 이러한 화학물질을 사용하기로 한 결정은) 증거에 기초한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작년 9월 발표된 한 연구에 따르면 비스페놀A는 아동기의 두 가지 주요 질환인 자폐증과 ‘주의력 결핍/과잉 행동 장애(ADHD)’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으며, 이러한 질환을 앓고 있는 어린이는 신체의 비스페놀A 해독 능력이 저하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환경과학 분야 국제학술지 ‘유럽환경과학(Environmental Sciences Europe)’에 2022년 3월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비스페놀A 대체 물질인 비스페놀S(BPS)는 잠재적으로 심혈관 질환의 위험을 증가시킬 수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논문 링크).

이 연구에서는 “비스페놀A, 비스페놀S, 비스페놀F는 화학적 특성이 비슷하지만, 비스페놀S와 비스페놀F는 비스페놀A를 대체할 수 있는 안전한 물질이 아니다”라고 경고했다.

미국 버몬트 대학 암센터 연구팀은 2022년 6월 미 ‘국립암연구소저널’에 실린 연구에서 특정 약물에 함유된 고농도 프탈레이트가 소아암 위험을 높일 수 있다고 밝혔다(논문 링크).

연구팀에 따르면 어린 시절 프탈레이트 노출이 소아암 발병 위험을 20% 높였고 림프종이나 혈액암 발병 위험은 2배, 뼈 암인 골육종 발병 위험은 거의 3배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