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와 월스트리트저널 기사, 왜 잘못 됐나

청샤오눙
2020년 11월 30일
업데이트: 2020년 11월 30일

최근 뉴욕타임스(NYT)와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유사한 주제의 기사를 각각 게재했다. 중국 반체제 인사들이 트럼프를 지지한다는 내용이었다. WSJ은 이 글에서 에포크타임스를 공격하기도 했다. 필자는 이에 반박해보고자 한다.

 

두 신문에서 ‘트럼프 지지자’라고 불린 중국계 인사들

NYT는 지난 19일(현지시각) ‘왜 수많은 중국 진보진영은 미국 보수진영을 지지할까'(Why Do Chinese Liberals Embrace American Conservatives)’라는 기고문을 냈다. 저자는 미국의 중국통인 이안 존슨(Ian Johnson)이었다.

WSJ은 사흘 뒤인 22일 홍콩 특파원인 아시아계 샤화(華沙·Sha Hua)의 기사를 냈다. 제목은 ‘트럼프의 부정선거 주장을 지지하는 중국 반체제 인사들'(Chinese Dissidents Back Trump’s Claims of Election Fraud)이었다.(이 기사는 국내 언론을 통해서도 다뤄졌다-편집부)

인터넷 검색에 따르면, 샤화 특파원은 독일 서부 공업지대에서 자라 영미권에서 교육받은 아시아계다.

이안 존슨의 글은 주로 라이치잉(黎智英), 쑨리핑(孫立平), 궈위화(郭于華), 텐페이룽(田飛龍) 등 중국에 있는 트럼프 지지자들을 언급했다. 샤화는 미국에 있는 트럼프 지지자들에 대해 다뤘는데, 그녀는 천광청(陳光誠), 푸시추(傅希秋), 왕단(王丹) 그리고 독일의 아이웨이웨이(艾未未)를 비판했다.

두 저자는 모두 ‘정치적 올바름(PC)’의 열렬한 지지자들이다. 이들의 글 역시 PC적 관점에서 출발했다. 현재 PC 세력의 최우선 목적은 ‘어떠한 수단을 써서라도 트럼프를 무너뜨리는 것’이다. 여기에는 트럼프가 주장하는 선거 사기와 트럼프의 정책을 부정하는 것도 포함된다.

지난 20일, 두 기사의 발표를 전후로 미 연방선거관리위원회 트레이 트레이너 위원장은 한 방송에 출연해 “트럼프 캠프가 믿을만한 증인의 선서 증언 등을 토대로 ‘적법한 고소장’을 법원에 제출하고 있다”고 밝혔다.

트레이너 위원장은 자신이 지켜본 증언의 수준을 고려할 때, 이 단계에서 수백 건의 선서 증언은 신빙성이 있고, 상대방이 답변을 해야 한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요약하면, 이런 적법한 고소에 대해 법원은 재판을 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이번 선거가 유효한 결론을 내려면 법적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했다. “모든 사람이 (선거가) 합법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현직 선관위 위원장이 트럼프 캠프가 제기한 의혹이 신빙성이 있고 적법하며, 대선 결과를 가리기 위해서는 법적 절차가 필요하다고 말한 것이다.

그러나 이안 존슨은 자신의 기고문에서 “바이든이 트럼프를 꺾었다”고 단언했다. 샤화는 “이번 선거에서 부정행위가 만연했다는 증거는 없다”고 못 박았다. 대통령은 헌법에 따른 절차에 의해 결정되며, 부정행위의 존재 여부는 법원에서 재판으로 가려질 일이다. 정치적 올바름으로 선거 결과를 결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기본적 개념부터 틀린 기사, PC 세력의 태생적 한계

두 사람은 모두 비판의 화살을 ‘중국 반체제 인사’에게로 돌렸다. 필자는 중국 전문가로서 반박할 필요성을 느꼈다.

우선, 중국계 이민자라고 하더라도 미국 시민권자라면 선거의 자유는 헌법에서 보장한 기본권이다. 불가침의 영역이다.

WSJ 홍콩 특파원 샤화는 귀화한 중국인(시민권자)과 귀화하지 않은 중국인(영주권자·유학생)을 혼동하는 상식적인 오류를 범했다. 그녀는 두 집단의 미국 내 정치 권력에 대한 개념이 없다고 볼 수 있다.

샤화는 미국 언론을 위해 일하지만, 미국 시민권자인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그녀는 미국에서 공부한 적 있으니 미국의 시민권과 영주권의 법률적 신분 차이를 알아야 한다. 그녀가 공부하러 미국에 왔을 때 바로 후자의 신분으로 투표권이 없었다.

