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부족 일으킨 중국 댐과 ‘천혜의 땅’ 만든 고대 수리시설

윈자후이(允嘉徽·윤가휘)
2022년 08월 31일 오전 11:00 업데이트: 2022년 08월 31일 오전 11:28

기원 전 256년 세워져 2천년간 유지된 ‘두장옌’
강물 흐름 끊는 대신 우회로 통해 자동 수량조절
자연재해 주범 지목받는 댐과 뚜렷한 대조 이뤄

현재 중국을 쓰촨성 등 남부 지역을 강타한 전력난과 물 부족의 주요 원인으로 무분별한 댐 건설이 지적된다.

중국 공산당 관리들이 진정으로 국민과 환경, 경제를 고려해서 건설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치적사업으로 삼기 위해 무분별하게 건설했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오늘날 중공 관리들의 난개발 사업은 지금까지 2천 년이 넘도록 쓰촨성 주민들에게 혜택을 준 고대 수리(水利)관개 시설인 두장옌(都江堰·도강언) 건설과 비교하면 매우 대조적이다.

기원전 256년에 만들어진 제방인 두장옌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이자 지금까지도 칭송을 받는 진정한 ‘치적사업’이다.

중공 관리들이 현대적 장비와 기술, 거액의 자금을 가지고도 주민들에게 혜택은커녕 전력난과 물부족, 환경파괴를 일으키는 ‘불량 댐’밖에 건설하지 못한 것은 바로 마음가짐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두장옌에 관해 살펴보자면, 먼저 전국시대 진(秦)나라 촉군(蜀郡)의 태수였던 이빙(李冰)에 대해서부터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이빙은 아들 이이랑(李二郎)과 함께, 파촉(巴蜀·오늘날 쓰촨성) 주민들을 모아 수리를 개선하는 공사를 벌였다. 그렇게 완공된 두장옌은 쓰촨성의 청두 평원을 천혜의 땅으로 탈바꿈시켰다.

중공은 이른바 “산하를 개조하고”, “인간이 자연을 다스린다”고 주장하지만, 2천 년 전 지방관료가 일궈낸 위대한 업적에 비하면 요란한 정치선전구호를 외친 것에 불과하다.

사마천은 <사기>의 ‘하거서(河渠書)’에서 위대한 업적을 이뤄낸 이 지방관에 대해 기록했다. 다만 ‘촉군 태수 빙(蜀守冰)’이라고만 적어 성씨를 밝히지 않았고 이빙의 성씨는 훗날 반고가 쓴 <한서>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기록됐다.

두장옌이 완공된 이후 파촉 사람들은 이빙 부자를 기리기 위해 매년 두장옌에 물을 내보내는 때가 되면 성대한 제사를 거행했다.

역대 제왕들도 이러한 민심을 헤아려 이빙 부자의 공적을 중시했다. 송나라, 원나라 때는 이빙 부자를 왕으로 봉하고 이왕묘(二王廟)라는 사당을 지어 제사 지내도록 했다.

이빙의 생애를 전반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기록은 현재 전해지지 않는다. 분서갱유와 전쟁을 거치면서 사적들이 소실된 까닭이다. 그러나 이빙이 백성을 사랑한 지방관이자 과학적 견해를 갖춘 인물이었음은 분명하다.

촉군(쓰촨성)에 재임할 당시 이빙은 두장옌 이외에도 백성들에게 도움을 주는 다양한 시설들을 건설했다. 그 과학적 가치와 거대한 경제적 효과는 오랜 세월 혜택을 주면서 인류문명의 한 위업으로 남겨졌다.

두장옌의 위쭈이(魚嘴·물의 흐름을 나눠주는 시설)와 방죽(물을 막기 위해 쌓은 둑)을 민장 좌측 강가에서 촬영한 모습. | 위키피디아

지리적 특성 고려한 ‘천년 설계’

쓰촨성은 창장(長江·장강) 중류에 위치한다. 장강의 지류 네 줄기가 이곳에서 장강으로 흘러든다는 이유로 쓰촨(四川·사천, 4개의 하천)이라는 이름을 얻게 됐다.

지류 네 줄기 가운데 가장 자주 범람 피해를 일으키는 것은 민장(岷江·민강)이다.

민장은 간쑤성과 쓰촨성 경계에 있는 높은 봉우리에서 기원하는데, 봄이 되면 해발 4천m에 달하는 이 봉우리에서 눈이 녹아 만들어진 강물이 북쪽으로부터 힘차게 내려와 강가 양쪽의 푸석푸석한 혈암과 이암을 부식시키고, 이때 떨어져 나온 모래와 진흙을 실은 채 거의 일직선으로 남쪽을 향해 흘러간다. 이로 인해 큰 수해가 자주 발생했다.

이빙 부자가 건설한 이후로 약 1500년간 사용되었던 두장옌은 원나라(1271~1368년)에 이르러서야 망가졌다.

