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韓人음악가 정율성④] 중국 ‘군가의 아버지’…평가와 논란

최창근
2021년 11월 13일
업데이트: 2021년 11월 15일

다수 한국인에게 여전히 낯선 이름 정율성. 그는 일제 강점기 광주에서 태어나 중국 땅에서 젊은 시절을 보낸 후 해방 후 잠시 ‘북한인’이 됐다, ‘중국인’으로서 삶을 마감한 ‘한인(韓人)’ 음악가이다.

오늘날 중화인민공화국 제2 국가(國歌) 격인 ‘중국인민해방군행진곡’을 작곡하여 녜얼(聶耳)·센싱하이(冼星海)와 더불어 중국 현대 음악계 3대 악성(樂聖), 중국 군가의 아버지로도 꼽힌다. 생애 동안 360여 곡을 남긴 그의 노래를 14억 중국인 중 10억 이상이 알고 있다.

정율성의 삶을 두고서는 항일(抗日) 독립운동가라는 평가와 북한·중국을 위해 헌신한 공산주의자라는 평가가 엇갈린다. ‘에포크타임스’는 5회에 걸쳐 정율성의 행적과 논란을 다룬다.

중국 헤이룽장성 하얼빈시에 세워진 ‘인민음악가 정율성 기념관’ 설치된 전시물. 전율성의 음악을 공산주의 혁명정신을 고취시키는 화면과 함께 들어볼 수 있도록 해놨다. | 웨이보

오늘날 정율성은 중국 공식 국가인 ‘의용군 행진곡(義勇軍進行曲)’ 작곡가 녜얼(聶耳), ‘황허(黃河)대합창’을 창작한 셴싱하이(洗星海)와 더불어 현대 중국 3대 혁명 음악가으로 꼽힌다. ‘군가의 아버지(軍歌之父)’로도 불린다.

정율성 사후 중국에서 추모 활동이 이어지고 있다. 정율성의 대표곡 ‘팔로군행진곡’을 중국 공산당은 1945년 ‘중국인민해방군행진곡’으로 곡명을 바꾸었고, 1988년 덩샤오핑(鄧小平) 중국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의 지시로 ‘중국인민해방군가’로 공식 확정됐다. 곡은 1990년 베이징올림픽 개막식, 2015년 항일전쟁승리 70주년 열병식 등에서 공식 연주됐다.

1993년 중화민족문화촉진회는 ‘옌안송(延安頌·옌안 찬송)’을 ‘20세기 화인 음악 클래식(華人音樂經典)’ 중 한 곡으로 지정했다. 2007년 베이징 국가음악청에서 중국국가교향악단 연주로 정율성 작품음악회를 개최했다. 2009년 중국 정부는 ‘신 중국 창건 100대 영웅 모범 인물’로 선정했다. 2014년 정율성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베이징 민족문화궁 대극원에서 ‘정율성 창작 마오쩌둥 시사 가곡 음악회’가 개최됐다. 그해 헤이룽장(黑龍)성 하얼빈에는 ‘인민음악가 정율성생애사적전시관’이 개관했다.

중국 대표 포털사이트 ‘바이두(百度)’는 정율성을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정율성은 중국의 걸출한 작곡가이다. 또한 유명 국제주의 전사이다. 그중 ‘인민해방군행진곡’은 순박하고 간결한 언어와 울림이 있으면서도 힘 있고 장엄하고 호방한 곡조를 담고 있다. 인민군 군인의 이미지를 강하게 새겼다. 인민 군대의 무한한 전투 품격과 산이 첩첩이 줄을 서고 바다를 뒤집는 기세를 보여준다. 진군 나팔소리와 같이 인민군대 성장의 장대함과 인민 전쟁 승리의 역정에 따라서 중국인민해방군 전투 역량과 정치적 업무의 한 구성품이 됐다.”

중국판 구글 ‘바이두’에 실린 정율성에 대한 소개 | 화면 캡처
중국 공산당 관영 신화통신(신화망) 한국어판에서 보도한 한국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 정율성 생가 방문 기사. 이곳에는 정율성 거리도 조성됐다. | 화면 캡처

3대 혁명음악가·중국 군가의 아버지라는 찬사
시진핑이 한중 우호의 상징으로 언급

2014년 방한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서울대 특강에서 “중국 인민해방군가의 작곡자가 된 정율성 선생 등 양국 국민 간 우호 왕래, 상부상조의 전통은 유래가 깊다” 언급했다.

