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학-중국 국가한반 ‘공자학원 계약서’ 첫 공개

2021년 5월 28일
업데이트: 2021년 5월 28일

중국 공산당 산하 국가한반(漢辦)에서 운영하는 대외 공작기관 ‘공자학원’이 미국 대학과 맺은 계약서가 최초로 공개됐다.

26일(현지시각) 미 고등교육 관련 뉴스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매체 ‘캠퍼스 리폼’은 미국 대학 32곳이 국가한반과 체결한 120쪽짜리 계약서를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캠퍼스 리폼이 정보공개법에 따라 입수한 이 계약서에 따르면, 공자학원 미국 본부는 미국 대학들이 공자학원 수업에 대해 중국 측의 품질 평가를 받도록 해왔음이 드러났다.

대학 내 학문의 자유를 중요하게 여기는 미국 풍토에서, 공자학원 수업으로 국한되기는 했지만 중국이 대학 수업 내용을 평가해왔다는 사실은 충격적인 일로 여겨진다.

공자학원은 중국어와 중국문화 교육 및 문화적 교류를 표방하지만, 미국 정부와 안보전문가들은 중국이 공산주의 체제를 선전하고 미국 교육계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투입한 정부기관으로 판단하고 있다.

미 국무부는 작년 8월 워싱턴DC에 있는 공자학원 미국센터(CIUS)를 “중국 공산당의 글로벌 영향력과 선전 수단의 일부”라며 ‘외국 정부 대행기관’으로 지정했다.

‘외국 정부 대행기관’으로 지정되면 ‘외국대리인등록법’(FARA)에 따라 연간 예산과 경비, 활동 범위, 외국 정부와의 관계 등을 공개해야 한다. 또한 방송이나 출판물에 ‘외국 정부 대행기관’이라는 사실을 고지해야 한다.

FARA는 1930년대 나치 정권이 미국에서 나치즘을 퍼뜨리고 히틀러에 대한 우호 여론을 형성하기 위해 벌인 조직적 활동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 의회가 도입한 법안이다. 미 국무부는 공자학원을 나치 선전기관에 준하는 기관이라고 본 것이다.

실제로 공자학원의 총본부 격인 국가한반은 중국 공산당 중앙 통일전선공작부 산하 기관이다. 통일전선은 공산주의 세력이 강력한 적을 상대할 때, 적의 적과 손잡거나 내통세력을 만드는 공작이다.

미 의회 산하 미·중 경제안보심사위원회(USCC)는 2018년 8월 보고서를 통해 중국이 공자학원 등 학술기관과 단체를 통해 해외에서 통일전선 공작을 실행한다고 지적했다.

캠퍼스 리폼에 따르면, 32개 대학 중 포틀랜드 주립대, 서던유타 주립대 등 7곳은 공자학원의 커리큘럼 선정과 수업 운영을 사실상 중국 한반에 위임했다. 중국 정부가 미국 대학 내에서 가르치고 싶은 것을 재량껏 가르칠 수 있도록 한 셈이다.

이날 공개된 17쪽 분량의 뉴욕 시립대(CUNY) 버룩(Baruch) 칼리지의 공자학원 계약서는 공자학원의 업무 범위를 미·중 기업가, 정책 입안자, 투자 책임자, 투자자, 분석가, 학자 및 학생에게 미·중 금융 시스템과 시장 교류 플랫폼을 제공하고 관련 배경 지식과 언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으로 돼 있다.

작성 일자가 2016년 11월 2일로 표시된 이 계약서는 또한 공자학원이 글로벌 금융, 국제 무역 및 관련 언어·문화 교류와 같은 주제에 대한 다양한 형태의 세미나 및 강의를 개최할 수 있으며, ‘본부’(국가 한반)의 권한을 위임받거나 의뢰를 받아 여타 활동도 펼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어 교육기관’이라는 명칭에 비하면 사업·투자·정책 등 공자학원이 미국 대학 내에서 시행할 수 있는 업무 범위를 광범위하게 설정하고 전권을 위임한 것이 특징이다.

미 버룩 칼리지가 중국 국가한빈괴 체결한 공자학원 계약서 | 캠퍼스 리폼

공자학원, 대학 내 중국 관련 정보 통제

톨레도(Toledo)대와 공자학원이 체결한 계약서에서 ‘(공자)학원은 반드시 (한반의) 교육 품질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조항을 뒀다.