이처럼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 핵심적인 이유는 이빙 부자가 세운 것이 강물을 가로막는 댐이 아니라 강가에 놓인 외부 저수지였다는 데 있다.

외부 저수지는 민장 강물이 혼탁할 때에는 물을 들이지 않고, 물이 깨끗할 때만 물을 끌어 올림으로써 댐이 유발하는 토사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

핵심시설 자재를 현지에서 조달

두장옌 수리시설 가운데 가장 중요한 시설은 수로다. 이는 두장옌 관개(灌漑)시스템 가운데 핵심이 되는 시설이다.

두장옌의 수로는 물의 흐름을 나눠주는 위쭈이, 수량 조절시설인 바오핑커우, 여수로(餘水路)인 페이사옌 등 세 부분으로 나뉜다.

이빙 부자는 건설 자재를 모두 현장에서 조달했다. ‘물고기 입’이라는 뜻의 위쭈이(魚嘴·어취)는 민장의 물줄기를 둘로 나누는 일종의 인공섬으로 쓰촨에서 자라는 대나무로 만든 뗏목에 산에서 가져온 큰 돌을 넣어 강물 속에 빠뜨리는 식으로 건설됐다.

위쭈이를 기준으로 서쪽에는 민장 수량의 60%를 차지하는 바깥 강(外江)이 흐르며 민장의 주요 물줄기를 이룬다. 나머지 40%는 동쪽으로 흐르며 안쪽 강(內江)이 돼 바오핑커우로 유입된다.

두장옌의 물고기 입 어쭈이(魚嘴). 민장의 물줄기를 둘로 가르는 시설이다. | Pixabay

바오핑커우(寶甁口·보병구)는 물을 끌어들이고 흘러가는 수량을 조절하는 기능을 담당한다.

즉 두장옌은 강물의 흐름은 바깥 강으로 유지하면서 안쪽 강을 통해 필요한 만큼 수량을 조절하며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도 적응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를 위해 이빙은 물의 흐름과 지형적 특성에 근거해 경사가 비교적 완만한 곳에 하부 가로폭 17m가량의 아치형 틈새를 뚫었다. 이 틈새는 갈수기에는 가로폭 19m, 홍수기에는 23m가량이 되는데, 이것이 바로 바오핑커우 회수로이다.

이러한 바오핑커우의 구조는 매우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자랑하며 ‘관양10경’(灌陽十景)의 하나로 꼽히며 오랜 세월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페이샤옌(飛沙堰·비사언)은 중간 부분에 위치한 여수로이며 여분의 물과 모래를 배출하는 기능을 한다.

이러한 세 가지 시설로 두장옌은 강물의 흐름을 자동으로 나누고 모래와 물을 자동으로 배출하며 강물을 끌어오는 난제를 모두 해결할 수 있었다.

농업용수 공급, 수해 방지라는 일석이조를 거둔 두장옌 수리시설은 세계 수리사에 있어 일대 쾌거로 평가된다.

두장옌 풍경. 사진 왼쪽으로 보이는 수로가 바오핑커우다. | 위키피디아

용수 공급으로 지역경제 기반 다져

이빙은 강줄기 안에 토사가 과도하게 많은지 여부를 알아내기 위해 강줄기 안에 돌 코뿔소상 다섯 개를 설치해 강바닥을 측량하는 기준점으로 삼았다.

또한 수위를 측정하기 위해서는 강물 속에 돌 거인 세 개를 설치해 수위가 발아래에 이르면 강물을 더 끌어오고, 수위가 어깨를 넘으면 입수량을 줄였다.

이 지역은 토지가 비옥해 생산물이 풍요로웠는데, 두장옌은 이러한 풍요의 핵심기반이었으며, 오늘날까지도 6천 제곱킬로미터(㎢) 이상의 지역에 용수를 공급하는, 대체 불가능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두장옌에는 ‘망낭탄(望娘灘)’이라는 전설도 전해진다.

이 전설에 따르면, 인근 마을에 섭(聶)씨 성을 가진 가난한 소년이 살았는데, 홀어머니를 모시고 풀을 베어다가 내다 팔며 생계를 유지하던 이 소년은 어느 날 하늘에서 떨어진 보물을 발견했으나 우여곡절 끝에 이를 삼켰다가 뱀으로 변할 처지에 놓인다.

마을 사람들을 피해 강으로 달아난 소년은 이미 몸 반쪽이 뱀으로 화했으나, 뒤쫓아간 어머니가 다리 한쪽을 잡아당기며 이름을 부르자 소년은 뒤를 돌아보더니 입에서 모래를 뱉어냈다.

어머니는 소년의 이름을 모두 스물네 번 불렀고, 소년은 스물네 번 모래를 뱉어내더니 용이 돼 하늘로 날아올랐다. 이때 만들어진 모래톱이 망낭탄으로 불리게 됐다는 이야기다.

