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영화제 출품작, 중국 외압에 상영 무산” 제작사

한동훈
2023년 10월 28일 오후 11:20 업데이트: 2024년 01월 6일 오후 8:16

제작진은 해외 중국계 감독·배우…파룬궁도 소재로 등장
관계자 “조직위 측 ‘심사위원 호평’ 전했지만 상영작 제외”

부산국제영화제에 출품된 중국계 감독의 작품이 중국의 외교적 입김으로 인해 상영작에 선정되지 못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미국 독립영화사인 뉴센추리필름(New Century Films) 측은 지난 13일 폐막한 부산국제영화제에 출품한 영화 ‘배우의 꿈(Silver Screen Dreams)’의 상영작 선정이 유력했으나 중국 외교부의 개입으로 무산됐다고 최근 밝혔다.

부산국제영화제 조직위원회는 올해 3월부터 장편(러닝타임 60분 이상)과 단편(러닝타임 60분 미만)으로 나눠 영화제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상영작을 모집해왔으며, 영화사는 정상적 절차에 따라 응모했다.

영화 ‘배우의 꿈’은 러닝타임 75분 장편 극영화로, 2022년 ‘아메리칸 골든 픽처 인터네셔널 필름 페스티벌’에서 주제가상을 수상하는 등 지금까지 28개 상을 수상하는 등 상영작으로 선정되는 데 무리가 없었다는 게 영화사 측의 설명이다.

영화사 관계자에 따르면, 부산국제영화제 조직위에서도 상영작 선정에 긍정적 신호를 보냈다. 이 관계자는 “조직위 측으로부터 중국 출신 심사위원 한 명을 제외한 모든 심사위원에게서 호평을 받아 상영에 문제없을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그러나 점차 이야기가 달라졌다. 지난 9월 마지막 연락 때는 조직위 측으로부터 “중국 외교부가 직접 나섰다”는 말을 들었고 “대화 과정에서 중국 외교부 대변인 화춘잉의 이름이 언급됐다”고 영화사 관계자는 전했다.

이 관계자는 “상영작에 선정되지 않은 점이 실망스럽지만, 상황을 전해준 조직위 측 인사에게 불이익이 가해지지 않도록 실명을 공개하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에포크타임스는 부산국제영화제에 뉴센추리필름 작품인 영화 ‘배우의 꿈’이 상영작에 선정됐다가 취소됐는지, 이 과정에 중국 외교부의 개입이 있었는지 등을 독립적으로 검증하진 못했다.

공산당 금기 건드렸나…”한국까지 검은손 뻗었다”

영화 ‘배우의 꿈’은 이 영화는 물질적 이익과 순수한 예술에 대한 추구가 충돌하는 중국 영화계의 어두운 내막을 다룬 영화다.

여주인공은 연기에 진심인 배우였지만 뇌물을 동원한 다른 배우에게 배역을 빼앗기고 이후 교통사고로 다리를 쓰지 못하는 불운이 겹친다. 눈물과 원망의 10년 세월을 보내던 그녀는 한 중의사의 소개로 파룬궁(法輪功) 수련 서적을 접한 후 인생의 전기를 맞게 된다.

영화는 불운을 극복한 여주인공의 남편으로 초점이 옮겨진다. 영화감독으로 성공한 남편은 새 작품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10년 전 아내를 나락으로 빠뜨렸던 악덕 영화사 사장에게 복수할 기회를 얻는다. 주인공 부부의 선택이 영화의 주제로 이어진다.

영화 ‘배우의 꿈’ 여주인공은 극중 파룬궁 수련서적을 접하고 전기를 맞는다. | 영화 스틸컷

뉴센추리필름 측은 부패 등 중국 영화계의 어두운 현실에 대한 묘사와 극중 등장하는 파룬궁 관련 소재가 중국 공산당(중공) 정부의 심기를 건드렸을 것으로 추측한다.

영화 제작자인 그레이스 웨이는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니다”라며 “이미 여러 차례 중공의 방해가 있었는데 이번에 한국에까지 검은손을 뻗은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르면, 영화 ‘배우의 꿈’은 이달 7~8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한 멀티플렉스에서 시사회를 포함해 두 차례 상영을 예정했고 말레이시아 국립영화사(FNM)로부터 개봉 허가까지 받았으나 내무부 영화검열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말레이시아 당국은 영화사에 보낸 공문에서 “2023년 7월 28일 외교부와 논의한 결과 파룬궁이 중국에서 금지됐음을 확인했다. 이런 영화를 상영하면 말레이시아와 중국의 외교 관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상영 취소 처분 이유를 밝혔다.

영화사는 실망한 현지 영화팬을 위해 리조트를 빌려 비공개 시사회를 가지는 것으로 개봉을 대체했다. 이 자리에는 영화팬뿐만 아니라 인권단체 관계자들도 초청됐고 270석이 전석 매진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7월 캐나다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발생했다. 영화사에 따르면 한 지방도시가 주최한 영화 축제에서 영화 ‘배우의 꿈’과 ‘선(善)의 힘(The Power of Compassion)’을 출품해, 주최 측으로부터 ‘지역사회기여상’ 단독 수상자로 선정됐다.

그러나 이 소식이 알려진 후 시의회 중국계 의원들이 시장에게 몰려갔고 이후 시장은 돌변한 태도를 보였다. 또한 다음 날 진행된 시상식에서는 모든 참가팀에게 ‘지역사회기여상’이 수여되는 비상식적인 조치가 이뤄졌다.

또한 이 영화 축제에서 영화 ‘선의 힘’이 최우수 단편영화상에 선정됐지만, 트로피 수여식은 이뤄지지 않았다. 영화 출연 배우가 수상을 위해 무대에 올라가려 했지만, 조직위 관계자들에게 저지를 당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조직위의 한 관계자는 “중국과의 관계 등으로 불가피한 일이었다”며 영화사 측에 양해를 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7월 15일, 캐나다 온타리오주의 한 영화축제에서 뉴센추리필름 지역사회기여상을 수상한 후 출연자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 영화사 제공

 

진실, 선량 사라진 중국사회를 사는 이들의 현실

영화사 관계자는 중공이 금기시하는 파룬궁을 등장시킨 점에 관해 “영화의 주제를 나타내는 데 가장 적합한 소재였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중국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심각한 사회다. 부당한 수단으로 남을 해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진다. 이처럼 공산당에 의해 모든 정신적 가치가 말살된 사회에서 ‘진선인(真善忍)’의 중요성을 강조한 파룬궁과의 만남은 여주인공이 원망을 극복하고 자신을 치유하는 데 꼭 필요한 영화적 장치””라고 말했다.

파룬궁은 파룬따파(法輪大法)로도 불리며1992년 처음 중국에서 일반에 공개된 수련법이다. 중국에서는 수련자를 가리킬 때도 파룬궁이라고 부른다. 1990년대 후반 수련 인구가 7천만 명 이상으로 추정됐다. 공산당은 이를 경계해 1999년 7월부터 탄압하기 시작했다.

이 관계자는 “중공은 파룬궁이 어떤 것인지 중국인과 전 세계인이 이해하는 것을 가장 두려워한다. 탄압이 부당하다는 것이 밝혀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이비 종교, 위험한 사상, 혹세무민 등 오명을 씌워 아예 기피하고 혐오하게 만든다”고 했다.

이어 “하지만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은 파룬궁이 중공이 말한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며 “이념이나 종교 선전영화라면 중국이 나설 필요도 없이 관객들로부터 외면받을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영화의 힘”이라며 “뉴센추리필름은 영화의 힘으로 관객들의 평가를 받고 싶어 한다. 중공의 외압 없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