샤화가 “중국 반체제 인사”라고 불렀던, 귀화하지 않은 미국 영주권자들은 여전히 중국 국적자이거나 혹은 중국 공산당의 정치적 박해로 무국적자가 된 사람들이다. 따라서 그들이 미국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은 귀화한 중국인(시민권자)과 다를 수 있다.

귀화한 중국인들은 미국 국적을 취득하면서 미국에 충성할 것을 맹세했고, 다른 미국인과 동등한 투표권을 가졌으며 미국 헌법에 보장한 언론의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다.

귀화한 중국인은 법적으로 더 이상 중국인이 아니라 미국인이다. 그들은 다른 미국인처럼 누군가를 지지하거나 비판하거나 혹은 PC에 찬동하지 않을 수 있다. 그들이 귀화하기 전 중국 국적이었다는 이유로 트럼프를 지지한다는 점을 비난할 수는 없는 법이다. 이것이야말로 미국이 보장하는 선거의 자유에 대한 무지와 경멸이다.

다음은 NYT 기고문을 쓴 이안 존슨의 차례다. 그가 비난한 중국 등 외국에 거주하고 있는 트럼프 지지자들, 예를 들어 라이치잉, 쑨리핑, 궈위화, 텐페이룽, 아이웨이웨이 등은 모두 미국 시민이 아니다.

외국인들이 트럼프에 대해 태도가 어떻든 이안 존슨이 미국 매체인 NYT에서 그들을 가르칠 자격이 있는지 묻고 싶다.

그가 몸담고 있는 미국의 PC 세력이 전 세계 모든 사람의 발언을 통제할 권리가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서야 외국인들의 트럼프 지지를 꾸짖는 그의 발상을 이해하기 어렵다. PC 세력과 생각이 다른 외국인들을 모두 혼내려는 생각일까?

두 편의 기사에서는 모두 PC 세력의 관점에서 모든 사람이 마땅히 누려야 하는 사상의 자유, 언론(표현)의 자유를 부정하는 큰 실수를 범하고 있다.

사실, 트럼프를 지지하면 PC 세력을 반대하는 것이라고 결정지어버리고 비난하는 행위는 공산주의 중국을 겪어본 사람이라면 전체주의 사회에서 대중의 사상과 가치관을 억압하는 방식과 별반 차이가 없다는 것을 금방 알게 된다.

샤화는 기사 작성 전 미국에 있는 중국계 인사들을 인터뷰했다. 몇몇은 자신의 말이 왜곡 인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인터뷰는 서면으로만 진행하고, 기사가 발표되기 전 원고를 확인하고 싶다고 했다. 그녀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이를 거절했고 결국 서면 인터뷰는 무산됐다.

샤화는 이번 기사에서 인터뷰 대상자들의 발언을 이용해 그들을 비난했다. 처음부터 이런 의도를 지니고 있었기에 기사 원고를 보여주려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정치적으로 편향된 미디어들 그리고 에포크타임스

이번 미국 대선 기간, 소위 ‘주류 언론’들은 민주당에 불리한 정보는 무엇이든 차단하겠다는 태도로 일관했다.

바이든 지지자들은 바이든의 스캔들을 보도한 뉴욕포스트를 ‘야한 타블로이드’라며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흥미로운 건 미국뿐만 아니라 중국에 있는 바이든 지지자들도 마찬가지로 행동했다는 점이다.

민주국가에서 언론은 말할 필요도 없이 자유 언론을 가리킨다. 서구에서 공인된 저널리즘 원칙에 따라 자유 언론은 사실을 우선하고 보도의 균형을 맞춰야 공정한 감시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필자가 살펴본 바에 따르면 뉴욕포스트는 바이든 스캔들 보도에서 전통적 저널리즘의 원칙을 준수했다. 증거에 입각했고 사실 확인을 거쳤으며 반론권을 보장하기 위해 노력했다.

NYT는? 지난 2016년 대선 이후 사흘째 되던 날 NYT 발행인 아서 그레그 설즈버거는 구독자들에게 편지를 보내 “NYT는 저널리즘의 기본 사명에 다시 헌신하겠다”고 맹세했다. 참 미묘한 말이다. 사명에서 등 돌린 적 없다면 무슨 ‘다시’란 말인가.

어쨌든 다시 헌신하겠다는 맹세대로 NYT는 지난 4년간 정말로 저널리즘의 기본 사명에 충실했을까? 현재 그들은 저널리즘의 기본 사명을 거부하고 완고하게 특정 정파의 대변인 미디어로 탈바꿈한 모습이다.

정치적으로 편향된 미디어가 자유로운 언론에 속하지 않음은 분명하다. 그들은 다른 대변인 미디어들과 함께 ‘주류 언론’만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트럼프에게 장점이라고는 하나도 없으며 바이든이 당선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도록 유도하는 데 성공했다.

