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원로들, 시진핑 내쳐야 한다” 중화권 논란 글 누가 썼나

중위안(鍾原)
2022년 02월 24일 오후 4:23 업데이트: 2022년 03월 11일 오후 2:01

이달 초, 해외 중국어 커뮤니티에는 ‘객관적으로 평가한 시진핑'(客觀評價習近平)이라는 글이 화제가 됐다. 4만 자(A4 약 58매) 분량의 장문에 달하는 이 글은 저자를 알 수 없지만, 내용으로 볼 때 중국 내 반(反)시진핑파가 작성한 것이 확실시된다.

이 글은 시진핑의 최대 라이벌 세력인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과 장쩌민파의 후계자였던 보시라이(薄熙來·전 충칭시 당서기)를 추켜세우고 있어 장쩌민파 혹은 측근이 작성했을 가능성이 크다.

시진핑의 과격한 노선에 반대하는 당 원로 2·3세 그룹인 태자당(太子黨)도 작성에 참여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 글의 핵심을 요약하면 ‘공산당 내부에서는 더는 시진핑을 통제할 수 없으니 내치고 새 인물을 세우자’는 것이다. 후계자로 특정 인물을 지적하진 않았지만, 현재 부정부패로 무기징역 복역 중인 보시라이를 내세우고 있다.

이 글에서는 시진핑을 격렬하게 폄하하고 있다. 그가 자기선전에 열중하는 것은 장쩌민과 보시라이 같은 이전 지도자급 인물에 밀릴까 우려해서라는 것이다. 은근히 장쩌민과 보시라이를 높게 평가하고 있다.

특히 장쩌민에 대한 평가가 후하다. 장쩌민이 시진핑과 달리 국제무대에서 활발한 외교를 펼치면서 지도자로서 당당한 모습을 보였다고 선전했다. 이는 시진핑이 해외 순방을 꺼리며 국내에만 머무는 모습과 대비를 이뤘다.

그러나 실제로 장쩌민은 외교무대에서 실수가 잦아 국격을 떨어뜨린 일이 많았다. 장쩌민은 스페인 국왕 접견 시, 품에 있던 빗을 꺼내 머리를 빗으며 아첨하는 모습을 연출해 스페인 국왕을 비롯해 고위 인사들에게 ‘문화적 충격’을 주기도 했다.

아이슬란드 대통령이 개최한 환영 연회에서는 예정에도 없이 갑자기 일어나서 노래를 불러, 공식석상에는 어울리지 않는 행위를 했다. 장쩌민은 정상 외교에서 노래, 춤 등 가무 능력을 과시하길 즐겼다. 2002년 10월 미국 조지 부시 대통령 방중 당시 즉석에서 가곡 ‘오 솔레미오’를 크게 부르는 돌발행동을 했다.

앞서 1999년 10월 프랑스를 국빈방문했을 때도 루브르 박물관을 둘러보던 중 갑자기 흥이 났는지 당시 자크 시라크 대통령의 부인과 억지로 왈츠를 췄다. 영부인은 마지못해 응했지만 장쩌민은 이를 눈치채지 못했다.

압권은 1999년 3월 오스트리아를 방문해 잘츠부르크의 모차르트 생가를 찾았을 때였다. 오스트리아의 토마스 클레스틸 대통령이 200년 역사를 지닌 모차르트의 피아노에 대한 소개를 마치자, 장쩌민은 피아노 앞에 세워진 ‘만지지 마시오’라는 표시판을 무시한 채 피아노 앞에 앉더니 뚜껑을 열고 음악을 연주했다.

모차르트의 위대함을 추모하는 행위도 아니었다. 장쩌민이 연주한 곡은 공산당 찬양가인 ‘홍호(洪湖)의 물결이 넘실거리네’였기 때문이었다. 클레스틸 대통령은 장쩌민을 저지하려 했으나, 실례가 될까 봐 난처한 표정만 지은 채 어쩔 줄 몰라 했다.

장쩌민은 분위기를 파악하기는커녕, 피아노를 연주하면서 옆에서 수행하고 있던 젊은 중국 여성에게 노골적인 눈길을 보내기도 했다.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제 17차 당대회에서 후진타오 국가주석이 연설하는 동안, 전직 국가주석인 장쩌민이 차를 따르는 행사진행 요원을 노골적으로 쳐다보고 있다. 2007.12.15 | GOH CHAI HIN/AFP/Getty Images/연합

‘객관적으로 평가한 시진핑’이란 글에서는 이러한 장쩌민의 실체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그가 시진핑에 비해 외교면에서 훨씬 앞섰다고 주장을 펼쳤다. 이 글의 저자가 장쩌민파 내부 인물 혹은 지지세력으로 추측되는 주된 근거의 하나다.

