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 사도세자 태실 그린 ‘태봉도’ 포함 7건 보물 지정

이윤정
2022년 08월 26일 오후 9:07 업데이트: 2022년 10월 6일 오전 9:18

경북 ‘영천 인종대왕 태실’ 보물 지정
봉화 청암정·부석사 안양루·범종각 보물 지정 예고

문화재청이 8월 26일, ‘영천 인종대왕 태실’과 사도세자·순조·헌종의 태실(胎室)을 묘사한 ‘태봉도(胎封圖)’ 3점을 포함해 문화재 총 7건을 보물로 지정했다. 아울러 비지정문화재인 봉화 청암정, 영주 부석사 안양루와 범종각 등 3건이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된다고 예고했다.

경상북도 영천시에 위치한 영천 인종대왕 태실은 조선 12대 임금인 인종대왕이 태어난 지 6년이 지난 1521년(중종 16), 의례에 따라 건립됐다. 태를 봉안한 태실과 1546년(명종 1) 가봉(加封·자손이 왕위에 오를 때 태실의 위엄을 더하기 위해 격식을 높이는 것) 때 세운 비석 1기로 이뤄져 있다.

태실은 태아를 둘러싼 조직인 태를 봉안해 항아리에 보관한 시설이다. 삼국시대부터 이어진 장태(藏胎·태를 묻음) 문화와 의례를 보여주는 귀중한 사료로 여겨진다.

영천 인종대왕 태실 후경 | 문화재청 제공

파손된 부분을 1680년에 수리하고 1711년에 태실비가 재건되면서 격식을 되찾았다.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총독부에 의해 태항아리와 태지석 등이 고양 서삼릉으로 옮겨졌다. 이후 1999년 발굴조사를 진행해 2007년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원형을 회복했다.

문화재청은 영천 인종대왕 태실이 조선시대 태실 의궤에 따른 격식을 갖추고 있으며, 태실의 규모가 크고 석물을 다듬은 기법이 우수하다고 평가했다. 또 설치 과정과 내력을 알 수 있는 기록이 전해져 역사적·학술적·예술적·기술적 가치가 높다고 설명했다.

보물로 지정된 조선왕실 태실 관련 그림은 장조(莊祖)·순조·헌종 태봉도 등 3점이다.

장조 태봉도는 1785년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1735~1762·후에 장조로 추존)의 태실과 주변 풍경을 그린 것이다. 순조(1790~1834) 태봉도는 순조가 1790년(정조 14)에 태어난 후 충청북도 보은군 내속리면 사내리에 태실을 만들어 태를 안치한 태실의 형상과 그 주변 지형을 그린 것이다. 헌종(1827~1849) 태봉도는 헌종이 1827년(순조 27)에 태어난 후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옥계리에 마련된 태실과 주변 경관을 그린 작품이다.

사도세자·순조·헌종 태봉도(왼쪽부터) | 문화재청 제공

이 밖에도 고려 후기 혹은 조선 초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건칠보살좌상’을 비롯해 ‘금동아미타여래삼존상 및 복장유물’, ‘묘법연화경’ 등도 보물로 지정됐다.

건칠보살좌상은 머리에 보석으로 꾸민 화려한 관을 쓰고 두 손은 설법인(說法印)을 결한 좌상으로, 124.5cm의 큰 규모에 근엄하면서도 정교한 장식성이 돋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건칠은 흙으로 빚은 형상을 만든 뒤 그 위에 여러 겹의 천을 바르고 옻칠한 다음 소조상을 제거한 기법이다. 현존하는 건칠보살상 중 가장 규모가 크며 중량감 넘치는 조형미를 종합적으로 보여준다.

