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신뢰…상하이 봉쇄가 가져온 中 공산당의 진짜 위기

석산(石山·스산)
2022년 05월 16일 오후 3:33 업데이트: 2022년 05월 16일 오후 5:38

최근 중국 인터넷에는 ‘신뢰 붕괴, 상하이 코로나 사태의 가장 큰 후유증’(信任崩潰, 是上海疫情最大後遺症)이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상하이 시민 논객 뉴피밍밍(牛皮明明)은 코로나19 재확산으로 봉쇄된 한 달여 동안 상하이에서 발생한 일들을 나열하며 상하이에서 ‘신뢰’가 붕괴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가 말한 신뢰는 상하이 시민들 사이의 상호 신뢰, 방역당국·다바이(大白)·의학전문가에 대한 상하이 시민들의 신뢰 등이 포함된다. ‘다바이’는 흰 방호복을 입은 사람들을 말하는데, 이들의 신분은 무장경찰, 파출소 공안, 자원봉사자 등 다양하다.

상하이 시민들이 교류하는 단톡방에서는 예전에는 사람들이 서로를 격려했지만 지금은 한 사람이 핵산검사에서 양성 판정이 나오면 전체 커뮤니티가 봉쇄될까 봐 서로 신고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사소한 일 때문에 악담을 퍼붓기도 한다. 과거에 추앙받던 의학 전문가들에 대한 불신도 커지고 있다. 물론 정부에 대한 태도도 달라지고 있다.

상하이 당국은 3월 말 시를 동서로 나눠 나흘씩 봉쇄한다고 했다. 그래서 시민들은 봉쇄가 곧 해제될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한 달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도 해제되지 않고 있다. 지금 상하이 시민들은 뉴스도 믿지 않고 오직 믿는 것은 ‘우리 집 냉장고를 꽉꽉 채워 놓아야 한다는 것’뿐이다.

중국 공산당의 ‘제로 코로나’ 정책하에 상하이에서 ‘다바이들(大白·흰 방호복을 입은 사람)’이 민중을 폭행하는 사건들이 잇따르고 있다. | 영상캡처
상하이 방역 요원들이 ‘소독’을 하기 위해 벽을 타고 민가에 진입하고 있다. | 인터넷 이미지

이 같은 불신 분위기는 전국 대도시로 확산하고 있다. 이번 상하이 봉쇄로 사회 질서가 무너진 것을 목격한 다른 도시 사람들도 혹시 닥칠지 모르는 도시 봉쇄에 대비에 사재기를 하기 시작했다. 시정부의 물자 공급 정책과 역량을 불신한다는 것이다.

시민 논객 뉴피밍밍은 “한 달 동안에 믿음이 사라지는 것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고 했다.

서양에는 신뢰에 관한 사회학 연구가 활발하다. 전문가들은 신뢰는 현대 사회의 진보·발전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신뢰가 없으면 현재 운영 중인 시스템들이 작동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금융 시스템이다. 그래서 한 사회의 신뢰가 사라지면 사회 시스템이 충격을 받고, 나아가 사회도 붕괴한다.

뉴피밍밍은 상하이 시민 입장에서 신뢰를 언급했지만, 실제로 신뢰는 상호작용을 한다. 상하이 정부가 상하이시를 동서로 나눠 각각 4일간 봉쇄한다고 발표한 것은 상황을 오판해서라기보다는 상하이 주민들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됐을 가능성이 크다. 만약 당국이 두 달 동안 봉쇄한다고 발표했다면, 아마 상하이 주민 절반이 상하이를 탈출했을 것이다. 시민들을 불신한 것이 시민들로부터 불신을 받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결국 불신이 불신을 낳은 것이다.

‘신뢰’라는 말은 단순히 ‘믿는다’는 개념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심오하고 철학적인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하다.

2300여 년 전, 진나라가 상앙(商鞅)이 변법(變法)을 시행할 때 취한 가장 유명한 조치는 ‘나무 옮기기’란 작은 일이었다. 그는 남문에 있는 3장(丈) 길이의 나무를 북문으로 옮기는 사람에게 10금(金)을 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백성들은 이를 믿지 않았다. 그러자 상앙은 상금을 50금으로 올렸다. 어떤 사람이 반신반의하면서도 밑져야 본전이라는 심정으로 옮겨놓자 상앙은 즉시 50금을 주어 나라가 약속을 지킨다는 것을 보여줬다. 상앙은 이 일을 통해 백성들이 나라를 신뢰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었고, 진나라가 나중에 시행하는 변법의 토대를 다졌다.

상앙(商鞅). | 퍼블릭 도메인

이것이 나라를 다스리는 도리다. 유가에서는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을 중시한다. 신뢰(信)는 기본 바탕이 된다. 신뢰가 없으면 어짐(仁)도, 옳음(義)도, 예절(禮)도, 지혜(智)도 모두 가짜가 된다.

서양에서도 신뢰는 사회의 기반이다. 19세기 말에 독일 사회학자 게오르그 짐멜은 신뢰와 현대사회 시스템에 관한 연구를 했고, 훗날 후학들도 이 연구 과제에 동참했다. 이 사회학자들은 사회적 차원에서든 개인 차원에서든 ‘신뢰는 중요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또한 사회학 이외의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도 신뢰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는데, 이들은 신뢰의 개념을 정의하는 부분에서는 견해차를 보였지만, 신뢰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견해가 일치했다.

