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입법원장 친중파 한궈위…5월 출범 라이칭더 정부 험로 예고

최창근
2024년 02월 2일 오전 10:41 업데이트: 2024년 02월 6일 오전 9:49

2월 2일 공식 개원하는 대만 입법원 원장(국회의장 해당)에 제1야당 국민당 한궈위(韓國瑜) 입법위원이 선출됐다. 부원장에도 같은 당 소속 장치전(江啟臣) 입법위원이 동반 선출됐다. 집권 민진당은 입법원 원내 1당에 이어 입법원 수장도 국민당에 내줘 향후 정국 운영에 적색등이 들어왔다. 친중 한궈위 신임 입법원장과 라이칭더 총통 당선인의 마찰도 예상된다.

지난 2월 1일 대만 입법원 원(院) 구성 투표에서 한궈위·장지천 국민당 후보가 원장·부원장에 당선됐다. 한궈위 입법위원은 제1차 투표에서 전체 113인, 재적 113인 중 과반 57표에 미달하는 54표를 득표했다. 국민당 52표에 친국민당 성향 무소속 입법위원 2표가 더해진 것으로 추정된다. 유시쿤(游錫堃) 민진당 입법원장 후보는 51표, 황산산(黃珊珊) 민중당 후보는 8표를 득표했다.

제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자가 없어 제2차 결선 투표가 진행됐다. 민중당 소속 입법위원 8인은 표결에 불참하여 입법위원 정원 113인 중 105인이 참여한 결선 투표에서 한궈위는 제1차 투표와 같은 54표를 득표하여 51표(민진당 입법위원 수)에 그친 유시쿤 후보에게 3표 차이로 승리했다.

입법원 원내 8석을 보유한 제2야당 민중당은 ‘캐스팅보트’를 행사했다. 민중당은 자당(自黨) 출신 독자 후보가 출마했고 당론에 따라 제1차 투표에서 황산산 입법위원에게 소속 입법위원 전원이 투표했다. 제2차 투표에 불참하는 형식으로 국민당을 간접 지원했다.

국민당의 승리는 예고된 일이었다. 커원저 민중당 주석은 1월 31일 황산산 입법위원을 원장 후보로 지명했다. 제1차 투표에서 황산산이 과반수 득표에 실패할 경우 제2차 투표 불참을 예고하며 민진·국민 양당의 지지를 호소했다. 커원저 주석은 2월 1일 기자회견에서 “제3세력 대표 황산산이 입법원장을 맡아야 국민·민진 양당의 극단적인 대립을 해소할 수 있다. 민중당은 ‘작은 남색(국민당 2중대)’도 ‘작은 녹색(민진당 2중대)’도 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민진당은 민중당의 제안을 일축했다. 커젠밍(柯建銘) 민진당 당단 총소집인(원내 대표 해당)은 1월 31일 “한궈위는 홍콩 중련판(中聯辦·중국공산당 중앙연락판공실)에 발을 들인 인물이다. 그가 당선된다면 대만 안보에 매우 큰 위험이다.”라고 한궈위의 지난 행적을 지적했다. 커젠밍은 페이스북 계정에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민중당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배후에 보이지 않는 중국의 손이 있다는 점이다.”라며 “이겨도 지고 져도 이긴다”며 민중당과의 협력을 거부했다. 황산산 입법원장 후보도 민진당으로서는 달갑지 않은 부분이었다. 커원저의 타이베이 시장 시절 부시장으로 호흡을 맟춘 그는 범국민당 계열 정당인 신당(新黨), 친민당(親民黨) 소속으로 타이베이 시의원 등을 역임했다. 국민당에서 분당한 신당, 친민당은 선명한 친중국 색채 정당이다.

1일 선출된 한궈위 원장, 장지천 부원장은 당선증을 교부받고 즉시 취임했다. 한궈위 신임 원장은 4선 입법위원으로 국민당 내에서도 강성 친중파로 분류된다. 육군사관학교 출신으로 상위(대위) 예편 후 동오대(東吳大), 국립정치대 대학원을 졸업했다. 대학 강사, 신문사 논설위원 등으로 활동하다 1990년 타이베이현(현 신베이시) 의원에 당선돼 정계에 입문했다. 1993년 입법위원에 당선됐고 연임에 성공해 3선 입법위원이 됐다.

2002년 입법위원 선거 낙선 후 공기업 사장을 지내는 등 사실상 정치적 휴지기를 가졌다. 그러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 민진당의 아성으로 꼽히는 남부 가오슝(高雄) 시장에 당선됐다. ‘한류(韓流)열풍’이라 불리는 신드롬을 일으키며 2020년 총통 선거에 도전했으나 현 차이잉원 총통에게 참패했다. 대선 패배 후 가오슝 시민들은 “중앙 정치에만 집중하고 시정(市政)에 소홀했다.”며 2020년 주민소환투표를 실시했다. 투표 결과 가오슝 시장직에서도 파면됐다. 올해 1월 치러진 총통·입법원 동시선거에서 국민당 비례대표 1번 입법위원에 지명됐고 선거에서 당선됐다.

1972년생 장지천 신임 부원장은 국민당 내 온건 개혁파이다. 중부 타이중(臺中)을 지역구로 둔 4선 입법위원으로 국립정치대 외교학과 졸업 후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동오대 정치학과 교수 시절인 2010년 마잉주 총통에게 발탁돼 37세에 행정원 신문국장(국정홍보처장 해당)으로 입각했고 2012년 입법위원에 출마하여 내리 4선에 성공했다. 2020~2021년 40대 최초로 국민당 주석을 지냈다. 장완안(蔣萬安) 현 타이베이 시장과 더불어 국민당 차세대 주자로 꼽힌다.

현직 입법원장 신분으로 재선에 도전했다 실패한 유시쿤은 민진당 비례대표 입법위원을 사임하며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한궈위 입법원장 선출로 5월 출범할 라이칭더 정부는 국민당, 민중당 등 야당의 협조가 절실한 처지가 됐다. 그중 대(對)중국 정책, 외교 정책 분야에서 야당의 동의를 얻지 못할 경우 국정 운영의 어려움이 예상된다. 한궈위는 국민당 내에서도 친중 성향이 강한 인물로서 라이칭더 총통 당선인과 마찰을 빚을 것으로 전망된다.

커원저(柯文哲) 민중당 주석은 존재감을 드러냈다. 1월 총통 선거에서 26.46%를 득표해 제2 야당 후보 최초로 득표율 20%의 벽을 넘겼다. 입법원 선거에서도 민중당은 4년 전보다 3석 많은 8석을 얻었다.

이 속에서 민진당이 제2야당 민중당과 연정(聯政) 수준의 연대를 추구할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됐다. 조각(組閣) 시 각료 상당수를 민중당 인사에게 안배하여 공동정부를 운영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실제 라이칭더 당선인은 조각 구상에 대하여 “민진당 인사만으로 내각을 채우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밝혀 민중당과의 연대 가능성을 시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