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보수 진영 ‘안철수 현상’ 조망…후보 사퇴 통한 야권 단일화 희망

최창근
2023년 12월 8일 오후 6:29 업데이트: 2023년 12월 16일 오후 9:54

한 달 여 앞으로 다가온 내년 1월 13일 총통‧입법원 동시 선거를 앞두고 3파전이 예상됐던 총통 선거는 ‘범람(泛藍‧pan-blue)’과 ‘범록(泛綠‧pan-green)’ 진영 간 대결이라는 전통적인 양강 체제로 기류가 바뀌었다.

파란색(남색)은 국민당의 상징색, 초록색(녹색)은 민진당의 상징색이다. 국민당을 중심으로 중국 정체성을 강조하는 보수 진영 정파를 범람, 민진당을 위시한 대만 독립 계열의 진보 색채 정당을 범록이라 한다. 범람 계열 정당으로는 국민당, 친민당(親民黨), 신당(新黨)이 있으며, 민진당, 대만기진(臺灣基進), 사회민주당(社會民主黨), 대만단결연맹(臺灣團結聯盟) 등은 범록연맹으로 분류된다.

민진당 후보 라이칭더 현 부총통이 35% 전후의 지지율을 보이며 앞서 나가는 가운데 허우유이 국민당 후보가 추격하는 양상이다. 반면 허우유이와 박빙이던 커원저 민중당 후보의 지지율은 10%대로 하락했다.

이 속에서 범람 진영에서는 한국의 ‘안철수 현상’을 조망하고 있다. 중국시보(中國時報) 온라인판은 12월 7일 ‘범람진영 안철수 현상 재현’ 기사에서 안철수 현상을 소개했다.

기사는 “‘안철수 현상’은 한국 정치권에서 널리 알려진 사례다. 한국은 지난해 3월 9일, 대통령 선거를 치렀다. 대선 주자였던 안철수는 2022년 3월 3일, 사퇴를 선언하고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당선됐다. 결과적으로 정권 교체가 이뤄졌다.”고 소개했다.

이어 중국시보는 최근 여론조사 추이를 인용했다. “메이리다오전자보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의하면 라이칭더-샤오메이친은 38.0% 지지율로 선두를 달리고 있으며 허우유이-자오사오캉은 31.7%을 기록했고 커원저-우신잉은 14.9%로 하락했다.”며 커원저가 내놓았던 “선거 마지막 3일에 변화가 생길 수 있다.”는 발언을 상기시키면서 대만 대선전에 ‘안철수 현상’이 이슈화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한국 대선에서 제3후보였던 안철수 현 국민의힘 의원이 지지율 하락 속에서 ‘후보 사퇴’ 형식으로 윤석열 현 대통령과 단일화를 하여 정권 교체를 이뤘듯이 유사한 문제에 봉착한 커원저 후보도 투표일 직전 사퇴하는 것도 가능함을 암시한 것이다.

대만에서 안철수 현상을 조명하는 또 다른 배경은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과 커원저 민중당 총통 후보의 이력이 닮은꼴이기 때문이다. 안철수 의원은 서울대 의과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한 의사 출신 정치인이다.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 V3를 개발하여 벤처사업가로 변신했고, 한국과학기술원(KAIST), 서울대 교수를 거쳐 정계에 입문했다. 2011년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 시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이른바 ‘안철수 현상’이 생겼다. 커원저 후보도 국립대만대 의과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외과의사로서 명성을 얻었고 국립대만대병원 응급의료센터장을 지냈다. 2014년 타이베이 시장 선거에 출마하여 ‘‘Ko P(커원저+Professor, ‘커 교수’의 약칭이자 애칭)’ 돌풍을 일으키며 당선됐고 2018년 재선에 성공했다. 이후 민중당을 창당하여 2024년 대선에 도전했다.

중국시보를 비롯한 범람 진영 매체들은 허우유이와 커원저 단일화의 필요성으로 상호 보완성을 언급하고 있다. ‘100년 정당 국민당은 노쇠했고, 핵심 지지층도 노령화됐고 젊은 세대로부터 외면받고 있으며 민중당, 민진당에 비해 매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 속에서 중도 확장성을 지닌 커원저와 단일화를 이룰 경우 정권 교체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의미에서다. 실제 자오사오캉 국민당 부총통 후보도 “커원저가 대결할 생각이 없다.”면서 “국민당과 민중당이 화합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한국의 안철수 현상은 대만에서는 현실화할 수 없다는 반론도 있다. 먼저 현행법상 불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총통‧부총통 선거‧파면법’에는 “총통‧부총통 후보로 공식 등록한 사람은 후보 등록을 철회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대만 중앙선거위원회는 “안철수 현상은 가정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총통‧부총통 선거‧파면법’ 위반 여부를 판단할 수 없다. 국민의 제보가 있을 경우 조사에 나설 것이다.”라고 밝혔다.

국민당‧민중당 단일화는 현실 문제에도 부딪혔다. 대만 검찰이 지난 11월 양당 단일화 협상 과정에서 ‘총통‧부총통 선거‧파면법’ 위반 소지가 있다며 수사에 나섰다. 대만 독립단체 ‘대만국(Taiwan·臺灣國)’은 “야권 후보 단일화 시도는 ‘총통‧부총통 선거‧파면법’ 위반이다.”라며 검찰에 고발했다. 사건을 배당받은 타이베이지방검찰서는 정식 수사에 착수했다.

대만 검찰은 “국민당과 민중당의 후보 단일화 협상 과정에서 정부 각 부처를 권력 배분 계약 대상으로 삼았다.”며 “이는 노골적인 전리품 분배 논의로서 대만 정부와 대만 국민을 모독한 행위이다.”라고 규정했다.

이를 두고 대만 일간지 ‘자유시보’는 “대만에서 총통 후보를 중도 포기하고 부총통을 비롯한 여타 강력한 권한을 가진 공직을 약속 받았다면 ‘불공정 이익 분배’ 혐의로 최대 10년 징역형을 선고받을 수 있다.”는 법률 해석이 존재한다고 보도했다.

수사 대상인 대만 야권은 반발했다. 미국 하버드대 법학 박사 출신으로 행정원 법무부장(법무부 장관) 경력의 마잉주 전 총통은 12월 4일 성명을 통해 “단일화 협상은 뇌물수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대만 검찰이 사법 개입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다음 날 커원저 후보도 “2014년 타이베이 시장 선거에 출마했을 때 민진당과 협력했지만 당시 국민당 정부는 이와 같은 수사를 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하며 “차이잉원 정부는 선거 개입 시도를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2014년 지방선거을 앞두고 커원저가 정계에 입문하여 돌풍을 일으킬 때 민진당은 타이베이 시장 후보 공천을 하지 않음으로써 실질적인 ‘단일화’를 했다. 선거에서 57.16%를 득표한 커원저는 40.82%에 그친 롄성원(連勝文) 국민당 후보에 승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