중국에서 자란 많은 중국인은 중국 공산당 출판물과 방송사의 나팔수 언론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있다. 어릴 적부터 자유 언론에 익숙했던 오늘날의 미국인들보다 훨씬.

필자는 한 방송에서 지적했다. 현재 NYT는 1990년대부터 2010년 무렵까지 저널리즘을 추구했던 주간지 ‘남방주말’만 못하다.

중국 광저우를 기반으로 하는 남방주말은 체제상 중국 공산당의 나팔수 언론이었다. 그러나 그 제약 속에서도 민주 사회의 저널리즘 원칙을 추구했다.

지금은 예전의 날카로움을 잃어버렸지만, 당시에는 정권으로부터 타격을 입으면서도 중국 공산당이 감추려 하는 사실들을 쏟아내 중국 독자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었다.

NYT는 이제 이렇게 할 수도 없고, 특정 정치적 파벌의 대변 미디어란 울타리를 벗어나려 하지도 않는다.

일반적으로 언론사들은 특정 기사나 칼럼에 대해 반박을 하기는 하지만, 다른 언론사의 정체성 자체를 논평하지는 않는다. 언론사는 선의의 경쟁을 통해 언론시장 자체를 살찌우고 독자들을 경쟁의 과실을 향유하게 된다.

하지만, WSJ 홍콩 특파원 샤화는 “파룬궁의 출판물이 심각하게 트럼프에 치우쳤다. ‘극우 음모론 집단’(QAnon)의 음모론을 퍼트리고, 중국 이민자들을 만족시키는 방법으로 독자층을 형성했다. 하지만 오랫동안 잘못된 정보로 가득 찬 뉴스 환경을 조성했다”라고 썼다.

이 기사가 나간 후 에포크타임스는 그녀에게 서한을 보냈고, 그녀는 위 문장의 뒷부분에 “에포크타임스는 사실에 근거하며, 편향되지 않은 기사를 제공하는 중국어 환경의 독립신문 출판물”이라고 덧붙였다.

중국 공산당은 에포크타임스를 극단적으로 적대시한다.

샤화는 왜 에포크타임스에 대해 강한 불만을 품고 있을까? 어쩌면 에포크타임스 영문판과 중국어판이 많은 기존 미디어가 구축한 프레임에서 탈피해 진실한 보도로 미국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 그들을 난감하고 고통스럽게 했기 때문일지 모른다.

샤화는 에포크타임스를 악의적으로 공격하면서 PC적인 속성을 드러냈고 그녀의 포지션이 중국 공산당과 비슷한 위치에 있음을 스스로 입증했다.

 

‘정치적 올바름’(PC) 세력의 위험성

PC 세력은 이번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를 무너뜨리려 활동하는 과정에서 미국의 본질인 민주와 법치, 국민의 헌법적 권리를 심각하게 훼손했다.

부정선거의 가장 큰 문제점은 정상적으로 투표한 유권자의 선거권을 박탈한다는 점이다. 룰을 지키며 공정하게 경쟁하는 상대방을 해치는 행위다.

대변자 언론이 진실을 차단하고 언론의 자유를 박탈했을 때, 교육계가 ‘정치적 올바름’에 공감하지 않는 사람을 배척하고 사상적 자유와 언론의 자유를 억압했을 때,

미국의 국무부 장관이 민주당의 훼방과 위협, 학대를 받았을 때, 민주당 의원들이 트럼프 지지자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보복하는 일을 논의하기 시작했을 때,

전제 정치의 그림자는 이미 미국 땅에 드리워져 있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이번 대선은 이미 후보 개인의 이기고 지는 문제가 아니라 미국의 민주 법치와 PC세력 간의 대결이며, 그 결과에 따라 향후 미국은 기본적인 정치 제도 기틀 자체가 흔들릴 수도 있다.

민주당이 바이든 집권 이후 준비하겠다고 밝힌 국경 개방, 마약(마리화나) 허용 등의 조처는 미국 사회 안정에 대한 위협으로 작용할 것이다.

필자는 ‘정치적 올바름의 정체성을 복원하다’라는 글에서 PC 세력의 사상적 배경이 의심스럽고, 이는 유럽에서 수입된 네오마르크시즘의 여러 유파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밝혔다.

기존 버전이든 새로운 버전이든 모든 마르크스주의는 계층 대립과 사회적 충돌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하는 만큼, ‘정치적 올바름’의 이데올로기 근간은 마르크스와 공산당이 계급투쟁을 고취하는 새로운 복제품에 불과하다.

