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보다 정치’…사회주의 정책으로 뒷걸음질 확인한 中 양회

박숙자
2024년 03월 7일 오후 2:48 업데이트: 2024년 03월 7일 오후 2:48

경제 책임자 리창 총리 “당 중앙의 집행자 될 것”
언론에선 “공산당의 영도가 경제 발전의 잠재력”

중국 양회의 후유증이 상당하다. 관심을 모았던 대규모 경기부양책이 발표되지 않은 탓이다. 6일 중국 증시는 양회에서 발표한 부양책에 대한 실망감에 하락세로 마감했다.

양회를 앞두고 4거래일 상승했던 상하이종합지수는 이날 0.25% 소폭 하락하며 3040.09로 장을 마감했고, 선전성분지수와 창업판지수도 각각 0,22%, 0.06% 떨어졌다.

잘나가던 중국 경제가 가라앉는 상황에서도 시진핑 지도부가 파괴력 있는 부양책을 내놓지 않는 모습은 언뜻 이해하기 어렵다. 이는 현재 중국 사회는 정치가 모든 것을 압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중국 공산당에 비판적인 학자들은 분석했다.

지난 5일 중국 행정부 격인 국무원의 수장이자 중국 공산당 내 2인자인 리창 총리가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총리 업무보고를 했다. 올해 경제 정책을 발표하는 총리 업무보고는 이번 양회의 하이라이트였다.

그런데 리창 총리는 이날 업무보고에 앞서 “시진핑 동지와 당 중앙(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의 지도를 따를 것”을 강조하며 국무원 운영의 우선순위를 분명히 하는 모습을 보였다.

리창 총리, 사실상 당정분리 종료 선언했나

신화통신에 따르면, 리 총리는 업무보고 서두에 “시진핑 동지를 핵심으로 하는 당 중앙의 권위 있고 집중된 통일 영도를 견지하면서 당 중앙의 결정과 안배를 잘 관철하는 집행자 겸 행동자, 충실한 실천가가 되겠다”고 말했다. 사실상 당정 분리를 종료하겠다는 선언으로 풀이된다.

중국 평론가 양웨이(楊威)는 이를 두고 “앞으로 국무원의 기능이 약화되고 당 지도부가 국무원 운영을 완전히 통제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국가발전개혁위원회, 재정부 등 일부 정부 부처는 이미 국무원이 아니라 시진핑과 당 지도부의 직접 지시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이 공산당 1당 독재 국가이지만 원칙적으로는 당정 분리를 내세워왔다. 당정 분리는 중국의 개혁개방과도 관련된다. 덩샤오핑은 개혁개방을 실시하면서 마오쩌둥 시절 1인 독재의 폐해를 극복하는 정치 개혁의 주요 방향으로 당정 분리를 제시했다.

덩샤오핑의 뒤를 이어 총서기가 된 자오쯔양은 1989년 톈안먼 광장 학살 사건 2년 전인 1987년 공산당 13차 당대회에서 당정 분리 방침을 확립했다. 그 핵심은 공산당의 영도는 중대한 원칙이나 방향, 국가기관 간부 추천 등에만 한정한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2013년 집권 이후 시진핑은 끊임없이 당정 분리를 축소하는 권력 확대 정책을 추진해왔다. 이번 리창 총리의 업무보고는 그 결실의 집대성으로 평가된다. 즉, 중국 개혁개방 이전을 향해 급속도로 뒷걸음질 치고 있다는 것이다.

관영매체인 신화통신이 리창 총리의 업무보고에 할애한 기사의 분량만 봐도, 비중이 공기 중으로 증발한 리창 총리와 국무원의 급락한 위상이 단적으로 드러난다.

신화통신 기사에 나타난 총리의 위상 추락

리창 총리의 업무보고를 전한 신화통신 기사의 분량은 359자에 그쳤고, 경제·사회 분야 정책은 163자로 요약했다. 올해 국무원의 중점 과제와 구체적인 조치는 아예 실종됐다.

이는 리커창 전 총리의 지난해 양회 업무보고를 전한 신화통신 기사와 비교하면 그 변화가 뚜렷하다. 당시 국무원의 중점 과제를 전하는 데에만 1347자를 할애하며 소비 회복 및 확대, 제조업 분야 현안 해결을 위한 조치를 상세하게 보도했었다.

