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풀려난 불법 이민자, 2023년에 600만명 넘었다

한동훈
2023년 12월 31일 오후 4:42 업데이트: 2024년 01월 2일 오전 10:13

이민국, 2023년 회계연도 연간 보고서 발표
“비구금 불법 이민자 620만명..작년 대비 30% ↑”

미국 내에 풀려난 불법 이민자 수가 600만 명을 넘어선 것으로 집계됐다. 남부 국경에서 촉발된 위기가 미국 사회에 암울한 그림자를 드리운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민세관단속국(ICE)은 29일(현지시간) 발표한 연간보고서에서 추방 명령을 받았지만 소송 중인 사례를 포함해 구금되지 않은 불법 이민자가 2023년에 한 해에만 30% 증가했다고 밝혔다(보고서 링크).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326만 명이었던 미국 내 비(非)구금 불법 이민자는 2021년 360만 명, 2022년 470만 명, 2023년 620만 명으로 30% 이상 급증했다.

2022년부터 한 해 100만 명 이상 폭증하게 된 것은 조 바이든 행정부의 수용적 이민자 정책이 알려지고 난 후 세계 각지에서 출발한 사람들이 중남미를 거쳐 2022년부터 남부 국경에 본격적으로 도착하기 시작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보고서에서도 미국-멕시코 사이 남부 국경을 불법으로 넘은 사람들의 체포가 이러한 증가의 주요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구금 중인 불법 이민자 수도 증가세다. 수용시설과 처리 절차 등의 한계로 2022년 2만6299명이었던 숫자는 2023년 3만6845명으로 증가했다.

당국은 2023년에 14만2천 명 이상의 불법 이민자를 추방했는데, 이는 전년 대비 거의 두 배에 달하는 수치다.

미국 관세국경보호청(CBP) 월간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1월 남부 국경에서 총 24만2418명의 불법 이민자를 적발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불법 이민자 증가와 그에 따른 치안 불안은 2024년 11월 미국 대선을 앞두고 최대 쟁점으로 부각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 국경 장벽 건설을 주요 정책으로 추진해 실제 장벽 일부를 건설했다.

당시 이 정책은 반대 측으로부터 ‘정신 나간’ 정책이라며 격렬한 비난을 받았으나, 현재는 현실적인 대안이라는 재평가도 이뤄진다.

취임 직후 트럼프의 국경 장벽 건설을 포함해 이민 정책 상당 부분을 취소시킨 바이든 대통령마저도 지난 10월에는 “이민자 급증으로 인해 장벽 건설을 재개한다”고 발표해 트럼프의 정책이 최소한 불법 이민자 문제에서만큼은 효과적이었음을 사실상 시인했다.

미국과 멕시코 사이 국경을 나누는 장벽은 1900년대 초반에 최초로 건설됐으며, 이후 여러 대통령에 의해 일부가 추가됐다. 1996년 민주당의 빌 클린턴 당시 대통령 역시 ‘불법 이민 개혁 및 이민자 책임법’에 서명해 초기 장벽 강화 및 장벽 추가 건설을 승인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때도 국경 장벽은 649마일(1044km) 건설됐다. 다만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16년 대선을 앞두고 유세 기간 내내 “훨씬 더 크고 강화된 국경 장벽을 건설하겠다”는 방안을 강조해 눈길을 끌었다.

현재 재선에 도전 중인 트럼프 전 대통령은 불법 이민자 유입을 “국가 안보상 위기, 핵심 문제”로 평가하면서 선거에서 승리할 경우 “취임과 동시에 강력한 국경 보안 조치를 취하겠다”고 여러 차례 공언한 바 있다.

트럼프는 최근 보수성향 라디오 진행자 휴 휴잇과의 인터뷰에서 “죄수들이 들어오고 있다. 정신병 환자들도 수천 명씩 들어오고 있다. 정말, 수백만 명이 들어오고 있다”며 바이든 대통령이 퇴임할 때쯤에는 그(1500만명) 이상이 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멕시코에서 리오그란데 강을 넘어 미국 텍사스 이글 패스에 도착한 1천명 이상의 불법 이민자들이 미 국경 순찰대 현장처리센터 근처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 John Moore/Getty Images

불법 이민자로 인한 치안 위기는 바이든 행정부 정부기관에서도 인정하는 문제다.

미 연방수사국(FBI)은 최근 불법적으로 “국경을 넘는 일부 사람들이 테러 위협을 가할 수 있다”며 “큰 우려”라고 밝혔다.

이에 따르면 2023년 회계연도에 남쪽 국경을 넘으려다 체포된 인물 중 테러리스트 목록에 올라 있던 이들은 169명으로 사상 최고치로 나타났다.

관세국경보호청은 최근 멕시코 군이 국경 근처에서 12개의 사제폭발물(IED)을 압수한 후 직원들에게 경계태세를 강화하라는 통지문을 발송했다.

앞서 10월 공화당 상원의원들의 현장 점검 때도 불법으로 국경을 넘은 사람들 사이에서 테러 공격용으로 보이는 폭발물 소지하고 있다가 적발된 사례가 보고됐다.

이에 공화당은 물론 민주당 내부에서도 바이든 행정부의 이민 문제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민주당 헨리 쿠엘라 하원의원은 “바이든 대통령이 불법 이민자를 더 빨리 처리하고 추방할 방법을 찾지 못하면 당내에서 지지를 잃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같은 당 소속의 중도성향 조 맨친 상원의원도 “개방된 국경이 심각한 안보 위협이 된다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우리 당) 동료 의원들은 위기를 가볍게 보고 있다”며 “불법 이민자 유입을 막기 위해 남부 국경을 폐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 이 기사는 톰 오지케크 기자가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