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혼란 예상했나…시진핑, 마오쩌둥 시절 주민 감시체계 부활 독려

닝하이중(寧海鐘)
2023년 11월 11일 오후 2:20 업데이트: 2023년 11월 11일 오후 2:20

1963년 마오쩌둥 시절 시작된 ‘펑차오 경험’ 강조
주민 간 상호 감시·고발 체계…‘할당량’ 배정까지
문화혁명 때 악명 높은 제도, 수십만 가정 파탄내

시진핑 중국공산당 총서기가 지도부를 이끌고 마오쩌둥 시절의 ‘풀뿌리 감시’ 체제인 ‘펑차오(楓橋) 모델’을 적용한 기관·단체 대표들을 만났다.

신화통신에 따르면 시진핑은 6일 오전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펑차오 모델’을 적용한 전국 104개 기관·단체 대표들을 만나 이른바 ‘펑차오 경험’을 신시대에 더욱 발전시킬 것을 강조했다. 중국 경제가 침체하고 중국 내 정치 분위기가 살벌한 상황에서 시진핑이 다시 ‘펑차오 경험’을 꺼내든 것은 마오쩌둥 시절의 사회적 대혼란이 임박했음을 시사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보도에 따르면 이 자리에는 차이치(蔡奇)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겸 중앙판공청 주임, 리시(李希)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겸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서기, 천원칭(陳文清)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 겸 중앙정법위원회·중앙서기처 서기, 왕샤오훙(王小洪) 공안부장, 우정룽(吳政隆) 국무원 비서장, 장쥔(張軍) 최고법원장, 잉융(應勇) 최고검찰원장 등이 참석했다.

독립 평론가인 차이셴쿤(蔡慎坤)은 7일 X(옛 트위터)에 마오쩌둥 시절의 군중 투쟁 운동인 ‘풀뿌리 감시’ 모델이 부활하는 데 대해 우려했다.

“많은 사람이 마오쩌둥 시절의 군중투쟁 운동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특히 개혁개방을 시작한 지 수십 년이 지난 지금 과거의 정치운동이 더는 먹히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최고 지도자가 시작한 운동은 어떤 것이든 집행자들이 집행 과정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능력을 발휘하기 때문에 아무도 전국을 휩쓰는 정치 운동을 피해 가기 어려울 것이다.”

중앙 정법위가 주최한 행사에 정법 계통 지도부뿐만 아니라 차이치와 리시 등 상무위원까지 참석했다. 이에 관해 중국 전문가 왕허(王赫)는 7일 에포크타임스에 “이는 시진핑이 펑차오 경험을 전국적으로 더 강력하게 추진할 것임을 시사한다”고 했다.

호주 시드니공대 펑충이(馮崇義) 교수는 7일 에포크타임스에 “이번 회의에 정법 시스템 지도부가 모두 참석했다는 점에서 문화대혁명 당시의 상황과 비슷하다”며 “이 펑차오 경험은 문화대혁명 당시 정법 시스템의 셰푸즈(謝富治) 공안부장이 제안한 것”이라고 했다.

시사평론가 리린이(李林一)는 “국가안전위원회(국안위)를 장악하고 있는 차이치가 참석했다는 것은 ‘펑차오 경험’이 국안위의 감독 범위에 포함됐음을 보여주는 것이고, 리시 중앙 기율위 서기는 공산당 내부를 감독하는 최고 관리로서 회의에 참석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펑차오 경험’을 추진하는 이유

‘펑차오 경험’은 1960년대 초 마오쩌둥이 발동한 정치운동으로, 군중들이 서로 감시·고발하게 하는 운동이다.

1962년 9월 마오쩌둥은 계급투쟁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주의 교육 운동’을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치안 관리는 공안국·파출소 등의 공안 경찰 기관이 담당하지만, 1963년 초 펑차오진에서는 혁명군중으로 동원된 일반 주민들이 공안과 연계해 관내 반동분자 등 불순세력을 감시하고 고발하기 시작했다.

당시 공안부장 셰푸즈가 이를 마오쩌둥에게 보고하자 마오쩌둥은 이에 큰 의미를 부여하면서 “갈등을 상부에 보고하지 않고 현지에서 해결하는” ‘펑차오 경험’을 모범 사례로 삼아 전국으로 보급할 것을 지시했다.

대중을 동원해 서로 투쟁하게 하는 이 전국적인 정치운동으로 인해 당시 수백만 명이 사망하거나 자살했다.

중국 공산당 중앙 당사(黨史)연구실이 펴낸 ‘건국 이래 역대 정치운동’이란 책에 따르면, 문화대혁명 기간에만 420만 명이 불법 구금됐고 172만 명 이상이 비정상적으로 죽었으며 수많은 가정이 해체됐다.

시진핑은 2012년 집권한 이후 ‘펑차오 경험’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여러 차례 언급했다. 공산당 매체에 따르면 중앙 정법위는 전국적으로 104개 ‘펑차오 모델’을 적용한 기관·단체를 선정했다.

