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옐런 방중, 미-중공 치열했던 수싸움…승자는?

강우찬
2024년 04월 12일 오후 4:46 업데이트: 2024년 04월 13일 오전 11:54

中, 과잉생산은 부인하고 미중 경제협력은 부각
불공정한 무역관행 지적한 옐런…챙긴 성과는?

재닛 옐런 미국 재무부 장관이 지난 8일 닷새간의 방중 일정을 마치고 미국으로 귀국했다.

중국 공산당(중공)이 스스로 평가한 옐런 방중 성과는 미중 (경제) 협력의 확인이다. 반면 미국은 중공의 불공정한 무역 관행을 따끔하게 지적하며 경제회복을 위한 조언도 건넸다. 올해 11월 대선을 앞두고 유권자 표심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표면적인 성과만 가지고는 양측의 수확을 정확히 가늠하기 어렵다는 게 중국 문제 전문가 친펑의 지적이다. 그는 9일 NTD 방송에서 이번 옐런의 방중을 둘러싼 미국과 중공 간에 오간 공방을 분석하며 종합적으로 볼 때 미국의 판정승이라고 평가했다.

우선 주목해야 할 것은 중공의 제스처다. 첫째, 중공은 이번 방중 기간 관영 언론을 통해 옐런 장관의 능숙한 젓가락질을 추켜세웠다.

옐런 장관의 젓가락질은 상대방 국가의 전통문화에 대한 존중의 표현이다. 그런데 중공 언론들은 옐런의 젓가락질과 식사 메뉴를 자세히 보도하며 호들갑을 떨었다. 지나치게 과장된 반응을 두고 일부 서방 언론에서 “이례적”이라며 그 배후를 추측할 정도였다.

둘째는 옐런을 추켜세우면서도 그녀가 채 귀국길에 오르기도 전에 러시아 외무장관을 베이징에 초청하는 이중적 태도다.

미국과 러시아는 러-우 전쟁으로 껄끄러운 관계에 있다. 그런데도 중공은 보란 듯 러시아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부 장관을 8~9일 일정으로 베이징에 초청해 왕이 중국 공산당 외교부장(장관)과 회담을 갖도록 했다. 요즘 유행하는 표현을 빌리면 ‘환승연애’를 한 셈이다.

친펑은 이를 두고 미국과의 협력이 절실하지만, 대내적으로 미국에 저자세인 모습을 보일 수 없었던 중공의 고심이 엿보이는 연출이라고 지적했다.

광저우에서 식사 중인 옐런 장관 | 웨이보·SCMP 캡처/연합뉴스

중공 언론, 미국 악마화하던 논조 실종

옐런 방중 기간 중공 관영 언론들은 미중 협력 분위기 조성에 힘을 쏟았다. 중국중앙(CC)TV는 “미국 경제 발전을 위해서든 세계 경제의 회복을 위해서든 미중 협력은 당연한 일”이라고 했다.

관영 글로벌타임스 역시 “옐런의 긍정적인 태도는 인정받을 만하다”며 “중미는 지속적인 소통을 통해서만 무역 분쟁을 더욱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것”이라는 논평을 내놨다.

옐런은 방중 기간 전반적으로 온화한 모습이었다. 미중 협력에도 동의하는 모습이었다. 그녀는 8일 기자회견에서 “한쪽이 다른 한쪽으로부터 완전하게 분리하려는 시도는 미중 양국 경제에 재앙이 될 것”이라며 건전한 경쟁 및 협력 관계를 강조했다.

다만, 그녀는 같은 날 CNBC 방송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을 지원하는 어떤 행위도 용인할 수 없으며, 우리는 이를 제재할 능력이 있다”고 말했다. 중국의 은행, 기업, 정부를 겨냥해 러시아의 전쟁을 지원하지 말라고 경고한 것이다.

옐런은 중공의 과잉 생산 문제도 여러 차례 거론했다. 그녀는 “중국의 과잉 생산, 특히 전기자동차, 리튬이온 배터리, 태양에너지 분야에서의 과잉 생산이 우려스럽다”고 했다. 과잉 생산에 대한 우려가 반중 정서나 디커플링 때문이 아니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중공은 ‘과잉 생산’ 지적에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국무원 산하 재정부 부부장 랴오민은 8일 기자회견을 열고 옐런의 방중을 설명하면서 “과잉 생산은 시장경제 체제하에서 발생하는 현상”이라며 “미국과 서방 국가들에서도 여러 차례 발생한 적 있다”고 말했다.

