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양자기술 패권 경쟁 시대…“기초과학·인재 육성에 달렸다”

김태영
2023년 06월 15일 오후 12:25 업데이트: 2024년 01월 19일 오후 2:14

전 세계가 첨단 기술을 둘러싼 패권 경쟁에 돌입했다. 특히 미래의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기술로 주목되는 반도체와 양자 기술의 중요성은 나날이 강조되고 있다. 과학기술이 곧 경제이자 안보인 시대다.

과학기술정책을 핵심 국정과제로 삼은 윤석열 대통령도 지난 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17차 비상경제민생회의 겸 반도체국가전략회의에서 “반도체는 우리 생활이고 안보이며 우리 산업 경제 그 자체”라며 “반도체 전쟁은 단순한 경쟁이 아니라 산업 전쟁이며 국가 총력전”이라고 밝힌 바 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월에는 스위스 취리히연방공대 석학들과 만나 양자 기술 발전 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지난 6월 13일, 국내 반도체·양자 기술 분야 석학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대한민국이 세계 기술 패권 경쟁에서 기초과학 발전과 인재 육성을 토대로 경쟁력을 갖추는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서다. 국회의원회관 제3세미나실에서 ‘반도체 및 양자 기술 패권 경쟁 시대와 대한민국의 미래’ 주제로 열린 이번 토론회는 국민의힘 김영식 의원실이 주최하고 기초과학 학회협의체, 대한수학회, 한국물리학회, 대한화학회, 한국생물과학협회, 한국지구과학연합회, 한국통계학회 등이 주관사로 참여했다.

6월 13일 국회 의원회관 제3세미나실에서 열린 ‘반도체 및 양자 기술 패권 경쟁 시대와 대한민국의 미래’ 세미나에서 김영식 국회의원이 발언하고 있다. | 박재현/에포크타임스

김영식 의원은 개회사에서대한민국은 오랜 기간 반도체 산업에서 반도체 강국으로서 세계적인 성과를 이뤄왔지만 글로벌 공급망 위기, 미중 기술 패권 전쟁 등으로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면서 “위기를 극복하고 과학기술 강국 선도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오늘 자리를 마련했다. 이번 토론회에서 도출된 방안이 미래 도약을 위한 정책에 반영될 있도록 노력하겠다 밝혔다

홍석륜 기초과학 학회협의체·한국물리학회 회장은 환영사에서 “이번 자리를 계기로 치열한 세계 기술 패권 경쟁 시대에 대한민국이 더 밝고 성공적인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창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연구개발정책실 실장과 김장호 구미시장 축사에 이어 송진동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차세대반도체연구소 광전소재연구단 단장과 임현식 동국대 물리반도체과학부 교수의 발제가 진행됐다.

6월 13일 국회 의원회관 제3세미나실에서 열린 ‘반도체 및 양자 기술 패권 경쟁 시대와 대한민국의 미래’ 세미나에서 홍석륜 기초과학 학회협의체 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 박재현/에포크타임스

송진동 단장은 ‘반도체 산업과 기초과학’ 발표에서 “기초과학이 (응용 산업 등에) 활용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그때까지 기술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술 유지 비용은 기술 개발 비용보다 저렴하고 (변화에) 빠른 대응이 가능한 장점이 있다”며 기초과학 육성에 드는 비용은 버려지는 돈이 아닌 마땅히 들여야 하는 ‘보험비’와 같다고 비유했다. 기초과학 특성상 빠른 시일 내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더라도 정부가 반도체와 양자 기술 발전의 근간이 되는 기초과학 육성에 조건 없이 장기적인 투자를 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반도체는 메모리, 통신 장치, 컴퓨팅 시스템, 센서 등 광범위한 응용 산업 분야에 활용되고 있다. 최근에는 반도체가 사물 인터넷(IoT), 인공지능(AI), 머신러닝과 같은 첨단 기술을 제조·공정에 통합하는 데 사용되면서 수요가 더 늘어났다. 지난해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조사에 따르면 미국이 세계 공급망의 절반(49.3%)가량을 차지했으며 한국(19.3%), 대만(9.7%), 일본(6.6%)이 뒤를 이었다. 미국은 지난해 통과한 반도체법 예산 중 약 1000억 달러(약 127조 7500억 원) 이상을 과학·연구개발, 즉 기초과학에 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6월 13일 국회 의원회관 제3세미나실에서 열린 ‘반도체 및 양자 기술 패권 경쟁 시대와 대한민국의 미래’ 세미나에서 송진동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차세대반도체연구소 광전소재연구단 단장이 발언하고 있다. | 박재현/에포크타임스

임현식 교수는 ‘양자 산업과 기초과학’ 발표에서 양자 기술의 핵심 분야, 해외 양자 산업 육성전략, 양자 기술 발전과 기초과학 등에 관해 설명했다.

