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北, 무기 거래 가능성…유엔 안보리 체제 붕괴 우려

전경웅 객원기자
2023년 09월 21일 오후 5:44 업데이트: 2023년 09월 21일 오후 5:44

5박 6일의 방러 일정을 마친 김정은이 지난 18일 특별열차를 타고 귀국했다. 이 기간 러시아와 북한에서 나온 이야기는 국제사회에 우려를 끼쳤다.

러시아와 북한이 무기 거래를 하고 무기 기술 협력을 한다는 게 문제가 아니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체제가 무력화될 것에 대한 우려였다.

김정은은 러시아에서 스보보브니 우주기지와 콤소몰스크나아무레 수호이 공장, 블라디보스톡 태평양 함대기지 등을 둘러봤다.

이 과정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북한에 우주개발 관련 기술을 제공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수호이 공장에서는 러시아 산업기술부 장관이 “북한과 항공 분야에서 협력할 잠재성이 크다”고 말했다. 러시아 내에서는 물론 세계 각국이 북한과의 무기 거래 및 첨단무기 기술 협력이 이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러, 김정은 방문 기간 우주개발·항공 분야 협력 공언

러시아는 지난 13일 김정은이 푸틴 대통령과 폭넓은 분야에서의 협력을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두 나라 간에 논의할 수 있는 범위는 군사적 교류와 같은 민감한 분야까지 적용된다”며 “모든 논의 주제는 주권국끼리 결정할 사안으로 제3국이 간섭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앞서 12일 그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의 사안에 대한 프로세스도 (러북 정상회담에서) 논의 주제”라며 “필요하다면 북한 측과 이 주제에 대해 논의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이후 크렘린궁의 발표는 동북아시아는 물론 2차 세계대전 이후 만들어진 국제질서를 뒤흔들 수 있는 것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빈센트 브룩스 전 주한미군 사령관과 같은 안보전문가들은 북한이 러시아로부터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과 직·간접적 연관이 있는 우주발사체 기술과 정밀유도 기술, 핵추진 잠수함 관련 기술, Su-30 이상의 신형 전투기 기술 등을 제공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제공하는 것에 화가 난 러시아가 북한에도 똑같은 지원을 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그런데 문제는 북한의 경우 17년 전부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로부터 9번의 제재 결의안 대상이라는 점이다.

러, 北과 무기 거래하면 안보리 결의 위반

러시아는 유엔 안보리에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상임이사국이다. 2006년부터 2017년까지 러시아는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 요구에 동참해 9번의 안보리 대북 제재에 동의했다.

대북 제재 가운데는 북한과의 무기 및 관련 기술 거래 금지도 있다. 김정은 방러 때 러시아가 밝힌 내용은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를 스스로 어기겠다는 뜻이 된다.

유엔 관련 매체 ‘유엔 디스패치’의 마크 레온 골드버그는 이와 관련해 “러시아와 북한 간에 무기 거래가 이뤄진다면, 지난 15년간 북한의 핵개발을 막으려 했던 외교적 노력이 뒤집어지는 것”이라며 “아울러 한반도는 훨씬 위험한 장소가 되며, 미국은 본토를 겨냥한 핵무기를 보유한 두 적대국(북한과 러시아)의 동맹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골드버그는 특히 이번 정상회담을 통한 거래가 시작되면 러시아가 유엔의 대북 제재를 깰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러시아가 북한에 무기 기술을 제공하고, 북한의 재래식 무기와 탄약 등을 수입한다는 것은 유엔 대북 제재를 스스로 위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러시아가 대북 제재를 위반한 뒤에는 북한이 7차 핵실험을 하더라도 추가 제재가 이뤄질 가능성은 매우 낮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中,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위반…수정 요구도 무시

러시아가 대북 제재를 위반하는 첫 국가라면 유엔 안보리에서 타협할 여지가 있다. 하지만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가운데 중국이 이미 대북 제재를 위반하고 있다.

지난 9일 ‘미국의소리(VOA)’ 방송은 “중국은 올 들어 해상과 무역 등 여러 분야에서 북한의 제재 위반을 방조하며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 노력에 동참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고 있다”면서 “중국의 대북 제재 이행을 촉구하는 각국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방송에 따르면 중국은 올해 들어서만 북한에 20척 이상의 선박을 판매했다. 또한 북한이 매년 상한선을 초과한 정제유를 불법적으로 수입하는 데도 중국이 연루된 정황이 드러났다.

그뿐만 아니라 중국 해관(세관)은 유엔 안보리 제재에 따라 북한에 수출할 수 없는 사치품과 고급 주류를 올해에만 수백만 달러어치를 팔았다는 사실을 버젓이 공개했다.

방송은 “이 같은 대북 제재 위반의 배후에는 중국이 있다”면서 “최근 크게 늘어난 북한의 대북 제재 위반이 중국 정부의 묵인 혹은 느슨한 단속 때문이라는 점을 시사한다”고 지적했다.

과거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 패널로 활동했던 닐 와츠도 방송에 “중국이 북한으로의 선박 이전과 관련한 문호를 개방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는 2020년 북한에 대한 제재 완화를 시도한 이후부터 벌어진 일”이라고 주장했다.

방송은 이어 “북한이 대외 무역 90% 이상을 의존하고 있는 중국은 대북 압박의 열쇠를 쥐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며 “이에 따라 미국을 비롯한 관련국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의 제재 이행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내왔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지난 7월 우리나라와 미국, 일본 등이 중국에 대북 제재 이행을 촉구하는 서한을 전달하기도 했다.

中·러, 대북 제재 위반하면 유엔 안보리 질서 위태

중국에 이어 러시아까지 대북 제재 결의를 위반하고 무시하면 그 파장은 자칫 유엔 안보리 체제 붕괴를 초래할 수도 있다. 중국이 유엔 대북 제재 결의를 위반한 것은 이미 몇 년 전부터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엔 안보리 질서를 무시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북한으로부터 용병집단 바그너 그룹이 사용할 포탄과 탄약, 무기를 수입한 것을 시작으로, 최근에는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가 정권을 잡은 서아프리카 말리에 대한 유엔 안보리 제재와 감시 결의안의 갱신을 거부했다.

중국에 이어 러시아까지 이렇게 유엔 안보리 체제를 무시 또는 외면하는 일이 이어질 경우 대만과 한반도 등 동아시아 지역의 긴장이 고조되는 것은 물론, 중국 공산당이 ‘도련선’을 주장하며 주변국을 위협하는 남중국해와, 이슬람 근본주의자와 세속파 이슬람인 군부 간 갈등이 잠재해 있는 북아프리카 일대에서도 긴장과 갈등이 고조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일각에서는 극단적인 예측도 내놓는다. 안보리 상임이사국 5개국 가운데 2개국이 스스로 질서를 무너뜨리는 행동을 계속 취하면 2차 세계 대전으로 맥없이 무너진 ‘국제연맹(LN)’보다 더 빨리 무너지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다.

1919년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의 주창으로 설립했던 ‘국제연맹(LN)’은 강력한 제재 수단의 부재와 특정 회원국의 전횡을 통제하지 못한 탓에 일제의 만주 침략과 나치의 독일 장악, 소련의 핀란드 침공을 막지 못했고, 1939년 9월 2차 세계대전을 막지 못하면서 사실상 무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