민간에서도 지원 사격에 나섰다. 중국국제무역협회 선임연구원 리용은 글로벌타임스에 “중국의 생산 문제를 객관적으로 봐야 한다”며 “(과잉 생산 지적은) 디리스킹 정책에 따른 악의적 중국 비방”이라고 주장했다.

중공은 러시아의 전쟁을 지원하지 말라는 옐런의 경고에 대해서도 날카롭게 반응했다. 마오닝 외교부 대변인은 8일 “다양한 분야에서 정상적인 중러 협력을 방해하거나 제한해서는 안 된다”며 “중국과 중국 기업의 이익을 해쳐서는 안 된다”고 반박했다.

친펑은 중공이 옐런의 사소한 행동들을 부각하고 정작 그녀의 발언은 적게 보도하거나 정부 관리, 전문가들이 나서서 일축함으로써 의도했던 미중 협력 무드 조성에 여론의 초점이 맞춰지도록 했다고 분석했다.

옐런, 가시적 성과 약해 보이지만 은근한 펀치

이번 방중 기간, 옐런은 중국과 무역 문제에 관한 합의를 이뤄내진 못했다. 다만 미 재무부에 따르면 양국은 추후 “균형 있는 경제 성장”을 논의하기 위한 추가 회담을 개최하는 데 합의했다.

친펑은 미국이 실효 있는 성과를 거두진 못한 것처럼 보이지만 최소한 세 가지 실질적 진전을 이뤄냈다고 평가했다. 첫 번째는 중공의 과잉 생산에 대한 국제적 공론화다. 중공이 과잉 생산을 인정하든 거부하든 중국을 방문한 옐런이 이를 여러 차례 언급함으로써 전 세계가 중공의 과잉 생산 문제를 한층 더 관심을 갖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다음은 미중 갈등의 강도 조절이다. 현재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는 올해 11월 대선을 앞두고 중공에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공화당 대선후보인 트럼프가 대중 강경책을 내세우며 표심을 모으고 있어 바이든으로서도 대중 공세를 늦추기 어렵다.

친펑은 “경합주 민주당 유권자들 사이에서는 ‘바이든이 중국을 상대로 더 많은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며 “바이든 행정부가 수개월 내에 태양전지, 리튬배터리, 전기차 등 품목에서 중국산 제품에 추가 관세를 부과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옐런은 8일 추가 관세 가능성에 관해 여러 차례 질문을 받았고 “바이든 대통령보다 앞서 나가지는 않겠지만 관세 가능성을 배제하진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상황 설명을 통해 미중 갈등을 선거에 도움이 될 수준으로 조절하는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 진전은 ‘미중 추가 회담 합의’가 중국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다.

친펑은 “적잖은 중국인들은 중공의 경제 정책인 ‘대량 생산’을 통해서만이 일자리가 유지된다고 생각한다”며 “하지만 옐런은 이를 ‘과잉 생산’이라고 지적하며 미국이 균형 잡힌 성장을 위해 다른 해법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옐런은 정치인 이미지가 아니라 경제학자로서 중국에서 인기가 많다”며 “중공이 주장하는 것과는 다른 경제 해법이 존재한다는 그녀의 발언은 경기 침체 속에서 지도부 무능 논란이 일고 있는 중국 사회에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고 분석했다.

스마트폰에 중국 쇼핑몰 테무 로고가 보인다. 중국의 공급과잉이 탄생시킨 유통 괴물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 로이터/연합뉴스

실제로 중국 제조업의 과잉 생산은 중공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 경제를 발목 잡는 문제로 떠올랐다.

한국에서는 중국에서 팔 곳을 찾지 못한 물건들이 테무, 알리 등을 통해 저가로 대량 유입돼 시장 교란 우려가 높아졌다. 당장은 소비자에게 저렴한 상품이 공급되지만 장기적으로 일자리를 줄여 전체 경제에 해를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뉴욕에 본사를 둔 로디움 그룹은 지난달 26일 “중국의 과잉 생산이 2021년부터 많은 산업 분야로 확산되고 있다”며 “올해 미국과 유럽, G7, 심지어 개발도상국까지 무역 마찰을 일으키게 됐다”고 평가했다.

로디움 그룹은 “중국의 과잉 생산으로 인한 무역 마찰은 유럽연합(EU)와 미국에서만 발생하는 일이 아니다”라며 “2019~2023년 중국은 G7 국가들을 상대로 무역흑자가 30% 이상 늘어났고 브라질, 인도, 멕시코, 남아공에서도 대중 무역적자에 불만을 품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친펑은 “중공은 이번 옐런 방중을 문제 은폐의 또 다른 기회로 삼으려 했지만, 의도와 달리 국제사회에 문제의 실체를 더 잘 보이게 하는 결과만 마주하게 됐다”고 논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