임 교수에 따르면 양자 기술 응용 영역에 ‘양자컴퓨터‘ ‘양자암호통신’ ‘양자 센서등이 대표적으로 거론됐다. 양자컴퓨터는 기존 컴퓨터의 계산력을 폭발적으로 증가시킬 있는 잠재력을 가진 것으로 평가받는다. 학계에선 기존 컴퓨터 기술이 1024비트 암호 해독에 100만 년이 걸린다면 양자컴퓨터는 10시간이면 끝낼 있을 것으로 추산한다

양자암호통신은 해저 광케이블, 근거리 무선 통신(NFC), 위성통신 해킹 등을 통한 국제 사이버 범죄가 급증하는 가운데 차세대 보안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암호키를 양자 신호로 통신하기 때문에 불법 ·감청, 해킹 등을 사실상 원천 차단할 있다. 양자 센서는 예를 들어 의료기관에서 사용하는 기존 자기공명영상(MRI) 5mm 크기 이하 암세포만 식별할 있었다면 양자 기술을 접목한 MRI 0.05mm보다 작은 암세포도 식별할 있다.

6월 13일 국회 의원회관 제3세미나실에서 열린 ‘반도체 및 양자 기술 패권 경쟁 시대와 대한민국의 미래’ 세미나에서 임현식 동국대 물리반도체과학부 교수가 발언하고 있다. | 박재현/에포크타임스

임 교수는 세계 양자 기술 경쟁에서 한국은 크게 뒤처진 상태라고 지적했다. 그는 “세계 각국의 양자 산업은 정부의 정책 지원으로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세계 유수 기업체들도 양자 산업에 대규모 투자를 감행하며 핵심 원천기술을 확보하기 위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면서 “양자 기술 관련 국제 특허 등록 건수도 급격하게 증가하는 추세이고 관련 논문도 미국, 중국, 유럽 등에서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지만 한국은 후발주자로 이들과 격차가 큰 편”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연구재단이 지난 5 발표한국가 전략기술 글로벌 상위 논문·특허 분석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논문 건수, 피인용 횟수, 특허 건수 등을 종합 분석한 결과 한국은 양자컴퓨팅 분야 논문에서 25, 특허는 8위에 머물렀으며 양자통신·양자 센서 분야에서는 LG·삼성  기업의 특허 발표 외에는 별다른 결과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임 교수는 “선진국 대비 뒤처진 우리나라 양자 산업을 부흥시키기 위해국가 차원의 정책 지원과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며 “장기적인 관점으로 기초과학 인력을 육성하고 혁신연구센터 등을 구축해 양자 분야를 지원해야 한다 강조했다.

6월 13일 국회 의원회관 제3세미나실에서 열린 ‘반도체 및 양자 기술 패권 경쟁 시대와 대한민국의 미래’ 세미나에서 토론이 진행되고 있다. | 박재현/에포크타임스

이날 토론은 김지환 대한화학회 학술 부회장이자 서울대 화학부 교수를 좌장으로, 이학배 연세대 응용통계학과 교수, 이창옥 한국과학기술원(KAIST) 수리과학과 교수, 양희준 KAIST 물리학과 교수, 안재욱 한국연구재단 책임전문위원이자 KAIST 물리학과 교수, 박재홍 이화여대 화학·나노과학과 교수, 차승남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홍진표 자연과학대 학장이 참여했다.

박재홍 교수반도체와 양자 기술은 21세기 최첨단 기술로 추앙받고 있지만 뿌리는 100 물질을 구성하는 기본단위인 원자·분자에 대한 양자 특성에 대한 이해, 기초과학에서부터 출발했다. 반도체와 양자 기술은 ()에서부터 연구가 시작되는 것이 아니며 관련 교육 또한 기존 학문과 동떨어진 새로운 학문을 배우는 것이 아니다라며이는 화학, 물리학, 수학 등의 기초 학문을 바탕으로 재료과학, 전기·전자공학, 컴퓨터공학, 화학공학  응용 학문과의 융합과 발전을 추구하는 기술이라고 생각한다 밝혔다. 이어 기초과학에 대한 현대 교육의 토대를 선배 학자들께서 훌륭하게 정립해 놓았기 때문에 우리는 이미 새로운 기술에 대한 과학적 토대가 있는 이라며지금은 기초과학 소양을 갖춘 다수의 인재를 육성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라 제언했다.

홍진표 교수는 반도체 과학기술 변화에 따른 기초 인력양성 패러다임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역설했다. 홍 교수는 “우리나라는 기초연구와 응용연구 간 인식 격차가 크고 양쪽을 다 포괄하는 인재가 부족하기 때문에 이 간극을 연결하는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또한 자연계이공계 특정 계열의 인재가 아닌 융합형·문제해결형 인재를 양성하는 것도 중요하고 말했다. 구체적인 개선안으로 홍 교수는 △기초과학과 산업간 응용 인력 양성 △수요지향형 반도체 기초과학 수업 개발·운영 최첨단 강의실·인프라 구축 △산학협력 기초 교육 구축 국제화 역량 지원 교원·대학 평가 방법 개선 등을 제시했다.

6월 13일 국회 의원회관 제3세미나실에서 열린 ‘반도체 및 양자 기술 패권 경쟁 시대와 대한민국의 미래’ 세미나에 참석한 내빈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박재현/에포크타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