1980년대 중국 개혁·개방 초기, 서민들은 돈을 은행에 맡기지 않고 집에 숨겨두는 경우가 많았다. 언론들은 돈다발을 돼지우리에 묻어두거나 벽 속에 숨겨두는 것은 안전하지 않다며 은행에 맡기라고 호소했다. 당시 막 설립된 중국의 국유 상업은행들은 저축을 독려하기 위해 갖가지 수를 생각해냈다. 일례로 증빙서류 없이 계좌를 개설할 수 있는 비실명제를 실시했다.

그러나 ‘중국인들은 왜 돈을 돼지우리에 묻을지라도 은행에 맡기지 않는가’라고 묻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다.

답은 간단하다. 바로 ‘불신’이다. 공산당이 집권한 후 돈 많은 사람들이 ‘흑오류(黑五類, 지주·부농·반혁명분자·악질분자·우파분자)’로 몰려 돈도 뺏기고 목숨까지 잃는 경우가 많았다. 문화대혁명이 막 끝난 1980년대에는 아무도 감히 ‘부자’가 되지 못했다. 개혁·개방이 시작되고 덩샤오핑이 “일부 사람들이 먼저 부자가 되라”며 선부론(先富論)을 외쳤지만, 공산당에 대한 불신의 그림자가 여전히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문화대혁명 후기에 이르러서는 민(民)과 관(官), 민과 민, 관원과 관원이 불신하는 풍조가 만연했고 심지어 가족끼리도 불신해 부부가 서로 투쟁하고, 자녀가 부모를 고발하는 일이 난무했다.

그 결과 사회는 파탄에 직면했다. 1978년 말에 열린 중국 공산당 11기 3중전회의 문건에서 ‘국민 경제가 파탄지경에 이르렀다’고 했는데, 사실은 이미 파탄난 상태였다. 신뢰와 사회·경제는 불가분의 관계다. 신뢰가 붕괴하면 반드시 사회·경제 시스템도 붕괴한다.

1980년대에는 중국 공산당에 대한 불신이 최고조에 달했기에 서민들은 당연히 돈을 은행을 저축할 수 없었다.

독일 사회학자 짐멜은 ‘신뢰는 앎과 모름 사이에 있으며, 그 결정은 자기 자신이 하는 것’이라고 했다.

사람은 믿으면 대담하게 행동한다. 하지만 그 믿음은 행동에 따르는 결과를 예측하고 계산한 바탕 위에 세워진다. 신처럼 전지전능해 모든 것을 아는 사람에게는 신뢰 문제가 존재하지 않는다. 신뢰는 결과를 예측함으로써 생기는데, 그는 이미 그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이 행동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판단할 지식이나 정보가 없는 사람에게도 신뢰 문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결과를 예측할 근거가 없기 때문에 신뢰 자체가 형성되지 않기 때문이다. 즉 신뢰는 자신이 취할 행동의 결과에 대해 완전히 아는 것과 완전히 모르는 것 사이에 위치한다.

예를 들면 러시아에서 사업을 하려 할 경우, 푸틴과 친구 사이이고 그의 생각을 꿰뚫고 있는 사람은 곧바로 러시아로 달려갈 것이다. 그에게는 러시아의 사업 환경을 분석하고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확보하는 것이 무의미하다. 반대로 러시아에 대해 아는 것이 없고 정재계 인맥도 없는 사람은 거기서 사업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에게는 성공에 대한 믿음이 생길 여지가 아예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러시아에 투자하는 부류는 대부분 러시아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고 또 어느 정도 인맥을 형성하고 있어 러시아 현지 투자 환경과 성공에 대한 믿음이 있는 사람들이다.

현대 사회 시스템은 일련의 신뢰에 기초하고 있다. 여기에는 정부, 입법자, 통화 등에 대한 신뢰가 포함된다. 만약 이런 것들에 대한 신뢰가 없다면 능동적인 행동을 취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앞서 언급했듯이 신뢰는 상호적이다. 정부와 국민 사이에도 마찬가지다. 중국 정부는 중국 국민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에 감시하고, 방화벽을 세워 정보를 차단하고, 선거권을 주지 않는다. 이런 상황은 근년에 들어 더욱 심화되고 있다. 중국 공산당은 마치 심각한 피해망상증에 걸린 사람처럼, 늘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경계하고 있다. 이러한 정신발작 증세는 전염병이 유행하거나 국제 상황이 불리하게 전개될 때 더욱 심해진다.

이런 상호 관계는 이제 또 다른 경지에 이르렀다. 이제 중국 민중들이 중국 당국을 극도로 불신하기 시작했다. 사실 부자들은 진작부터 당국을 불신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가장 평범한 중국 민중들이 그 대열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이를 뒷받침하는 사례 중 하나가 당국이 투자이민을 중단할 정도로 중국인들의 해외 이민이 급증하는 현상이다.

중국 공산당의 발작은 이미 수년 째 지속됐지만 그래도 그동안은 경제가 성장하고 있어 14억 중국인은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가 터지고 피해가 커지면서, 외국과 교류가 활발하고 개방적인 상하이부터 시작해 사회 전체의 신뢰는 급속도로 붕괴하고 있다.

* 번역·편집 박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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