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오는 총선…中 선거 개입 차단할 ‘간첩죄’ 개정 필요성 대두

전경웅 객원기자
2023년 09월 13일 오전 8:12 업데이트: 2023년 09월 13일 오전 10:20

“간첩도 시대가 흐르면서 변하고 있다. 이제는 간첩죄 조항을 개정해야 한다.”

지난 6일 오후 2시 국민의힘 박대출 의원실이 주최한 ‘북한 간첩 공작과 대공수사권 이관 점검’ 세미나가 국회 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열렸다. 이 자리에서 형법 제98조 ‘간첩죄’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었다.

발제를 맡은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은 내년 1월 1일이면 경찰로 넘어가는 대공수사권 문제와 관련해 “현행 간첩죄 체계는 최소 32년, 최고 70년 전에 제정된 것”이라며 “지금은 그때와 달리 정치, 사회, 경제, 문화, 군사 환경이 변했으며 간첩 활동 수단과 방법이 진화하고 있어 간첩죄 관련 조항을 시급히 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간첩죄 개정 논의는 북한을 주로 겨냥했던 과거와는 달라진 시대상도 고려해야 한다. 지난 10일 영국 일간 ‘타임스’는 영국 하원 외교위원장이 자신의 연구원으로 영입한 20대 남성이 중국 측 간첩으로 활동한 혐의로 지난 3월 체포됐다고 보도했다.

아직 유죄 판결이 확정된 것은 아니고 중국은 이를 “자작극”이라고 반발했지만, ‘중국 간첩’이 더는 상상 속의 위협이 아니라는 점은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간첩 소리냐’라는 발언이야말로 시대착오적인 이야기가 됐다.

정보통신 기술의 고도화와 경제적 기밀의 중요성으로 인해 간첩의 정의와 수집 대상 정보도 확대되고 있다. 더는 ‘군사기밀’만이 간첩의 정보수집 대상이 아닌 시대다.

이는 간첩죄 개정 논의가 대두된 배경이다. 현행 형법 제98조에 따르면 간첩행위를 ‘적국을 위해 군사기밀을 훔치는 행위’라고만 매우 협소하게 규정한 탓에 국가정보원과 경찰은 논란이 됐던 중국 비밀경찰서에 대한 수사를 시작도 못 했다.

중국 정보원들이 국가기밀을 훔쳐 가고, 국내에서 언론과 정치인, 인플루언서들을 포섭해 여론공작을 벌이더라도 정작 간첩죄로는 처벌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일부 언론들은 “21세기에 무슨 간첩이냐”라는 무논리로 간접죄 개정 시도를 비판하고 있다. 21세기가 됐으니 간첩이 저절로 사라진다는 주장은 의사가 되면 저절로 질병에 면역이 된다는 주장만큼이나 황당하다.

中 비밀경찰서 ‘간첩죄’ 해당 안 돼…국정원·경찰 조사 못 해

국정원과 경찰이 중국 비밀경찰서 조사를 못 하고 있다는 사실은 지난 2월 처음 나왔다. 지난 8월에는 중국 비밀경찰서에 대한 조사를 시작도 못 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적용할 법률이 없었다는 것이다.

대다수 국민은 중국 비밀경찰서를 보며 형법 제98조 간첩죄에 해당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기서 ‘간첩’이란 적국 즉 북한에만 적용된다. 이마저도 ‘북한’은 ‘반국가단체’이기 때문에 1980년대 나온 대법원 판례를 준용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처벌한다.

중국은 아예 ‘적’으로 규정조차 되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현재 북한을 도와주면서 대북제재를 무력화하고, 나아가 한미동맹을 분열시키려는 중국 스파이는 ‘간첩’으로 처벌을 할 수가 없다.

이런 문제가 대두되자 국회에서는 여야를 막론하고 형법상 간첩죄를 개정하자는 논의가 일어났다.

지난 1월 이상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월 조수진 국민의힘 의원이 간첩죄 조항 개정을 담은 형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모두 ‘간첩 행위’의 대상을 ‘외국인 또는 외국인 단체를 위해 기밀을 탐지·수집·누설·전달·중계하는 행위’로 확대하는 게 골자였다.

이렇게 되면 중국이나 이란, 러시아는 물론 테러조직의 활동도 제대로 처벌이 가능해진다.

법원행정처, 올해 초부터 간첩죄 개정 번번이 반대

하지만 형법 개정안은 논의를 시작도 못 했다. 법원행정처의 강력한 반대 때문이었다.

개정안은 지난 3월과 6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위원회에서 논의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법 개정에 법무부는 찬성했지만 법원행정처가 “현행법으로 기밀 유출은 충분히 처리할 수 있다. 그리고 동맹국 간첩과 적국 간첩을 같은 법정형으로 처벌하는 건 타당하지 않다”고 주장하며 강력히 반대한 탓에 이 개정안은 논의도 못 했다.