지난 10년 동안 ‘펑차오 경험’은 중국에서 ‘차오양(朝陽) 군중’, ‘격자망화(網格化) 관리’, ‘우마오’ 댓글부대 등의 형태로 발전했고, 해외에서는 ‘대만 독립 반대, 통일 촉진’, ‘파룬궁 반대’, ‘션윈 공연 반대’ 등의 활동에 이용됐다.

‘차오양 군중’(차오양구), ‘시청 다마(西城大媽)’(시청구) 등은 베이징시 각 구가 주민들을 동원해 운영하는 감시 조직이고, ‘격자망 관리’는 전국을 바둑판처럼 촘촘하게 나눠 주민을 관리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시진핑은 지난 9월 항저우 아시안게임 개막식에 참석하기 전에 저장성 샤오싱(紹興)에 있는 ‘펑차오 경험 전시관’을 방문했다.

사진은 베이징 인민대회당 근처에서 빨간 완장을 차고 보행자의 움직임을 감시하는 사회 안정 담당 요원. | MARK RALSTON/AFP/Getty Images/연합

중국 공산당, 모든 사회적 역량 동원해 공산당의 적 타격

펑충이는 “현재는 정법위가 나서서 군중들이 서로 감시하고 적발하도록 선동하고 있다”며 “중국 공산당은 ‘칼자루(정법 시스템)’를 통해 인민을 억압하고 사회를 통제하는 것 외에도 모든 사회 구성원을 동원해 공산당의 ‘적’과 싸우도록 부추긴다”고 했다. 그는 또 “얼마 전에 통과된 ‘반간첩법(방첩법)’ 개정안도 군중 운동을 전체주의 통치 도구로 이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민주당 해외 지부 책임자인 왕쥔타오(王軍濤)는 7월 에포크타임스에 “중국 공산당은 ‘펑차오 경험’을 추진하면서 풀뿌리 단위의 행정조직이 이른바 ‘군중의 자체적인 예방 및 관리’에 의존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펑차오 경험’은 마오쩌둥 시절에는 계급투쟁과 연결돼 있었다. 지금 다시 꺼내든 것은 대체로 통치 비용이 부족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시진핑은 최근 민간 외교를 언급했다. 해외 지식인과 기업가를 외교에 활용하고 이들을 스파이로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왕쥔타오는 중국 공산당이 ‘펑차오 경험’을 외교에 사용하는 것이라며 “모든 일반 민중을 스파이로 활용한다. 공산당의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을 타격하기 위해 인민전쟁을 벌이는 것”이라고 했다.

왕허는 중국 당국이 ‘펑차오 경험’을 추진하지만 정권이 제대로 돌아갈지는 미지수라고 했다. 현재 각지의 풀뿌리 조직들은 갈등이 생기면 자체적으로 해결하지 않고 상부에 넘기고 있다. 이에 짜증 난 시진핑은 “갈등을 현지에서 해결하라”고 했다. 중앙기율위 서기 리시가 회의에 참석한 것으로 보아 앞으로 각지의 ‘펑차오 경험’ 이행 상황을 점검하는 정치적 시찰을 실시할 가능성이 높다.

관영 매체는 시진핑이 ‘펑차오 모델’을 적용한 기관·단체 대표들을 만났다고 보도하면서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총서기, 국가주석,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이라는 세 가지 공식 직함을 동시에 사용했다.

이와 관련해 왕허는 시진핑이 이 일을 매우 중요하게 보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했다.

‘펑차오 경험’ 업그레이드…문화대혁명 2.0 시작

중국 공산당은 이미 사회 통제를 위해 격자망화 관리, 첨단기술 감시, 빅데이터 등의 시스템을 강화했다.

왕허는 “지금 선전하고 있는 ‘펑차오 경험’은 대중을 동원해 사회를 분열시키는 수단”이라며 “당국이 ‘갈등을 현지에서 해결하라’고 강조한 것은 사회 전반이 불안정한 시기에 접어들 것이라는 당국의 판단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눈길을 끄는 것은 리커창 전 총리가 최근 상하이에서 급사한 후 시진핑이 ‘펑차오 경험’을 적용한 기관·단체 대표들을 만났다는 점이다. 리커창의 죽음으로 인해 중국 공산당 고위층의 내부 투쟁이 가열되고 있음이 부각되면서 정치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차이신쿤은 ‘펑차오 경험’은 추진 과정에서 줄곧 저항에 부딪혔지만, 지금은 화살이 시위에 물려 있는 상황이라며 “정치적인 긴장 국면이 정권에 위협이 될 경우 마오쩌둥을 벤치마킹해 대중 투쟁 운동을 다시 일으킬지 촉각을 곤두세울 필요가 있다”고 했다.

펑충이는 현재 중국 공산당 정권은 매우 불안정한 상태에 있다며 지금 당국이 ‘펑차오 경험’을 다시 살리는 것은 경제가 더욱 하강하거나 붕괴할 경우 사회적 불안이 뒤따를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했다. 한마디로 시진핑 1인 독재의 실정에 절망한 민중이 대규모 시위를 벌이기 전에 미리 막을 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