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에 밀려…로마의 유서 깊은 신문 가판대, 결국 폐점

한동훈
2024년 03월 22일 오후 12:30 업데이트: 2024년 03월 23일 오후 7:21

동네 책방 전환 등 노력에도 수익 악화로 문 닫아

디지털 전환이라는 시대의 물결에 밀려, 7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이탈리아의 한 신문 가판대가 적자를 견디지 못하고 폐점했다.

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로마 시내의 성당 가운데 가장 오래된 대성당인 성 요한 라테라노 대성당 부근에서 운영되던 신문 가판대가 문을 닫았다. 영화 ‘로마의 휴일’ 촬영지로 유명한 트레비 분수 인근 가판대도 영업을 중단했다.

미디어 마케팅 업체인 스내그의 통계에 따르면, 이탈리아에서는 지난 20년 동안 신문 판매량이 급감해 신문 가판대 3분의 2가 문을 닫았다. 이탈리아 상공회의소는 올해 1월 보고서에서 지난 4년간 2700개의 가판대가 문을 닫아 전국에서 16% 감소했다고 밝혔다.

이탈리아에서 신문 가판대는 지역사회의 작은 구심점 역할을 했다. 사람들은 신문을 구매한 후 가판대 주변이나 인근 공원에서 기사를 읽으며 정치, 축구, 물가 상승 등 다양한 화제에 관해 이야기 나눴다.

성 요한 라테라노 대성당 인근 신문 가판대 점주인 파비아노 폼페이는 언론에 “단순히 신문만 사고파는 게 아니다”라며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성”이라고 자신의 생업에 대한 자부심과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신문 가판대의 영업난은 주요 수입원이었던 신문 판매량이 급감한 데서 비롯됐다. 신문사들이 수익을 유지하려 독자들을 인터넷으로 유도하는 사이, 신문 가판대 점주들은 업종 전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간 시장조사기관인 ADS의 보고서에서, 이탈리아 가판대의 신문 판매량은 2004년 하루 평균 약 954만 부였으나, 10년 만인 2014년에 260만 부로 감소했고 다시 10년이 흐른 2024년 1월에는 20년 전의 10분의 1인 95만 부로 줄어들었다.

로마 시내의 한 오래된 신문 가판대에는 신문은 몇 종류만 남았고 매대 대부분은 관광객을 위한 가이드북, 장신구, 유명 관광지 사진이 들어간 달력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업주는 가판대를 거리 서점으로 전환하기도 했으나 수입이 신통치 않아 이것저것 팔아보다가 결국 문을 닫기로 했다.

로마시 정부는 올해 점포당 최대 2000유로(약 290만원)의 보조금을 제공했지만, 가판대 업주들은 단기적 지원책만으로는 상황 개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일부 가판대는 비용 절감을 위해 자판기 형태의 무인 판매점으로 변신하고 있으나 종이신문 자체가 대부분 온라인으로 넘어가는 추세로 인해 수익 개선에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로마 시민인 안드레아 피에란토치는 “솔직히 부록이 제공되는 목요일이나 일요일에 신문을 사곤 했다”며 “안타깝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인쇄 매체가 사라지고 지금은 온라인으로 신문을 읽는다”고 말했다.

디지털 시대에 종이신문의 퇴장은 대세가 됐다. 그러나 아직 온기가 남은 신문의 따스한 촉감, 귀찮은 인터넷 광고의 방해 없이 지면을 넘기는 상쾌함과 온라인 신문으로 대체할 수 없는 종이신문만의 ‘읽는 맛’으로 여전히 사람들의 발길을 가판대로 이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