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서 젠더 이념 주입 막자”…캐나다 80개 도시 학부모 시위

한동훈
2023년 09월 22일 오후 8:07 업데이트: 2023년 09월 23일 오전 10:12

캐나다 전역의 수십 개 도시에서 학부모와 지지자들이 공립학교에서 동성애 및 젠더 이념을 주입하는 것에 반대하며 시위를 벌였다.

지난 20일(이하 현지시간) 토론토, 오타와, 벤쿠버, 몬트리얼, 캘거리 등 80여 개 도시에서는 각각 수백에서 수천 명의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현지 교육당국에 ‘성적 지향 및 성 정체성(SOGI)’ 교과과정 폐지를 촉구했다.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10대 학생들 젠더 이념 교육을 둘러싸고 학부모 단체 대 동성애·트랜스젠더 등(LGBT) 단체 및 일부 지역 교육당국 사이에 논쟁이 치열하다.

LGBT와 일부 교육당국은 ‘편견’, ‘혐오’를 없애려면 10대들에게 젠더 교육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동성애 성향을 지닌 아이, 성전환을 원하는 아이들이 차별받지 않도록 보호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내세운다.

반면, 학부모들은 이런 이념 주입이 자녀의 교육에 관해 결정할 부모의 권한을 침해한다는 입장이다. 차별이 일어난다면 다른 방식으로 해소할 수 있으며, 오히려 젠더 이념 주입이 아이들에게 혼란을 주고 해를 끼친다고 지적한다.

토론토 시내 퀸즈 파크에서는 주최 측 추산 약 4천 명의 학부모와 시민들이 “아이들을 그냥 놔둬라(Leave the kids alone)”, ” 아이들에 대한 성적 대상화 중단”이라는 구호를 외쳤다.

현장에서는 다양한 사람들이 목소리를 냈다. 한 학부모는 “요즘 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성전환에 친밀감을 갖게 해 돌이킬 수 없는 수술을 부추기고, 부모를 시대에 뒤처진 것으로 여기게 만든다”고 비판했다.

2023년 9월 20일(현지시간) 캐나다 수도 오타와에서 열린 공립학교 젠더 이념 교육 반대 시위. 맞은편 경찰의 저지선 너머 맞불시위대의 모습이 보인다. | 에포크타임스

“학교가 아이들을 이상하고 혼란스러운 이념으로 세뇌하고 부모를 무시하도록 가르친다. 또한 이런 사상과 행동을 교육받은 것을 부모에게 감추도록 만든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수도 오타와에서는 천여 명 이상의 사람들이 연방의회 의사당 앞에 집결한 뒤 주변 도로를 행진하면서 “침묵은 이제 그만”, “아이들을 지키자”라며 더 많은 사람들에게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날 의사당 맞은편에는 젠더 교육 지지자와 이에 동조하는 일부 학부모의 맞불 집회도 열렸다. 이들은 ‘아이들에 대한 괴롭힘 거부’, ‘트랜스젠더 인권도 인권’이라고 쓴 깃발과 현수막을 들었다.

젠더 교육 찬성 집회에는 캐나다 주요 정당 중 가장 좌익으로 분류되는 신민당의 자그밋 싱 대표와 몇몇 의원들이 참석했다. 캐나다 공공노조도 목격됐다. 앞서 며칠 전에는 학부모 집회 방해 방안을 논의하는 노조 관계자 내부회의 영상이 유출돼 논란이 일었다.

두 집회 참가자들은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며 격렬한 목소리를 냈지만, 경찰의 질서유지로 물리적 충돌은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경찰은 수백 명의 병력을 파견해 도로 가운데 장벽을 세움으로써 두 집회 참가자들의 접촉을 차단했다.

캐나다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인 몬트리올에서도 같은 날 찬반 집회가 각각 열리며 공립학교 젠더 이념 교육에 관한 사회의 격렬한 반향을 확인시켰다.

2023년 9월 20일(현지시간) 캐나다 토론토에서 학부모 권리 옹호 집회에 반대하며 아이들의 성전환권과 성전환한 아이들의 보호를 요구하는 집회가 벌어졌다. | 에포크타임스

‘성중립’ 화장실 등 젠더 이슈로 사회 분열

이번 집회는 캐나다 동부 뉴브런즈윅주의 블레인 힉스 주(州) 총리가 지난 6월 초 트랜스젠더 학생 보호 정책(713 정책) 개정안을 시행하면서 촉발됐다.

713 정책 개정안은 지역 내 모든 16세 이상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학교에서 ‘동성애자·양성애자·성전환자·성정체성 모호(퀴어)·간성(間性), 남성 여성 모두 보유·그외(LGBTQI2S+)’를 주장하는 학생들의 니즈(needs)를 지지하고 이해하는 데 필요한 교육을 실시하도록 한다.

또한 모든 학교에 1개 이상의 성중립 화장실을 설치하도록 하고, 교직원들은 학생이 선택한 이름과 성별을 존중해 그에 맞는 호칭을 부르도록 했다. 남학생이 자신의 성 정체성을 여자로 주장하거나 그 반대일 경우, 원하는 이름과 대명사에 맞춰 교사들이 호칭해야 한다는 것이다.

