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탑’…하늘에 닿으려는 인간의 자만심을 쪼개다

[시리즈 칼럼] 고전회화는 사람의 내면에 무엇을 남기는가
에릭 베스
2020년 12월 16일
업데이트: 2020년 12월 19일

좋은 사람이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볼 때가 많다.

동시에 진정 좋은 사람이 되려는 것을 방해하는 마음은 무엇인지 또 자문해 보기도 한다. 이런 질문 뒤에 즉각 떠오르는 단어는 바로 자만심이다. 자만심이야말로 좋은 사람이 경계해야 할 가장 위험한 장벽이 아닐까 싶다.

선행도 때로는 과시욕에 의해 촉진될 때가 있다. 주위 사람들로부터 받는 칭찬과 인정은 우리를 ‘의로운’ 행동으로 이끈다. 하지만, 그 의로움은 도덕적·윤리적 원칙에 의한 것이 아닌 우리의 자만과 과시를 위한 행동일 뿐이다.

인간의 자만과 교만이 어떤 결과를 부르는지에 대한 전형적인 예는 바벨탑 이야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바벨탑

바벨탑 이야기는 성경의 창세기와 유대교의 고전 랍비 문학인 ‘아가다’(Aggadah)에 언급돼 있다. 이 책들은 사람들이 바빌로니아 평원에 정착했던 때를 다루는데 바로 그들이 통일된 하나의 언어를 사용하던 때이기도 하다.

바빌로니아인들은 강력한 정복자였던 님로드(Nimrod)에 의해 통치됐는데, 그의 두려움을 모르는 자만심은 결국 백성들이 하느님을 반역하도록 만들었다.

님로드는 하늘까지 닿는 탑을 건설하길 원했고 그곳에서 우상을 섬기고 제사를 지내고 싶어 했다. 바빌로니아인들 또한 세상에 그들의 이름을 떨치고 싶어 했고 통일된 강대한 제국을 유지하고 싶어 했다.

그러자 하느님이 내려와 탑의 건축을 확인했고 바빌로니아인들이 하나의 언어로 통일돼 있음으로 그들의 계획이 성사될 수 있을 것을 보았다. 하느님은 곧 그들의 언어를 혼동 시켜 사람들을 전 세계로 퍼트리기로 했고 그 후 탑 건축은 중단됐다.

피터르 브뤼헐의 ‘바벨탑’

피터르 브뤼헐(1525–1569)은 16세기 북부 르네상스 시대의 네덜란드 예술가였다. 그는 북부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쉬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웅장하면서도 섬세한 풍경화와 환상적이고 다면적인 작품을 창작했다.

피터르 브뤼헐이 1563년 그린 ‘바벨탑’은 현재 남아있는 그의 두 바벨탑 그림 중 하나이며 빈 미술사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이 작품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탑이다. 그것은 건설 중에 있고, 외벽의 부드러운 노란색은 지평선을 지나 하늘로 뻗어 나가는 내벽의 어두운 빨강과 잘 대조된다.

탑을 건설하고 있는 일꾼들을 보여주는 ‘바벨탑’의 부분. 페테르 브뤼헐, 판넬에 유화, 114 cm × 155 cm, 1563 비엔나 미술사박물관 소장. | Public Domain

브뤼헐은 탑을 건설하고 있는 수백 명의 일꾼을 작은 크기로 그렸다. 그들은 모두 힘을 합쳐 탑을 완성하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탑의 주변은 도시의 나머지 지역이다. 브뤼헐은 보통 사람들의 주거 공간과 탑의 거대한 크기 차이를 매우 효과적으로 묘사했다.

이어 우리의 시선은 작품의 왼쪽 아래로 이끌려 내려가는데, 그곳에는 짙은 덤불이 줄지어 있다. 이 덤불 앞으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보인다. 이들은 작품의 두 번째 초점이다. 무리의 맨 앞쪽으로 님로드로 보이는 인물이 있다.

그는 망토를 걸치고 머리에 왕관을 썼다. 그의 앞에는 농민들이 무릎을 꿇고 있고, 일꾼들은 커다란 석판을 건설 현장으로 운반하고 있다.

님로드 왕을 보여주는 ‘바벨탑’의 부분. 페테르 브뤼헐, 판넬에 유화, 114 cm × 155 cm, 1563 비엔나 미술사박물관 소장. | Public Domain

자만심을 흐트러뜨리다

바벨탑을 감상하며 필자에게 즉각 떠오른 질문은 ‘왜 하느님은 바빌로니아인들을 분산시키고 그들의 언어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는가?’ 였다. 우리는 종종 대업을 완수하기 위해선 함께 일하는 것이 지혜롭다고 생각하지만, 이 경우 하느님은 우리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신 게 분명하다.

하느님이 그들의 언어를 혼란스럽게 만든 한 가지 이유는 인간이 신을 대신하려 했기 때문일 것이다. 브뤼헐은 님로드를 하느님 대신 숭배 받는 존재로 묘사했다. 동시에 위대한 정복자인 그를 그저 단순한 인간으로, 하느님에 의해 그의 자만심 넘치는 계획이 좌절당하는, 그리하여 하늘에 도달할 수 없는 존재로 묘사했다.

또 다른 이유는 그들이 ‘함께’ 지상 위에 천국을 만들려고 시도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시도는 천국의 반대 방향을 향하는 것이었다. 천국으로 가는 여정은 개인적이고 내면적인 것이 아니던가.

어쩌면 그들의 마음과 생각이 하느님께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의 시도가 헛된 것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므로 신은 그들을 분산시키고 그들의 언어를 혼란스럽게 하여 그들에게 ‘은혜’를 베풀었다. 그들은 새로운 환경과 상황 속에서 다시 한 번 개개인의 내면으로 돌아가 하느님을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필자에게 탑은 자만심의 상징으로 해석된다. 자신을 주변 사람들에게 과시하고 싶어 하는 인간의 성향을 표현한 게 아닐까 싶다. 우리는 때때로 남들보다 더 훌륭하고 뛰어남을 인정받기 위해 선행을 베풀고 이타적인 행동을 보여주며 사람들을 기만한다. 그것은 마치 지상에 천국을 쌓아 올리려는 거짓되고 불운한 시도와 같다.

외적으로 자신을 높이려는 행동보다 내면으로 돌아가 천국을 발견하려는 시도가 더 지혜로운 방법일 것이다. 사람들로부터 찬양받는 것을 통해 내면의 가치가 쌓일 수는 없다. 하느님이 말씀하신 내면의 고요는 외적인 욕망과 자만심을 분산시켰을 때 비로소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예술은 보이지 않는 것을 나타내는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것은 나와 이것을 보는 모든 사람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과거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으며 미래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 것인가?’ ‘인간의 경험에 대해 무엇을 제안하는가?’라고 질문할 수 있다.

 

* 에릭 베스(Eric Bess)는 현재 비주얼 아트 박사 과정을 공부하는 젊은 화가 겸 예술전문 기고가다. 고전회화를 중심으로 예술 작품 큐레이션에도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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