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CCTV, 톈안먼 사건 연상 중국 선수들 사진 올렸다가 삭제

강우찬
2023년 10월 4일 오후 5:55 업데이트: 2023년 10월 4일 오후 5:55

지난 1일 아시안 게임 육상 여자 100m 허들 결승
4, 6번 번호 단 중국 선수들 나란히 1, 2위 후 포옹

제19회 항저우 아시안게임이 막바지에 접어든 가운데, 중국 관영 CCTV 공식 웨이보에 올라온 ‘민감한 사진’이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해당 사진은 지난 1일 육상 여자 100m 허들 결승전이 끝난 후 중국 대표 우옌니(吳艶妮)와 린위웨이(林雨薇) 선수가 중국 국기를 들고 서로를 격려하며 포옹하는 장면이다.

경기 결과 자체는 우승후보였던 우옌니 선수가 부정출발로 실격 처리됐지만, 경기 직후에는 실격 발표가 이뤄지지 않았고 그때까지만 해도 각각 1, 2위로 결승선을 통과했다고 생각한 두 선수는 서로 감싸안으며 ‘아름다운 장면’을 연출했다.

하지만 사진이 공개된 후 불똥은 엉뚱한 곳에서 튀었다. 각각 4번과 6번 번호표를 허리에 붙이고 뛴 두 선수가 포옹하는 장면을 옆에서 찍은 사진이 공교롭게도 ‘6, 4’라는 형태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4번이 우옌니의 번호였다.

중국에서 ’64’는 누구나 1989년 6월 4일 톈안먼 사태를 떠올리게 하는 숫자다.

이날 톈안먼 광장을 중심으로 베이징 시내에서는 민주화를 요구하는 대학생과 시민들을 향해 인민해방군이 실탄을 발사했다. 새벽에 곤히 잠든 학생들 위로 탱크가 밟고 지나가는 참혹한 유혈 진압이 벌어졌다.

이후 6월 4일은 중국에서 ‘가장 민감한 날’이 됐다. 톈안먼, 탱크맨 등 당시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단어와 사건 발생일을 연상시키는 ’64’, ’89’ 같은 숫자도 철저히 금기시됐다. 이는 3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파룬궁, 티베트 독립, 위구르 탄압 등과 함께 공산당의 최대 금기어다.

문자나 숫자뿐만 아니라 인공지능(AI)을 이용한 사진인식 기능이 발달한 요즘에는 이를 연상시키는 사진이나 이미지도 잡아낸다.

그런데 공산당 관영 방송인 CCTV가 모두의 시선이 쏠리는 자국팀의 아시안게임 금메달 소식을 전하며, ’64’가 선명하게 눈에 띄는 사진을 공식 웨이보 계정에 올린 것이다.

중국 공산당 관영 CCTV 공식 웨이보. ‘6, 4’라는 숫자가 부각된 우옌니와 린위웨이의 포옹사진(빨간 동그라미)을 삭제했다. 왼쪽은 삭제 전, 오른쪽은 삭제 후다. | 웨이보 화면 캡처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CCTV 측은 서둘러 이 ‘민감한 사진’을 삭제하고 다른 사진으로 대체했지만, 해외 소셜미디어에서는 이를 놓치지 않고 포착한 사진들이 떠돌고 있다.

트위터 등 해외 소셜미디어에서는 중국 공산당 당국의 검열을 조롱하는 댓글이 쏟아지고 있다. 한 트위터 이용자는 “그렇게 겁을 먹으니 오히려 눈에 띄고 비웃음을 당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부정출발한 중국 선수 대신 인도 선수 실격처리 논란도

한편, 이날 여자 100m 허들 결승전에서 중국 대표 우옌니 선수는 부정출발을 한 후 실격 처리됐으나 심판진은 화면 판독 후 오히려 옆 레인에 있던 인도 선수를 실격 처리해 논란이 됐다.

당시 우옌니 선수의 부정출발은 스스로도 퇴장을 직감한 듯 검연쩍은 표정으로 관중들에게 인사를 건낼 만큼 명확했다. 하지만, 심판은 인도대표 죠티 야라지 선수에게 퇴장을 지시했다. 육상 부정출발은 경고 없이 바로 퇴장이다.

이에 인도 선수는 억울하다는 듯 항의했고, 경기가 한참 지연된 끝에 ‘항의하에 달리기(Running under protest)’라는 규정을 적용해 중국 우옌니 선수와 인도 선수를 모두 달릴 수 있도록 했다. 죠티 선수는 우옌니의 부정출발에 영향을 받아 저도 모르게 튀어나간 것으로 정상 참작이 됐다는 게 일부 스포츠매체의 설명이다.

제19회 아시안 게임이 진행 중인 가운데 지난 1일 치러진 육상 여자 100m 허들 결승에서 부정출발한 중국대표 우옌니 선수. 이후 심판은 우 선수 왼쪽의 인도 죠티 야라지 선수(번호표 5번)를 실격처리해 논란을 일으켰다. | 방송화면 캡처

결국 중국티 우옌니와 린위웨이가 각각 1·2위를 차지하고 인도 선수가 세 번째로 결승선을 지났으나, 경기 후 논의를 통해 우옌니 선수만 실격 처리되면서 린위웨이가 금메달, 인도 선수가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를 두고 우옌니가 부정출발로 실격할 상황에 놓이자, 유력 후보였던 인도 선수를 같이 실격으로 처리해 또 다른 자국 선수에게 금메달을 안기려던 중국 측의 농간이 아니었냐는 비난이 쏟아졌다.

인도 선수가 예상 밖으로 강력하게 항의하자 결국 둘다 뛰게 하는 식으로 무마한 후, 자국 선수 2명이 1, 2위를 차지해 금메달을 확보할 수 있게 되자 실격이 확실한 우옌니를 실격처리했다는 것이다.

한국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해당 장면을 본 시청자들이 이러한 중국 당국을 향해 “(부정적 의미로) 역대급 심판 판정”, “역겹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