한국에서 재평가도 이뤄지고 있다. 국내 평가는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조심스레 이뤄지다 2007년 하동 정씨 종친회가 주축이 돼 결성한 사단법인 정율성선생기념사업회가 발족 되면서 본격화됐다.

고향 광주광역시도 추모·재평가 사업에 적극적이다. 광주광역시 남구청은 2002년 기념사업을 시작하면서 남구 양림동 79번지를 정율성 생가터로 지목하고 복원에 나섰다. 양림동 생가터에 표지석을 설치하고 정율성거리를 조성했다.

문제는 ‘생가터’가 정확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정율성의 종가인 하동 정씨 종친회 등은 광주광역시 동구 불로동 163번지(전라남도 광주군 광주면 부정리 94번지)가 생가터라며 맞섰다. 역사학자 이이화 서원대 석좌교수도 “정율성의 출생지는 광주광역시 동구 불로동 163, 현 히딩크관광호텔 부지가 확실하다. 호적 등본 상 정율성의 부친 정해업의 본적이 전라남도 광주군 광주면 부동정 94(현 불로동 163)로 돼 있고 정율성의 호적부도 같은 지번으로 기록됐다”고 주장했다. 김성준 옌볜대 예술학원 교수도 ‘작곡가 정율성 출생지에 대한 고증’ 논문에서 “(광주광역시) 남구청과 정율성 유가족이 주장하고 있는 양림동 생가설은 입증할 역사 자료나 기록이 없어 신빙성이 떨어진다”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 생가설도 정율성이 4살때 능주로 이사해 잠시 생활한 적이 있을 뿐”이라고 밝혔다.

정율성 생가 진위 논쟁은 법정 공방으로 비화됐다. 하동 정씨 문절공파 대종회는 2008년 광주광역시 남구청을 상대로 정율성 선생에 대한 각종 기념사업을 금지하는 내용의 ‘기념사업 등 추진 금지 가처분 신청’을 광주지방법원에 제출했다. 2010년 8월 ‘광주광역시 정율성 생가 고증위원회’는 “광주광역시 동구 불로동은 정율성의 본적지이자 출생지이고, 남구 양림동은 정율성의 출생지이자 성장지”라고 정리했다. 정율성의 출생지가 두 곳이라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이는 논란을 가중시켰다.

중국 관영 CCTV의 정율성 생가 방문 다큐멘터리. 동판에 새겨진 악보 옆 버튼을 누르면 옌안송(옌안 찬송)을 직접 들을 수 있게 만든 장치를 ‘흥미로운 설치물’로 소개하며 “옌안송의 선율이 한국 광주의 거리에 울려퍼진다”고 전했다. | 화면 캡처

한 인물을 둘러싼 3개의 생가 논란…
고증 안된 채 추진된 추모 사업이 빚은 헤프닝

2015년, 정율성의 딸 정샤오티는 정율성의 자필 이력서, 회고록 등 관련 자료를 토대로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이 정율성의 출생지”라는 사실을 확인해달라는 취지의 소송을 광주지방법원에 제기했다. 법원은 “정율성 기념사업을 추진하는 주체는 광주광역시 남구청(양림동), 동구청(불로동), 사단법인 정율성선생기념사업회이다. 기념사업 주체도 아닌 광주광역시를 상대로 출생지 확인을 구하는 소송은 맞지 않다”며 소송을 ‘각하’했다.

2015년, 광주광역시·광주광역시 동구·광주광역시 남구·전라남도 화순군 등 4개 광역·지방자치단체가 생가 논란 종식과 향후 정율성 기념사업 공동 추진에 합의하면서 ‘생가 논란’은 일단락됐다.

지방자치단체 간 합의에 따라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 정율성 생가에는 기념관이 건립됐다. 2009년 1월에는 길이 233m의 ‘정율성로’도 조성했다. 길 왼쪽 벽면에는 그의 사진과 함께 ‘옌안송(옌안 찬송)’ 악보 동판(銅板), 관련 기록물, 사진 등이 전시돼 있다. 악보 동판 옆 작은 버튼을 누르면 예안 찬송 노래를 직접 들을 수도 있게 해놨다.

