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 ‘1위 스튜디오’ 자리 빼앗겨…과도한 PC주의 역풍

톰 오지메크(Tom Ozimek)
2024년 01월 8일 오후 5:58 업데이트: 2024년 01월 8일 오후 7:00

월트 디즈니 컴퍼니(이하 디즈니)가 2023년 박스오피스 1위 자리를 유니버설 스튜디오(이하 유니버설)에 내줬다. 디즈니의 과도한 PC(Political Correctness·정치적 올바름)주의에 대한 전 세계 관객들의 반감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미국 엔터테인먼트 전문 매체 ‘더 할리우드 리포터’는 “2023년 기준 유니버설이 국내(미국) 및 해외 수익 모두에서 디즈니를 앞질렀다”고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총 24편의 영화를 개봉한 유니버설은 전 세계적으로 49억 1000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수익 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다.

그 반면에 디즈니는 지난해 총 17편의 영화를 개봉했으며, 관련 수익은 48억 3000만 달러에 그친 것으로 집계됐다.

디즈니의 글로벌 배급 책임자인 토니 챔버스는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8년 중 7년 연속으로 전 세계 1위 스튜디오가 된 것은 어떤 기준으로 봐도 매우 놀랍고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2023년 수익 감소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더욱 놀라운 점은 2023년 최고 수익을 올린 영화 3편 가운데 디즈니의 작품이 단 한 편도 없다는 것이다. 최고 수익 1위는 워너브라더스의 ‘바비'(14억 달러)가 차지했으며, 유니버설의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13억 달러)와 ‘오펜하이머'(9억 5000만 달러)가 그 뒤를 이었다.

디즈니 영화 ‘더 마블스’의 한 장면. 왼쪽부터 미스 마블 역의 이만 벨라니, 캡틴 마블 역의 브리 라슨, 모니카 램보 역의 테요나 패리스 | Laura Radford/Disney-Marvel Studios via AP/연합뉴스

논란 심화

디즈니가 ‘1위 스튜디오’ 자리를 빼앗긴 데는 PC주의와 ‘깨어남(Woke) 이데올로기’가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최근 몇 년간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는 ‘깨어남 이데올로기’로 인한 논란이 고조되고 있다.

2022년 3월, 미 플로리다주 의원들은 유치원부터 3학년까지 공립학교에서 성 정체성 및 성적 지향에 대한 교육을 금지하는 내용의 ‘학부모 교육권 법안(HB 1557)’을 통과시켰다.

론 드샌티스(공화당) 플로리다 주지사가 이 법안에 서명한 당일, 디즈니 측은 성명을 발표해 법안에 대한 공식적인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당시 디즈니는 성명에서 “플로리다의 ‘HB 1557’ 법안은 결코 통과돼서는 안 되는 법안”이라며 “이것이 폐지되거나 무효가 되길 바란다”고 언급했다.

드샌티스 주지사와 디즈니 간의 분쟁은 지난해까지 지속됐다. 2023년 2월 드샌티스 주지사는 플로리다주에 있는 월트디즈니월드와의 계약을 종료하는 조치를 내렸다.

그는 “이 조치는 디즈니에 책임을 묻기 위한 것”이라며 “기업 왕국이 마침내 막을 내린다”고 선언했다.

일부 민주당 의원들은 이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다. 린다 스튜어트 상원의원(민주당·플로리다주)은 “디즈니가 성소수자 커뮤니티를 지지한 데 대해 드샌티스 주지사가 보복성 조치를 취한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2024년 미 대선 공화당 경선 후보인 론 드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 | Scott Olson/Getty Images

디즈니의 추락

디즈니는 드샌티스 주지사와의 ‘문화전쟁’ 이후 수많은 학부모 단체와 보수주의자들의 반발에 직면했다. 이는 곧 수익성 악화로 이어져 디즈니에 큰 타격을 입혔다.

애니메이션 ‘버즈 라이트이어’, 실사 영화 ‘인어공주’ 등 디즈니의 최신작들은 전 세계 비평가들로부터 혹평을 받으며 흥행 참패를 기록하고 있다.

박스오피스 수익 감소뿐만 아니다. 디즈니가 야심 차게 준비한 스트리밍 서비스인 디즈니플러스도 실적 부진에 빠졌고, 디즈니월드와 디즈니랜드 테마파크의 방문객이 급감함에 따라 주가가 하락하기도 했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밥 아이거 디즈니 최고경영자(CEO)는 지난해 “비용을 절감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일자리 7000개를 감축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HB 1557’ 법안을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하기 3일 전인 2022년 3월 25일, 디즈니의 시가총액은 2533억 달러에 달했다.

그런데 논란 이후 디즈니의 시가총액은 급격히 하락했고, 최근까지도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2024년 1월 5일 기준 시가총액은 1664억 달러에 그쳤다.

*김연진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정리에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