정책, 특히 경제 정책에 있어 전문가 관료집단인 국무원 대신 공산당·이념이 앞설 경우 발생할 가장 큰 문제점으로는 경제 침체가 지적된다.

현지 매체 경제일보는 양회가 개막한 4일 ‘중국 경제 발전의 장점과 잠재력을 분명히 인식한다’라는 제목의 논평에서 “중국공산당이 영도하는 사회주의 체제는 중국 경제 시스템의 가장 큰 특징이자 중국 경제 발전의 최대 장점”이라고 밝혔다.

이 논평은 신화통신을 비롯해 중국 다수 매체에 인용됐다. 경제 침체로 여론이 악화된 가운데, 경기 부양책 발표 여부에 관심이 집중된 양회에 맞춰 ‘공산당의 영도’, ‘사회주의 체제’를 강조한 이 평론을 두고 해외 평론가들은 일종의 여론 공작이라는 견해를 내놨다.

리창 중국 국무원 총리가 5일 중국공산당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회의에서 업무 보고를 하기 전 허리 굽혀 인사하고 있다. | Pedro Pardo/AFP via Getty Images/연합

서구 학자들 사이에서는 오히려 공산당의 개입이 중국 경제 침체의 근본 원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독일 도이체벨레(DW) 중국어판은 지난달 28일 ‘당이 모든 것을 개입하면서 경제를 죽였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최근 중국 상황을 평가했다.

신문은 비트 호츠하트 전 취리히대 거시경제학 교수의 논평과 스티븐 로치 예일대 경제학 교수의 논평(‘경제적으로 막다른 골목에 들어선 중국’)을 인용해, 중국공산당이 이념을 앞세워 경제에 개입하면서 모든 것을 망쳐놨다고 했다.

“이념 위해 경제 희생…당분간 회복 어려울 듯”

워싱턴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의 아담 포센 소장은 중국 경제의 핵심 문제를 “정부의 지속적인 민간 경제 규제, 정치에 대한 사람들의 전반적인 불신”으로 진단했다. 가계와 기업이 위기감을 느껴 소비와 투자를 줄이고 있다는 것이다.

포센 소장은 “현재 중국 공산당은 어느 정도 경제 성장을 희생하더라도 정치적 안정을 해치지 않으려 한다”며 “국제사회는 중기적으로 중국 경제 성장률의 현저한 둔화에 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대만 국립정치대학 국제연구센터의 쑹궈청 연구원도 같은 처방을 내렸다. 그는 에포크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이) 엉뚱한 걸 문제 해결책으로 삼고 있다”며 “공산당의 이념 우선 정책이 중국 경제가 어려워진 근본적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쑹 연구원은 지난 1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분석한 중국 경제의 8가지 증세인 ‘부동산 경기 침체, 소비자의 신뢰 추락, 경기 침체 속 물가 하락, 감당할 수 없는 부채, 노동인구 감소, 외국자본 이탈, 높아지는 무역장벽 등을 나열하며 “모두 공산당 체제와 독재자의 정책적 오판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 침체의 원인이 공산당 체제 자체에 있는데 원인을 다른 곳에서 찾다 보니 실효성 있는 해결책을 마련할 수 없다는 것이 쑹 연구원의 설명이다.

미국의 경제학자 데이비드 황은 중국 공산당이 외교적 긴장을 자초해 수출에 타격을 입게 됐고, 동시에 베트남과 태국 등 경쟁 국가들이 치솟고 올라와 더욱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됐다고 했다.

황은 에포크타임스에 “중국은 미·중 무역전쟁 이후 유럽·일본과도 관계가 경색됐고, 이는 수출주도형 경제구조에 엄청난 압박이 됐다”며 “그사이 동남아 14개국과 멕시코에 의해 중국 산업들이 잠식당했다”고 분석했다.

이어 “중국 정부가 인프라 건설과 투자로 경제를 부양할 수 있을 것으로 여긴다. 중국의 경제모델에 따르면 3대 성장엔진(투자·소비·수출)이 있지만, 실제 중국의 성장엔진은 수출 하나뿐”이라며 “중국의 투자·소비 모두 수출에 의존한다”고 덧붙였다.

* 이 기사는 장훙, 이루 기자가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