 

물줄기를 둘로 나누는 두장옌은 강물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는 수량 조절 시스템을 갖췄다. | 위키피디아

댐, 그리고 생태계로서의 두장옌

오늘날 댐은 현대적인 수리 관계시설의 대표적 건축물로, 수력발전과 용수 확보·공급을 위해 쓰인다.

그러나 강의 허리를 끊는 댐은 흐르는 물을 갇힌 물로 바꾸어 놓으며 주변 생태계에 급격한 변화를 일으킨다. 또한 강물의 유속을 느리게 해 진흙과 모래의 퇴적을 유발하는 부작용을 일으키기도 한다.

이와 비교할 때 고대 중국 건축물인 두장옌은 남다른 특징을 가진다.

전 세계를 통틀어 가장 수명이 긴 인공시설인 두장옌은 생태계를 전혀 파괴하지 않고도 잦은 범람을 일으키는 강을 인간에게 이득이 되도록 바꾸어 주며, 인근 지역을 2천 년이 넘도록 천혜의 땅이 되도록 했다.

중국에는 “그 지방의 물과 흙이 그 지방 사람을 길러낸다”는 말이 있다. 세계 주요 문명의 기원지는 모두 강 부근이었다. 이는 인류의 생존과 번식에 있어 강물이 갖는 중요성을 보여준다.

지구상의 수많은 크고 작은 하천은 사람들에게 생활의 터전을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생태계의 균형을 유지하는 작용을 해왔다.

하지만 이러한 기능들은 댐 건설로 인해 약화되거나 심지어 파괴되기도 한다.

과학학술지 <사이언스>는 2005년 4월호에 실린 미국과 스웨덴 학자들의 공동연구에서 “곳곳에 위치한 수리시설이 수많은 하천 유역을 파괴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연구팀은 조사 대상이었던 하천 292곳 중 172곳에서 댐으로 인한 부작용을 발견했다. 관개용수까지 포함한다면 이 숫자는 더 커진다.

인류가 댐을 건설하는 주요 목적은 홍수와 범람 방지, 수력발전, 혹은 음용수, 관개용수 저장 등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하천 21곳에는 모두 댐이 설치되어 있으며, 지리환경과 생물환경이 가장 다채로운 하천 8곳에도 모두 댐이 설치된 상태다.

독일에 거주하는 중국 수리전문가 왕웨이뤄 박사에 따르면 중국 공산당은 1949년 집권 이후 지금까지 약 8만 개의 댐을 건설했다. 이는 전 세계 댐의 절반을 차지하는 엄청난 규모다.

높이 15m가 넘는 댐은 4만5천 개 이상, 높이 150m가 넘는 댐은 300여 개에 이른다. 그중 가장 규모가 큰 것은 싼샤(三峽·삼협)댐으로, 높이는 181m, 저수량은 39세제곱킬로미터(㎦)로 추정된다.

댐 건설에는 큰 대가가 따른다. 한 중국 언론 보도에 따르면 장강 연안의 싼샤댐 공사가 완공되기 전까지 수몰지역 주민 139만 명이 삶의 터전을 떠나야 했고 수많은 문화재가 수몰돼 많은 논란을 빚었다.

싼샤댐 건설에는 수많은 자원이 투입됐지만 치수 및 홍수 방지 효과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오히려 하류 지방의 홍수를 부추긴다는 지적도 나온다.

2020년 7월, 한달 가량 계속된 폭우에 싼샤댐이 일부 수문을 열어 물을 방류하고 있다. 2020.7.18 | 신화/연합뉴스

올해 7월 중국을 강타한 가뭄과 폭염으로 중국의 양쯔강은 강바닥을 드러냈다. 그러나 중국의 물 부족은 상당 부분 잘못된 수력발전 계획에 기인한다고 왕 박사는 지적한다.

그에 따르면, 중국 수자원 당국은 6~8월 홍수를 예상해 지난 6월 모든 댐에서 물을 방류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댐은 인류가 강의 흐름을 조절해 물을 보관하고 필요할 때 쓸 수 있도록 하지만, 변화무쌍한 기상 조건하에서 관리자의 잘못된 결정으로 오히려 수자원 관리에 실패를 자초할 가능성도 내포하고 있다.

왕 박사는 “쓰촨 지역에 상류에 세워진 500여 개의 댐으로 강물의 흐름이 느려지면서 물 증발이 증가했으며, 생태계 변화로 인근 지역의 강수량이 10% 이상 감소했다”며 “중국 과학자들도 이를 알고 있지만 감히 상부에 보고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권력자들의 치적사업을 비판하는 것으로 비춰질까 봐 중국 과학자들이 몸을 사린다는 것이다.

기원 전 고대 중국에서 세워진 두장옌은 진짜 치적사업이란 어떤 것인지, 진정한 지방관의 마음가짐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게 만든다.

 

이 기사는 저자의 견해를 나타내며 에포크타임스의 편집 방향성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