이밖에 정율성 흉상도 설치했다. 광주광역시 동구 불로동 생가터에는 기념비가 세워졌다. 정율성이 재학했던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초등학교 교사(校舍) 외벽에는 정율성 벽화가 그려졌고, 교실 1칸이 ‘정율성 교실’로 꾸며져 일제강점기 당시 풍경을 재현했다.

2014년 7월, 민선 6기 윤장현 시장 취임 후 광주광역시는 총 사업 예산 71억 원 규모의 ‘차이나 프렌들리(중국과 친해지기)’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친중국 문화관광콘텐츠 활용을 통한 대 중국 한류 관광 기반 구축 ▲아시아 문화중심도시 광주의 대 중국 홍보 ▲정율성 브랜드 활용 도시마케팅 ▲차이나 프렌들리 도시환경 구축 ▲대 중국 문화예술교류 활성화 ▲광주시 대 중국 교류 역량 확대·강화 등 6대 전략이 제시됐다. 그중 정율성 관련 세부 사업으로는 ▲정율성 사적지 등 주변 정비 ▲정율성 한중음악제 프로그램 확대 추진이 명시됐다.

중국 장시성 난창에서 개최된 정율성 국제음악제. 사진은 2015년 행사 장면이다. 중국을 상징하는 베이징 자금성 화면을 배경으로 한복을 입은 광주시립 국악관현악단이 국악을 연주하는 모습이 이채롭다. 이 음악제는 한중 문화교류와 우호협력 증진의 장이 되고 있다. | 중국 매체 훙망 캡처

광주광역시는 2005년부터 연평균 4억 6000만 원을 들여 ‘정율성 국제음악제’를 개최하고 있다. 행사는 2008년부터 중국 장시(江西)성 난창(南昌)시와 상·하반기로 나눠 연 2회 개최한다. 광주광역시는 “광주가 낳은 중국의 3대 음악가인 정율성을 매개로 한 한중(韓中) 문화교류 및 관광 활성화와 공연문화 발전 도모”를 ‘정율성 음악제’ 개최 동기로 밝혔다. 행사는 광주광역시 남구청이 시(市) 교부금 5억 원을 받아 시작했다. 그러다 예산 부족으로 난항을 겪었고 광주광역시가 2007년부터 2010년까지 주관했다. 2011년부터는 문화예술진흥위원회 문예진흥기금 50억 원, 광주광역시 출연금 50억 원 등 총 100억 원 규모 기금으로 설립된 광주문화재단이 행사를 주관하고 있다.

광주광역시의 정율성 기념사업의 또 다른 주체는 광주 소재 사립대학 호남대이다. 호남대는 2014년부터 대학 부설 공자아카데미, 광주MBC 공동주관으로 ‘정율성 동요합창경연대회’를 개최 중이다. 광주광역시와 공동 추진 중인 ‘정율성 실크로드’ 사업의 일환이다. 대회 우승팀은 중국 각지를 돌며 공연한다.

광주광역시의 ‘차이나 프렌들리’ 정책과도 호남대는 밀접하다. 2015년 광주광역시 서구 상무대로 971번지 호남대 정보문화센터 1층 호남대 공자아카데미에서 ‘광주광역시 중국과 친해지기 지원센터’가 개소했다. 초대 센터장으로 이정식 호남대 중국어학과 교수(당시 공자아카데미 원장 겸임)가 취임했다. 센터는 2017년 광주광역시 차이나센터로 확대 개편됐다. 현 센터장은 지역신문 편집국장 출신 조경완 호남대 신문방송학과 교수이다. 대학은 주광주중국총영사관과도 긴밀한 협조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현재 광주광역시 남구 총영사관이 입주한 건물주도 호남대이다.

광주광역시의 정율성 기념사업의 목적은 무엇일까? 정율성 기념사업 실무자였던 정창재 전 광주문화예술회관 관장의 2015년 ‘전남일보’ 기고문 ‘정율성 콘텐츠, 이젠 중국시장에서 돈 벌 때다’에서 엿볼 수 있다. 글에서 정 전 관장은 “지금 중국은 경제력으로 하루가 다르게 그 위상이 변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과는 너무 가까워졌다. 한ㆍ중 FTA 체결, 위안화 직접 결제, 후강퉁(邑港通),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가입 등이 그 가교다. 또 시진핑 주석은 한국 방문에서 정율성은 중국 건국 100대 인물이라며 친밀감을 표시하고 우리를 손짓하고 갔다. 우리(광주)는 아시아 문화중심도시를 지향한다. 중국과 공연 직접투자로 예술을 발전시키고, 중국서 돈도 벌고 관광객을 불러들여 일거 삼득의 기회를 만들어나가야 하지 않을까”라고 썼다.