민주적 제도와 함께할 수 없다면 이런 식의 ‘정치적 올바름’은 실제로는 정치적으로 올바르다고 할 수 없다.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꼬리표에 고집하는 것 자체가 본질적으로 민주적 제도와 천부인권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함축하고 있다.

사실 ‘정치적 올바름’은 민주·자유·법치에서 사상·언론·행위 통제로 역행하는 반동이자 퇴행이다. 사회 도덕과 가치윤리를 부정하는 역류이므로 그 범람을 내버려 둘 수 없으며 비판받아 마땅하다. 우리는 그것에 비판을 가해야 한다.

미국 PC 세력의 특징은 자기 생각과 입장만이 유일한 ‘정치적 올바름’이라고 여기며, 누구든 그들의 입장이나 관점, 특히나 그들의 정치 지도자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면 분명 ‘정치적 그름’의 소지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교육계, 언론, 문화계에도 PC 세력이 넘친다. 그들은 한자리에 모여 서로서로 ‘인증’해주다 보니 한 가지 기본적인 사실을 망각한 듯하다. 누가 그들에게 ‘올바르다’는 월계관을 씌워준 걸까?

문을 걸어 잠그고 스스로 ‘영원히 올바르다’고 자만하면 남들은 더 이상 말을 섞지 않는 법이다.

자칭 ‘정치적 올바름’을 미국 국내와 세계 각국의 사물과 사람들의 기준으로 삼고, 자신들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비난한다면, 그들은 민주사회에서 헌법이 보호해 온 사상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 아닌가.

현재 미국 가정에서 부모와 자녀 두 세대 사이에 가치관 차이 때문에 도덕적, 윤리적, 정치적 관점이 분열되는 것은 중국인 가족에만 국한되지 않는 보편적인 현상이다.

미국 교육 시스템 전반의 심각한 좌경화, 그리고 미국 청소년의 가치관을 심각하게 왜곡하고 있는 ‘정치적 올바름’ 구호의 전제 정치적 색채가 근본적인 원인이다.

사회학 이론에서 청소년 가치관의 자연스러운 형성은 주로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의 단계에서 이뤄지며 학부모, 교사, 친구 등 세 가지 영향력이 공존한다고 본다.

미국 역사상 이 세 가지 힘은 정치적 갈등으로 대립한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정치적 올바름’이 끼어들어 오고 나서부터 심각한 갈등을 겪고 있다. 이는 미국 가정이 내부에서 정치적 분열되는 주요 원인이다.

미국 헌법은 어떤 정당이나 사회단체에 ‘정치적 올바름’을 확정할 권한을 부여한 적이 없다. 만약 미국 사회에서 일부 사람들이 자신에게 이런 권한을 부여한다면 그것은 민주 제도에서의 ‘진보주의’가 아니라 공산당 정권의 사상 개조 방식과 매우 흡사한 전제 사상의 주입이다.

‘정치적 올바름’의 전제 사상이 사회적으로 묵묵히 받아들여지고, 젊은 세대가 학교에서 단일 이데올로기로 ‘세뇌’될 수밖에 없게 되면 한 민주국가는 사상의 자유를 잃게 되고, 그곳의 민주제도는 일부 사람들의 정치독재, 즉 공산당식 사회독재로 전락할 수도 있다.

NYT와 WSJ, 두 기사의 저자들이 재미 중국교포와 중국 내 일부 활동적인 인물에 대한 불만과 비판적인 글을 쓰는 데 급급한 것은 당연히 미국 대선 기간 중 이들의 언행이 두 저자에게 용납될 수 없었기 때문이었겠지만, 이 두 사람의 불만은 아마도 그들 같은 사람들의 뼛속 깊숙이 새겨진 ‘정치적 올바름’과 더 깊은 관련이 있을 것이다.

플로리다주의 쿠바 이민자들이 트럼프를 강하게 지지했듯이, 이들 중국계 미국인 트럼프 지지자들이 지니고 있는, 공산당 문화에 대한 심각한 인식은 미국에 어떤 유사판본이 나올지 촉각을 곤두세우게 한다.

이런 경계심은 공산당의 독재를 직접 경험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다. 미국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들은 ‘PC 세력’의 언행과 공산당 독재의 유사성을 발견하는 데 있어 그들만큼 안목을 지니기 어렵다.

뉴욕타임스와 월스트리트저널의 두 기사를 쓴 저자들은 중국인들 사이에서 자신들의 동조자 몇을 찾아낸 것으로 ‘트럼프 지지의 오류를 증명할 수 있다’고 생각했겠지만, 실제로는 ‘정치적 올바름’을 배척하는 사람들의 정치적 투시력과 시사적 통찰력을 과소평가한 것이다.

 

*외부필자 기고문은 저자의 견해를 나타내며, 본지의 편집방향성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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