센트럴 코네티컷 주립대학교, 코네티컷 주립대, 뉴욕시립대 버룩·서던메인대·위스콘신 플랫빌·뉴욕 주립대 빙엄턴(Binghamton) 역시 계약서에 비슷한 조항이 있었다.

이와 관련, 톨레도대 측은 캠퍼스 리폼에 “우리 대학은 수업 내용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을 진다”며 중국 측의 ‘사전 검열’ 지적을 부인했다.

위스콘신대 플랫빌 캠퍼스 측 역시 “본부(국가한반)의 평가를 받겠다는 조항은 대학이 공자학원 측에 충분한 활동 공간을 제공한다는 의미”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미 해군참모대학교 생물학적 안전성·기술·윤리 선임연구원인 제임스 지오다노 조지타운대학교 정신의학과 교수는 계약서의 이 같은 조항은 미국 대학 내 공자학원에서 가르칠 수 있는 내용을 통제할 권한을 중국에 명확하게 부여했다고 지적했다.

지오다노 교수는 “공자학원에서 가르친 내용과 발표한 내용은 중국의 정치적 지원 아래에서만 통과될 수 있다”며 “공자학원은 독립체가 아니라 중국의 ‘직접적인’ 원조 형식에 가깝고, 이들은 대학 내 중국 관련 정보의 흐름을 통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공자학원을 통해 발표되는 중국과 그 역사문화, 예전과 현재의 정치적 상황, 그들의 가식적인 태도, 단기적 중장기적 의도, 글로벌 이슈에 개입하는 모든 정보는 모두 (중국의) 후원과 검열하에 완성된다”고 전했다.

공자학원 내 모든 정보는 ‘본부’ 승인 필요

공자학원 계약서에서는 대학 측에 품질 평가를 의무화하면서, 동시에 대학 측에 공자학원 내 수업을 관리할 권한도 부여했다.

그러나 대학 측 권한은 실효성이 약하다는 게 지오다노 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공자학원의 모든 내부 자료는 본부의 승인하에 제공된다”며 사실상 대학 측이 할 수 있는 부분은 많지 않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뉴욕시립대 버룩 캠퍼스의 공자학원 계약서에는 “본부(국가한반)는 버룩 캠퍼스와 교직원들이 관리하는 모든 (공자학원) 프로그램의 수업 내용과 방식에 대해 최종 결정권을 갖고 있다”고 명시했다.

미 버룩 칼리지가 중국 국가한빈괴 체결한 공자학원 계약서 | 캠퍼스 리폼

외국 적대국에 학업적 자유권 넘겨준 것

계약서에 대한 논란과는 별도로, 미국 대학들은 연이어 공자학원을 퇴출시키고 있다.

미 보수매체 워싱턴 이그재미너는 지난 6일 “미국 내 대학 100여 곳에 설치됐던 공자학원이 현재 수십 곳이 폐쇄되며 사라져가고 있다”고 보도했다.

캠퍼스 리폼에 따르면, 이번에 계약서가 공개된 위스콘신대 플랫빌 캠퍼스 역시 이달 말 공자학원을 폐쇄한다. 중국 측의 평가를 허용한 나머지 6개 대학도 올해 안으로 공자학원 계약기간이 만료되면 연장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비슷한 일의 재발을 막기 위해 적대국의 교육계 침투에 대한 미국 사회의 경각심을 환기할 필요가 있다고 관계자들은 말한다.

미 해군차관을 지낸 세스 크롭시 허드슨연구소 선임 연구원은 “적대국에 미국의 학업을 통제할 권한을 내주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며 “학교 경영, 교육과정, 교사 평가 등 어떠한 학업 통제권이라도 내줘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크롭시 연구원은 “공자학원은 딱 보기만 해도 어리석고 해롭다”며 “게다가 중국을 연구하는 미국인들이 많다. 중국의 사상과 언어를 가르칠 만한 교사를 구태여 중국 정부기관에서 찾을 필요도 없다”고 덧붙였다.

미 정치권에서는 대학 등 민간 자율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제도적 차원에서 공자학원에 대한 대비책 마련에 힘쓰고 있다. 미 연방의회 공화당 소속 마샤 블랙번, 조시 하울리 상원의원이 공자학원 제재 법안을 지지하는 대표적인 의원들이다.

한편, 공자학원 계약서를 단독 공개한 캠퍼스 리폼은 미국의 보수 리더 양성기관인 리더십 연구소 산하 매체다.

/류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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