이 글은 결정적으로 “수많은 사람이 장쩌민 시대를 그리워하고 있다”며 “시진핑에 대한 반감은 역대 모든 지도자 중 가장 강하다”고 지적했다. 사실 중국 사회에 대한 통제가 가장 덜한 시기는 후진타오 정권 시절이라는 게 정설이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장쩌민이 파룬궁의 미움을 샀다면, 시진핑은 전 계층의 반감을 샀다”며 장쩌민과 시진핑 비교에 집중했다. 중국의 심신단련법이자 이를 수련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파룬궁은 중국에서 매우 엄격한 금기어다.

하지만 이 글은 갑작스럽게 파룬궁을 언급했다. 90년대에 일반에 공개된 파룬궁은 수련 인구가 급증했으나 1999년 7월 금지돼 23년이 흐른 현재까지 중국에서 박해가 지속되고 있다.

장쩌민은 그러한 파룬궁 탄압을 지시한 장본인이다. 이 글의 작성자가 장쩌민파 혹은 주변 인물이라면 “장쩌민이 파룬궁의 미움을 샀다면”이라는 구절은 자신들의 허물을 시인한 셈이 된다. 이는 장쩌민파 내부에서도 파룬궁 탄압을 심각한 사안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동시에 글의 저자는 시진핑을 몰아내야 한다는 자신의 주장을 납득시키려는 대상자, 글을 읽을 중국인들에게 시진핑의 잘못은 더 크다는 인상을 주어 상대적으로 장쩌민의 죄를 작아 보이게 하려는 의도를 내비치고 있다.

즉, 파룬궁 탄압이라는 사건이 중국인들에게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심각한 사건이라는 인식을 깔고 있다. 1999년 탄압 직전 중국 내 파룬궁 수련 인구는 7천만~1억 명으로 추산됐다. 중국인 4~5명 중 1명꼴로 자신 혹은 가족이 파룬궁을 수련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친구나 동료로 범위를 확대하면 이 비율은 더 올라간다. 사실 중국인 대부분이 톈안먼 사건 이후 중국 현대사에서 가장 큰 유혈 탄압으로 기록된 파룬궁 탄압의 직·간접적인 피해자인 셈이다.

이는 글쓴이가 장쩌민을 두둔하면서도 파룬궁이라는 금기어를 꺼내들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번 권좌에서 밀려난 장쩌민파가 시진핑을 내몰고 권력을 되찾으려면 중국 대중의 지지가 필요하다. 장쩌민파가 집권하면, 피로 얼룩진 파룬궁 탄압 범죄에 대한 책임론이 다시 불거질 공산이 크기에 사전에 무마를 시도한 것이다.

실제로 장쩌민은 집권 기간 해외 순방길마다 현지의 파룬궁 수련자들의 항의 집회로 곤욕을 치렀다. 사진이나 뉴스영상에 항의 모습이 나가지 않도록 화면을 골라내느라 중국 관영매체들은 ‘외국인들의 환영 인파’를 꾸며낼 수 없었다.

장쩌민파는 ‘객관적으로 평가한 시진핑’에서 시진핑에 공동 대응하자고 호소했다. 이 글에서는 “시진핑은 중국과 공산당에 있어 지나가는 지도자일 뿐”이라며 “당의 정치환경이 20~30년 전이었다면 이러한 통치방식은 진작 저지됐을 것이고 시진핑은 원로들에 의해 파면됐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진핑을 그대로 두면 결국 공산당이 붕괴할 것이므로 당을 살리기 위해 그를 내쫓아야 한다고도 했다. 이어 “공산당은 시진핑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세계와 냉전을 벌이게 놔두지 않을 것”이라며 “양측 고위층이 시진핑과 공산당을 분리하는 정치개혁을 이끌 것”이라고 주장했다. 2020년을 전환기로 규정하고 시진핑이 온갖 난관을 겪게 될 것이며 2027년에는 완전히 실패할 것이라는 ‘예언’도 덧붙였다.

글쓴이가 밝힌 ‘양측 고위층’이란 공산당 지도부와 ‘세계’ 지도자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즉 공산당이 국제사회 지도자들과 손잡고 시진핑을 몰아내야 한다는 뜻이다. 이는 미국 정부를 향한 은근한 구애로 풀이된다. 시진핑을 배제하고 다른 공산당 지도자와 손잡자는 제안으로 읽힌다. 하지만 이는 그동안 공산당이 늘 주장하던 ‘외국 세력의 내정간섭 반대’와 상충된다.

공산당은 개혁을 요구하거나 억울한 일을 호소하는 국민이나 개인, 홍콩 시민들을 향해 ‘외세와 결탁’이라는 죄명을 씌워 공격했다. 글쓴이를 확인할 길은 없지만, 적어도 그가 옹호하려는 집단 역시 반시진핑 세력이기는 하지만 공산당의 체제 내 그룹이다.

결국 이 글 역시 남이 하면 ‘외세와 결탁’이지만 내가 하면 ‘구국의 결단’이라는 공산주의자들의 고질적 습성을 벗어나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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