이후 여야 의원들은 한목소리로 “형법상 간첩죄 개정이 시급히 필요하다”며 꾸준히 호소했다.

지난달 7일에는 법무법인 세종의 김두식 대표변호사가 ‘매일경제’에 형법 개정안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기고를 했다. “반도체 등 첨단 기술을 보유하고 있고 지정학적으로 미·중 대립의 중간에 끼어 있는 우리의 안보 상황은 엄중하다”고 강조했다.

같은 달 28일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 제1소위원회가 열렸다. 이때 간첩죄 개정과 관련한 형법 개정안 4건을 심사했다.

그러나 간첩 행위와 법정형을 두고 법원행정처가 또 반대했다. 또한 박용진, 이탄희 등 더불어민주당 의원 일부가 법원행정처 주장에 동조해 논의조차 하지 못했다. 결국 제1소위는 다시 논의하기로 하고 막을 내렸다.

‘간첩죄 개정’ 반대 배경에 중국 영향력 의혹 제기

여권 일각에서는 법원행정처의 간첩죄 개정에 반대 배경에 중국의 입김이 작용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다.

법원의 일부 고위 인사에게 중국 대사관 측이 ‘사법 교류’를 구실로 접근해 공작을 펼치고 있다는 것이다.

싱하이밍 대사는 지난 2020년 5월 24일 중국 관영 CCTV  인터뷰에서 “중한은 우호적인 이웃 국가로서 핵심 문제에 대한 서로의 입장을 존중해 왔다”며 한국이 당시 논란이 됐던 홍콩 국가안전법을 이해하고 지지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틀 뒤인 26일 주한 중국대사관 관계자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홍콩 안전수호와 관련한 입법(홍콩 국가안전법) 진행 상황을 외교 채널을 통해 한국 정부를 포함한 각계와 공유했다”고 말했다.

이후 싱하이밍 대사는 홍콩 국가안전법에 관한 한국의 지지와 인정을 이끌어내려는 행보에 주력했다. 그는 같은 해 6월 12일 김명수 대법원장을 만나 “시진핑 주석이 법치국가, 법치정부, 법치사회의 일체화 건설에 힘쓰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얼마 전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홍콩 국가안전 입법을 통과시킨 것은 국가의 주권 및 안전과 발전 이익을 지키는 데 취지를 둔 것으로 중대하고 깊은 의미를 지닌다”며 김명수 대법원장 앞에서 홍콩 국가안전법에 대한 정당화를 시도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국가안전법에 대한 직접 언급을 피하면서 “한중 양국 최고 법원은 인공지능으로 스마트법원 건설을 선도하고 첨단 과학기술을 활용하여 사법재판에 협조하는 데 있어 각기 다른 강점을 갖고 있다”며 양국 사법 교류를 환영한다고 화답했다.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 | 연합뉴스

이후 양국의 사법교류가 실제로 어느 만큼 진행됐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2년 후인 2022년 4월, 민주당은 문재인 대통령 퇴임(2022년 5월 9일)을 몇 주 앞두고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추진했다.

당시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검수완박 법안이 중국 법을 모방했다고 의심했고, 검찰 내에서도 ‘중국 공안 시스템’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중국 공안 시스템은 인민검찰원(검찰)보다 공안(경찰) 권한이 더 크고, 검찰의 수사지휘가 금지돼 있다.

국민의힘 김웅 의원은 검수완박이 “중국 공안 판박이”라며 2019년 7월 검찰개혁 관련 세미나에 참석한 당시 이형세 경찰청 수사구조개혁단장의 발언을 들었다.

김웅 의원에 따르면 이형세 단장은 “우리나라 법보다 중국 공안제도가 선진적”이라고 말해 세미나 참석자들로부터 항의를 받았다는 것이다. 이형세 단장은 2021년 1월 치안감으로 승진했으며, 2022년 6월 경찰청 외사국장으로 전보됐다.

형법 개정 안 되면… 中 간첩행위에 ‘외환죄’ 적용 거론

간첩죄 개정이 안 될 경우 내년 총선에서 여당이 다수당이 되기 전까지는 현행법에 근거해 중국의 간첩 활동에 대응할 수밖에 없다.

우선은 ‘군사기밀보호법’과 ‘산업기술의 유출 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이 거론된다. 다만, 둘 다 처벌도 약하고 범위도 넓지 않다는 점이 한계로 지적된다.

형법 제92조 ‘외환(外患)죄’ 적용 방안도 거론된다. 외환죄는 ‘외국과 통모하여 대한민국에 대하여 전단(戰端·전쟁의 빌미)을 열게 하거나(전쟁을 유도하거나) 외국인과 공모하여 대한민국에 항적하는 행위’다.

다만, 건국 이후 북한을 제외한 다른 나라가 우리나라와 전쟁을 하려거나 체제를 무력화하려 한 적이 없어 적용·처벌 사례가 없다. 법원에서 기각될 가능성도 있다. 현행 형법상 ‘간첩죄’ 개정 논의가 시급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