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대만 선거 개입 은밀하게 추진해야” 왕후닝 정협 주석 주재 회의서 주장

최창근
2023년 12월 13일 오후 4:32 업데이트: 2024년 01월 5일 오후 11:23

중국 당국이 내년 1월 13일 예정된 대만 총통‧입법원 동시 선거에 개입한 사실을 은폐하도록 관련 부처에 지시했다고 12월 13일, 일본 산케이신문(産經新聞), 영국 로이터통신, 미국의소리(VOA) 등 외신들이 보도했다.

산케이신문은 대만 정부 관계자를 인용하여 “대만 관련 당(黨)‧정(政) 업무를 총괄하는 왕후닝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 겸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주석이 12월 초 중국 공산당 중앙선전부(당), 국무원 대만사무판공실(정) 책임자가 참석한 가운데 대만 선거 관련 회의를 개최했다.”고 보도했다.

중국 공산당 서열 4위 왕후닝이 주최한 당‧정 회의에서는 “중국이 대만 총통 선거에 개입한다는 국제 사회의 비판을 회피하기 위해 선거 개입 사실을 은폐하고 개입 방식을 전면적이고 대규모 방식에서 소규모 분산식 개입으로 변경하라.”는 지시가 있었다고 신문은 전했다.

VOA도 이와 관련해 “이번 회의는 중국공산당 중앙선전부, 인민해방군 산하 심리전부대가 대만 여론에 영향을 미치는 캠페인을 주도하는 등 다수 당정 기관에 다양한 임무를 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영국 로이터통신도 “중국 인민해방군이 선거 결과에 영향을 주기 위해 선거 전 대만에 대한 위협 활동을 늘릴 것이다.”라고 보도했다. 통신은 대만 정부 국가안보 관계자, 대만 주재 외교관의 발언을 인용하여 이같이 전했다.

로이터통신 보도에 의하면 익명의 대만 국가안보 부문 관리는 내부 보고서를 인용해 “중국 인민해방군이 올해 11월 대만 영해와 인접 지역 근처에서 최소 4차례의 해군 및 공군 합동 훈련을 실시했다.”고 밝혔다. 보고서에는 인민해방군의 행동이 ‘다방면 임무의 일부’라고 명시되어 있다. 이어 우선 과제에는 대만 정치인과 소통, 대만 사회를 상대로 한 가짜뉴스 전쟁 개시 등이 포함됐다.

익명의 대만 국가안보 관계자는 로이터통신 인터뷰에서 “인민해방군이 대만 영해 인근에서 실시한 훈련은 대만 침공 계획을 시뮬레이션하고 대만의 군사적 대응을 시험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로리 대니얼스(Rorry Daniels) 아시아소사이어티 정책국장은 “이번 회의가 대만 유권자들의 선택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중국 공산당 내부 활동을 조직화하기 위한 것이다.”라고 분석했다. 그는 “중국 공산당 내부의 대만 관련 기관 업무를 조정하고 대만 유권자들에게 영향을 미치기 위해 각기 업무를 수행하기를 요구했다.”고도 했다. 영향력 행사 주요 방법으로는 유튜브, 틱톡 등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한 허위정보 유포, 대만 사회 분열 조장, 친중 내러티브 확산 등이 있다.

대만 문제 전문가 카리스 템플먼(Kharis Templeman) 미국 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 연구원은 “중국이 어떤 조치를 취하더라도 선거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다.”라고 전망했다. 그는 “중국 공산당의 노력이 근본적으로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VOA에 말했다.

대만 안보 당국은 “중국이 분산식 개입으로 전환했지만 중국의 선거 개입 공작 강도는 강해질 것으로 분석하고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대만 측 분석에 의하면 ‘중국의 분산식 개입’에서는 중국 인민해방군 전략지원부대가 핵심 역할을 수행한다. 이 부대는 친중 성향 대만 미디어,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정보 조작을 실시하는 것이 주요한 수단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인지(認知)전‧여론전 등을 전개하여 여론조작을 꾀한다는 의미이다. 이는 로리 대니얼스 후버연구소 연구원의 분석과 일치한다.

대만 유권자 회유 전략도 제시됐다. 대표적으로 중국 측이 경비 전액 혹은 일부를 보조하는 ‘저가 방중 관광 프로그램 제공’, 대상(臺商)으로 통칭하는 중국 투자 대만 기업가를 통한 ‘투표 독려를 위한 항공권 구매 보조’ 등이 꼽힌다. 실제 대만 기초지방단체장, 촌‧리장 등에게 중국 측이 5박 6일 또는 7박 8일 중국 관광을 주선하면서 1만~1만 5000 신대만달러(약 41만 7000∼62만 5000원)의 비용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왕복 항공료와 숙박비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가격으로, 나머지 식사·관광 비용은 대부분 중국 측이 부담한다. 아울러 이들 관광 프로그램에는 중국 공산당 정부 선전 프로그램이 포함됐다.

한 달 앞으로 다가온 대만 대선‧총선은 미중 대리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2016년 차이잉원 현 총통이 당선되어 집권한 민진당 정부는 ‘반중’ 색채가 뚜렷하고 정권 탈환을 노리는 국민당은 친중 성향이다. 이 속에서 대만의 독립 행보에 ‘전쟁 불사’를 외치며 반발해 온 중국은 국민당 허우유이 후보 집권을 희망하며 선거 개입을 강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대만 메이리다오전자보가 12월 13일 발표한 최신 지지율 조사에 따르면 민진당 라이칭더 후보 34.7%, 국민당 허우유이 후보 31.2%를 기록하여 오차 범위 내 접전 양상이다. 중도 성향 커원저 민중당 후보는 16.8%를 기록했다. 같은 날 동시에 치러지는 입법원(국회) 선거 예측도 국민당+민중당 야 2당 지지율 합이 민진당을 상회하여 민진당이 총선 3연임에 성공해도 여소야대 정국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