중국 교육부가 운영하는 ‘공자학원’ 호남대 지점은 대학생은 물론 지역 고등학생들의 활발한 참여를 이끌어 내고 있다. 공자학원은 중국어 교육기관을 내세우고 있지만, 중국 공산당 산하 해외 침투기관인 ‘통일전선공작부’와 관련성이 지적되고 있다. | 호남대 공자학원 홈페이지 화면 캡처

고향 광주는 ‘차이나 프렌들리’ 사업 추진
핵심 아이템은 정율성…상업화 목적 짙어

광주·전남 지역 사회 여론이 호의적인 것만도 아니다. 2013년 ‘남도일보’는 ‘공산주의자 정율성을 기리는 광주시’ 제하 사설에서 “광주광역시가 거액의 예산을 들여 정율성 축제를 준비하는 모습을 보면서 시와 광주문화재단 관계자들이 과연 제 정신을 갖고 사는 사람들인지를 묻고 싶다. 정율성은 공산주의자였으면서 6·25전쟁 때 남한에 총부리를 겨눈 인물이다. 1914년 광주에서 태어난 그는 전남 화순 능주에서 유년 생활을 보내고 19살 때 중국으로 건너갔다. 음악적 재능이 뛰어나 중국 공산당의 군가를 많이 작곡했으며 6·25전쟁 때는 중공군으로 참전해 서울까지 내려왔다. (중략) 출생지가 광주이고 성장지가 화순일 뿐 철저한 공산주의자였으며 북한군의 사기를 드높이는 여러 군가를 지어 북한 정권에 충성했던 그에게서 무엇을 배우자고 기념음악제를 벌이는지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중국에서 유명한 작곡가로 알려졌다 해서 그의 사상과 전력을 깡그리 무시해도 되는 것인지, 민주주의를 부정하면서 ‘용감하게 남한 괴뢰 군대를 무찌르자’는 그의 음악적 선동은 그냥 받아들여도 되는 것인지, 묻고 싶다”고 비판했다.

김명호 성공회대 석좌교수는 ‘중국인이야기’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하기도 했다. “정율성이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작곡가라는 점은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전쟁의 상처가 가시고, 남북이 서로 오가는 날이 오면 우리가 새롭게 조명해야 될 사람들 중 그 이름이 맨 앞에 올라가도 손색이 없는 사람이 정율성이다. 정율성은 북한의 군가인 ‘조선인민군행진곡’의 작곡가이기도 하다. 중국 쪽 기록에 의하면 한 사람이 두 나라의 군가를 작곡한 사람은 정율성이 유일하다고 한다. 몇 년 전 딩쉐쑹이 세상을 떠났을 때 정율성의 고향인 국내 한 광역시에서 조문했다는 보도를 접했다. 아무리 고향이 자랑하는 인물의 부인이라 할지라도 지금은 남북이 대치하는 상황이다. 사설 단체라면 모를까, 공공기관에서 나선 일이 적절했는지는 한 번 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무슨 일이건 때가 있는 법이다. 이 일은 세월이 지나면 후손들이 해야 마땅한 일이다.”

정율성의 ‘항일·독립운동’ 이력과 관련해서도 논란이 제기됐다. 요지는 항일 운동가는 맞으나 독립운동 경력은 희미하다는 것이다. 노기욱 전 전남대 호남학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정율성의 음악관에 투영된 사상적 지향’ 논문에서 “정율성이 자필로 작성해 중국 국립중앙악단에 제출한 ‘정율성 정치 경력서’에도 조선혁명정치간부학교에 입학한 기록은 없다. 이는 조선혁명정치간부학교에 관심이 없었으며, 결론적으로는 입학 사실을 증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가 조선혁명정치간부학교 출신이라고 기존의 연구자들이 인용하게 된 것은 한상도의 글에 기인하고 있다. 한상도는 정부은이라는 가명이 의열단간부학교 2기생 명단에 있다는 이유로 정율성이 조선혁명정치간부학교 2기생이라고 단정하는 오류를 범한 것이다”고 했다.