개정안은 또 교내에 ‘동성애자-이성애자 연합(GSA)’과 ‘퀴어-이성애자 연합(QSA)’ 설립을 허용하고, 이들이 추진하는 모든 행사와 활동을 학교 및 모든 교직원이 지원하며, 학생들이 부모 동의 없이 해당 단체에 가입할 수 있도록 했다.

이 두 단체는 16세 이하 LGBTQI2S+ 학생들에게 안정적이고 협조적인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LGBTQI2S+와 일반 학생들을 모아 ‘혐오’와 ‘차별’을 철폐한다는 취지를 내세운다.

해당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 참가자들 “아이들에 대한 외부 간섭에 지쳤다”고 말했다.

노조의 징계를 우려해 익명을 요구한 한 남성은 학교에 다니는 여러 자녀의 아버지라고 자신을 소개하면서 “아이들이 외부 간섭 없이 성장했으면 좋겠다”며 “왜 당국과 단체들이 내 아이에게 특정 성향의 이념을 갖도록 하려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2023년 9월 20일 캐나다 토론토의 퀸즈파크에서 열린 공립학교 젠더 이념 교육 반대 집회에서 한 학부모가 연설하고 있다. | 에포크타임스

또 다른 시위 참가자인 미셸 레인은 “신은 두 가지 성별을 만들었다”며 “부모에게 아이를 어떻게 양육하라고 지시하는 것은 정부의 역할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할 책임이 있다”고도 했다.

시민 소피 아참보는 “‘아이들은 아이로 남아야 한다’고 말하기 위해 시위에 참석했다”고 말했다. 그녀는 “정부는 먼저 아이들에게 서로 사랑하고 건강한 인간관계를 맺도록 해야 한다. 성 정체성에 관한 교육은 아이들이 성장한 후에 해도 늦지 않다”고 밝혔다.

시위 주최측 관계자는 혐오와 차별을 없애겠다는 젠더 이념 교육의 이면에는 어린아이들을 성적 대상화하는 움직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캐나다 노바스코샤주에 사는 스콧 스피들은 “교실에서 아이들에게 제공되는 자료들은 성적으로 매우 노골적”이라며 “교육적인 차원을 훨씬 뛰어넘는다”고 지적했다.

젠더 교육 찬성 측은 학교에서 성 정체성에 따른 차별이 가해지고 있으며, 이를 차단하려면 젠더 교육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맞불 시위에 참여한 시민 제임스 라이거는 “학교에서 동성애, 성전환 등 모든 것을 인정하도록 가르친다는 이유로 공격을 받고 있어 거리에 나왔다”고 했다.

캐나다 정치권, 치열한 대립에 조심스러운 접근

캐나다 정치권은 사회주의 성향의 신민당과 강경 보수성향의 캐나다 인민당 외에는 이번 상황에 소극적인 반응을 보인다. 찬반 논쟁이 워낙 치열해 정치적 입장 표명을 머뭇거리는 모습이다.

제1야당인 보수당은 젠더 이념 확대에 반대 입장을 내세우고 있으나 실질적인 대응은 피하고 있다.

보수당은 최근 전당대회에서 미성년자의 트랜스젠더 시술을 제안하며, 캐나다 국적 트랜스젠더의 여성 전용공간 출입을 금지하는 결의안을 채택했지만, 이 결의안은 법적 구속력은 없다.

오타와에서 열린 시위에 참가한 보수성향의 캐나다 인민당 막심 베르니에 대표는 보수당 대표들이 학부모 권리를 지키려는 집회에 참석하지 않았다고 비판하며 “인민당이야말로 자녀를 보호할 정당”이라고 주장했다.

2023년 9월 20일(현지시간) 캐나다 벤쿠버에서 공립학교 젠더 이념 교육에 반대하는 학부모 집회가 열린 가운데, 급진좌파 단체인 안티파 회원들이 맞불집회를 열었다. 양측 간 충돌을 막기 위해 안티파 회원들 앞에 저지선을 형성한 경찰의 모습이 보인다. | 에포크타임스

캐나다 집권 여당인 중도진보 성향의 자유당은 모든 종류의 혐오에 반대한다는 원론적 입장을 밝혔다.

자유당 소속의 저스틴 트뤼도 총리는 이번 시위와 관련해 소셜미디어 엑스(구 트위터)에서 “성전환자 혐오, 동성애 혐오, 양성애 혐오”는 캐나다에서 설 자리가 없다고만 말했을 뿐 구체적인 언급은 하지 않았다.

트뤼도 총리는 “우리는 이러한 혐오와 그 표현을 강력히 규탄하며, 캐나다 전역의 2SLGBTQI+ 캐나다인을 지지하기 위해 단결한다”고 말했다.

다만, 자유당 관계자들의 입장은 다양하다. 자유당 대의원으로 출마했던 제스 페디아스는 ‘아이들을 아이들답게’라고 쓴 푯말을 들고 토론토의 학부모 권리 옹호 시위에 참가했다.

그는 에포크타임스에 “우리는 아이들에게 우리의 도덕적 가치를 가르치기 위해 여기에 있다”며 “이에 간섭하는 것은 정부의 권한을 넘어서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지난 8월 캐나다의 비영리여론조사기관인 앵거스리드연구소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캐나다인의 78%는 자녀가 성 정체성이나 자신을 가리키는 대명사를 변경할 경우 부모에게 알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 이 기사는 캐나다 지사 노에 카르티에, 매뉴 호워드, 닐 샤르마, 윈링 기자가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