건칠보살좌상 | 문화재청 제공

금동아미타여래삼존상 및 복장(腹藏) 유물은 본존 아미타여래상과 좌우 협시(脇侍·부처를 좌우에서 모시는 두 보살)인 관음보살·대세지보살로 구성됐다. 고려 14세기 삼존상의 전형적인 특징을 갖추었으며 제작연대의 기준이 되는 양식을 지닌 점에서 한국불교 조각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금동아미타여래삼존상 | 문화재청 제공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은 1405년(태종 5) 조성한 불교 경판을 후대에 인쇄해 펴낸 경전으로, 7권 2책으로 구성된 완질본이다.

묘법연화경 | 문화재청 제공

문화재청은 이날 봉화 청암정, 영주 부석사 안양루와 범종각 등 3건을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하겠다고 예고했다.

봉화 청암정(靑巖亭·경상북도 봉화)은 안동권씨 충재 종택 경역 내에 위치한 정자다. 역사 문헌에 따르면 1526년 충재 권벌이 살림집의 서쪽에 세운 사실이 기록돼 있다.

16세기 사대부들은 관직에서 물러난 이후 집 주변이나 경치 좋기로 이름난 곳에 장수(藏修·책을 읽고 학문에 힘씀)와 유식(遊息·몸과 마음을 쉬면서도 학문에 마음을 두는 것)을 위한 개인 거처를 정자 형태로 짓곤 했다. 청암정은 이러한 사대부 주거문화를 선도한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청암정은 연못 한가운데 놓인 거북형태의 바위라는 한정된 공간과 바닥의 불균형을 고려해 궁궐식의 높은 기단을 세우고 바닥을 채워 마루와 온돌을 놓았다. 문화재청은 “경상도 일원에 분포하는 ‘丁’자형 평면을 가진 정자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에 조성됐다”며 “창문을 비롯한 주요 구조는 17세기 이전의 특징을 지니고 있어 역사적·예술적·학술적 가치가 뛰어나다”고 평가했다.

봉화 청암정 | 문화재청 제공

영주 부석사(경상북도 영주시) 안양루(安養樓)는 2018년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부석사 내에 자리하고 있는 문루(門樓·문 위에 세운 높은 다락)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중층 문루로 16세기 사찰 문루 건축의 대표적 사례다. 문헌자료에 의하면 기존에 있던 강운각(羌雲閣)이라는 단층 건물이 화재로 소실된 이후 1576년 같은 자리에 현재의 안양루를 지은 것으로 전해진다.

안양루는 △사찰의 진입 축을 꺾어 무량수전 영역에 진입하도록 배치한 점 △누마루 아래로 진입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 점 △공포와 대들보의 구성 등에 조선 중기 또는 그보다 이전에 사용된 오래된 기법이 남아 있는 점 등을 고려할 때 보물로 지정할 만하다고 문화재청은 판단했다.

영주 부석사 안양루 | 문화재청 제공

범종각(梵鐘閣)은 영주 부석사 내에 자리하고 있는 종각(큰 종을 달아 두는 누각)이다. 정면 3칸, 측면 4칸 규모로 18세기 중엽을 대표하는 종각 건축이다. 문헌에 따르면 1746년 화재로 소실돼 이듬해인 1747년에 중건된 것으로 기록돼 있다.

문헌에 따르면 1746년 화재로 소실돼 이듬해인 1747년에 중건된 것으로 기록돼 있다. 내부에 쇠종이 있었다는 기록도 있지만 19세기 이후 해당 범종의 소재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문화재청은 범종각이 보물로 지정될 만하다고 판단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들었다. ▲일반적으로 종각이 사찰 좌우에 배치되는 것과 달리 사찰의 진입 중심축에 위치한 점 ▲아래층 가운데 칸을 지나 계단을 거쳐 안양루로 통하는 형식인 점 ▲지붕의 포와 포 사이에 놓여 무게를 받치는 부재인 화반을 덩굴나무 모양의 파련초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한 점 ▲지붕 내부에 범종각 재건 당시 것으로 판단되는 단청이 남아 있는 점 등이다.

영주 부석사 범종각 | 문화재청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