조선혁명정치간부학교 입학 논란 외에도 ‘독립운동’을 둘러싼 논란은 존재한다. 평전 등에 중국에서 구체적인 독립운동 경력 기술이 적기 때문이다.

이종한이 쓴 ‘항일전사 정율성 평전: 음악이 나의 무기다’에는 한 단락으로 난징에서 행적을 기록하고 있다. “정율성은 다른 대원들과는 달리, 어쩐 일인지 국내 침투 임무가 부여되지 않고 현지에 남는다. 난징에 남은 정율성에게 부여된 임무는 난징의 구러우(鼓樓)전화국에 침투하여 정보를 입수하라는 것이었다. 일본어에 능숙한 그의 장점을 고려한 배치였다.”

김은식이 쓴 또 다른 평전 ‘중국의 별이 된 조선의 독립군: 정율성’의 기술도 대동소이하다. 책에는 “부은(정율성의 원이름)은 의열단의 지시에 따라 난징 시내의 구러우전화국이라는 곳에 직원을 가장해 침투했고, 그곳에서 일본어나 중국어로 이뤄지는 일본인들의 통화를 도청해서 정보를 캐내는 일에 투입됐다. 하지만 그 외에도 부은에게 부여된 임무가 한 가지 더 있었다. 바로 음악 수업이었다.”

국내에 출간된 정율성 평전들. 중국 공산당을 열렬히 찬양했던 모습보다는 실제 행적이 뚜렷하지 않은 항일투쟁이나 독립군 활동에 초점을 맞춘 제목과 소개문구가 달렸다. 우측 ‘항일전사 정율성 평전’은 문화관광부 2007년 교양도서로 추천됐다. | 책 표지

독립운동가? 공산주의자? 논란 속 정체성…
희미한 항일 행적, 뚜렷한 공산주의자로서의 삶

이를 두고 조응순 전 영남대 음악과 교수는 ‘음악가 정율성의 삶과 예술가의 윤리’ 논문에서 “정율성은 의열단 중앙부의 신임을 받지 못했다. 그렇기에 본격적인 공작 임무 대신 비교적 한직에 속하는 전화국 도청 임무를 부여받은 것으로 보인다. 당시 의열단은 민족주의 성향을 경시하면서 공산주의 이념을 더욱 중시하는 쪽으로 변화하고 있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이 저술한 ‘약산 김원봉 평전’에도 “정율성의 혁명정신은 소년 시절 조선혁명간부학교에서 싹트고 김원봉 등 지도교관들의 애국심과 항일투쟁을 통해 성장했다. 결국 정율성은 혁명음악가로서 정상에 서게 됐다”고 기술하여 ‘혁명’에 방점이 찍혔을 뿐, ‘독립운동’에 대한 구체적 기록은 전무한 형편이다.

반면 정율성의 중국에서의 공산당 활동, 북한에서의 활동에 대해서 두 책은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정율성의 활동은 항일은 맞으나 독립운동이라 평가하기에는 모호하고, 친 중국·북한, 공산주의 활동은 선명한 것이다.

이러한 논란 속에서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정부 차원에서도 정율성 재조명에 적극적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방중(訪中) 일정 중 베이징대 연설에서 “광주시에는 중국 인민해방군가를 작곡한 한국의 음악가 정율성을 기념하는 ‘정율성로’가 있습니다. 지금도 많은 중국인들이 ‘정율성로’에 있는 그의 생가를 찾고 있습니다”라고 했다.

문 대통령의 재중 동포 간담회에는 김산·정율성의 가족을 초청하기도 했다. 이듬해인 2018년 8월 베이징 주중국한국대사관은 광복절 경축식에 김산(장지락)의 아들 고영광, 대한민국 임시정부 비서 등을 지낸 김동진의 딸 김연령 등과 함께 정율성의 딸 정샤오티(정소제)를 초청했다. 정율성을 복권시켜 독립유공자 반열에 올리고 싶은 정부의 의도를 엿볼 수 있다.

2017년 12월 13일 문재인 대통령 부부의 중국 국빈방문 첫 일정으로 베이징의 한 호텔에서 열린 재중 동포 간담회에서 참석자들이 문 대통령 부부를 환영하고 있다. 이 자리에는 정율성의 가족도 초청된 것으로 알려졌다. | 청와대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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