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의 善을 끌어내려면…미켈란젤로의 ‘시 152’

말레나 피게(Marlena Figge)
2024년 02월 5일 오후 8:43 업데이트: 2024년 02월 5일 오후 9:17

“여인이여,
높은 산 단단한 돌 속에 갇힌 살아있는 그 무언가가
돌 표면이 깎여질 때마다 점점 더 커지는 것처럼
내 영혼의 선은
거칠고 조잡하며 견고한 껍질(육체)에 갇힌 채 여전히 떨고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것을 깨뜨릴 의지와 힘이 없기에
오직 당신만이 그 껍질을 벗겨 내 영혼을 꺼낼 수 있으리라.”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거장 부오나로티 미켈란젤로(1475~1564)를 생각하면 대부분 피에타, 다비드 같은 조각상을 먼저 떠올린다. 그가 조각가이자 화가이면서 시인이기도 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그러나 작품의 미학적 완성도와 예술성을 보면 그가 철학과 문학에서도 천부적인 재능을 발휘했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미켈란젤로의 작품 ‘시 152’는 1538년에서 1544년 사이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의 대표적 걸작으로 알려진 피에타와 다비드상 완성 후에 쓴 시라는 것이다. 이 시에는 조각상 제작 당시 작품에 투영된 그의 철학과 예술에 대한 많은 생각이 담겨 있다.

‘미켈란젤로의 초상’(1545), 다니엘레 다볼테라.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 공개 도메인

당시 그가 영향을 받았던 신플라톤주의 예술 이론은 조각의 진정한 형태가 돌과 같은 물질 안에 갇혀 있다고 믿었다. 그는 예술가의 임무가 물질의 껍질을 제거해 그 안에 담긴 형태나 사상을 드러나게 하는 것이라 여겼다. 미켈란젤로는 이를 바탕으로 예술가가 조각할 때 작품 본질의 형태를 드러내듯 화자도 자신 내면의 선함을 서서히 끌어낸다는 내용을 시에 표현했다. 또한 그는 예술에 대한 철학과 고결한 우정에 대한 자기 생각을 시 속에 풀어냈다.

떨고 있는 영혼

‘50세 무렵의 비토리아 콜로나’(1534), 미켈란젤로 | 공개 도메인

‘시 152’는 14세기 이탈리아에서 유행한 서정시의 한 형태인 마드리갈(세속적 주제의 시에 노래를 붙인 성악곡)이다. 미켈란젤로는 동료 시인이자 절친한 친구였던 16세기 이탈리아의 여류 시인 비토리아 콜로나(1492~1547)를 위해 이 시를 썼다. 두 사람은 신앙과 예술적 추구라는 공통된 주제로 지적 동지애를 키우며 서로에게서 위안을 얻었다. 그들의 우정은 시에 영감을 불어넣는 원천이 됐다.

시의 첫 부분에서는 인간 내면의 선(善)과 미덕(德)을 끌어내 주는 친구의 행동을 예술가가 돌의 겉면을 조각해 껍질을 제거하는 것에 비유한다. 미켈란젤로는 이 작품에서 그리스도가 사도들에게 “영혼은 의지가 있으나 육체는 약하다”고 말한 것과 같은 맥락을 표현했다. 화자의 지성은 의지와 싸우고 있으며, 충동에 저항할 힘이 부족하다. 여기서 육체는 영혼의 외피로 묘사되며, 영혼은 미덕을 잃지 않기 위해 육체의 거칠고 조잡한 본성과 싸워야 한다. 조각가가 돌의 겉을 벗겨내 그 안의 형태를 드러내듯이, 시에서 언급된 친구(당신)는 화자의 영혼을 끌어내 선에 이르게 하는 존재다. 친구가 없다면 영혼은 선에서 멀어지고 구원받지 못하게 된다.

‘피에타’(1498), 미켈란젤로. 대리석, 성 베드로 성당, 바티칸 시국 | 공개 도메인

진정한 우정의 형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기원전 384~기원전 322)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우정의 가장 완벽한 형태는 품행이나 미덕이 비슷한 선한 사람들 사이의 우정이다”라고 밝혔다. 그는 서로 선한 이들이 우정을 나눌 때는 그들 자체가 본질적으로 선하기에 서로의 선함을 기원한다고 생각하며 “친구를 위해 그의 선함을 바라는 이는 진정한 의미의 친구다”라고 말했다.

미켈란젤로 역시 미덕을 함께 추구하는 것을 진정한 우정의 특징으로 규정했다. 덕을 가진 친구는 자신이 선하기 때문에 다른 이들이 자신을 본받도록 영감을 줄 뿐만 아니라, 상대의 선함을 기원하므로 상대가 선을 추구하도록 자극한다. 쾌락이나 유용함에 기반한 우정은 결국 이기심에 의해 해체된다. 그러므로 우정이 지속하려면 덕은 필연적 요소다.

이처럼 많은 성인들은 선과 미덕을 추구하는 삶의 여정에 좋은 우정이 필수적이라 강조한다. 현대 영성의 아버지라 불리는 성 프란체스코 살레시오는 “경건한 삶을 증진하는 데는 우리를 지지하며 서로 도움 줄 이를 찾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모세’(1545) 미켈란젤로. 로마 산 피에트로 인 빈콜리 성당 | Ulrich Mayring

이 시의 화자는 대화 대상에게 의존하고 있다. 대화의 대상은 화자 내면의 선을 끌어내고자 껍질을 깎아내고 있다. 화자의 의지가 꺾이더라도 여인이 그를 끌어낼 수 있다. 화자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여인의 격려와 모범이 귀감이 되어 화자의 영혼에서 미덕을 불러일으켜 비로소 껍데기를 벗고 세상으로 나올 수 있게 된다.

선함과 미덕을 추구하는 친구는 신을 반영하는 존재가 되고, 미덕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신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신을 닮아간다. 결과적으로 미덕을 추구하는 친구와 우정을 나누고 그를 닮아간다면 그 자신 또한 신과 더 가까운 존재가 될 것이다.

말레나 피게는 2021년 미들베리 대학에서 이탈리아어 문학 석사를 취득했고, 2020년 댈러스 대학교에서 이탈리아어와 영어 학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녀는 현재 이탈리아의 한 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류시화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정리에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