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대만 독립은 전쟁의 길” 노골적 대선 간섭…臺 야권 연정 가능성 열어둬

집권 민진당은 인지전 전문가 비례대표 입법위원 당선권에 공천

최창근
2023년 11월 30일 오후 7:55 업데이트: 2023년 12월 16일 오후 9:55

대만 정치권, 안보기관, 국내외 전문가들의 경고대로 중국이 내년 1월 대만 대선에 노골적으로 개입하고 있다. ‘초한전(超限戰‧무제한 전쟁)’의 일종인 정치전‧인지전이 주요 수단이다. 집권 민진당도 중국의 정치전‧인지전에 전면 대응하고 있다. 총통 선거와 같은 날 치러지는 입법원 선거 민진당 비례대표 입법위원 2번으로 대만 사설 예비군 훈련기관인 헤이슝(黑熊·흑곰)학원 공동설립자인 선보양(沈伯洋) 국립타이베이대 교수를 지명했다. 라이칭더 민진당 주석은 선보양 지명 이유로 “중국의 인지전, 가짜뉴스 대응 전문가이다.”라고 밝혔다.

제1야당 국민당, 제2야당 민중당 단일화 실패로 여당 민진당 라이칭더 후보의 우세가 점쳐지는 가운데, 중국 측은 집권 민진당을 겨냥해 ‘전쟁’까지 거론하며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핵심 내러티브는 “민진당을 선택하면 전쟁의 길에 이르게 되고 이를 피하려면 야권 후보에 투표해야 한다.”는 것이다.

천빈화(陳斌華) 중국 국무원 대만사무판공실(중국의 대대만 전담부처) 대변인은 11월 29일 정례 브리핑에서 “우리는 1992 컨센서스(九二共識)를 견지하고 대만 독립에 반대하는 정치적 입장 속에서 국민당 등 대만 제(諸) 정당·단체·각계 인사와 더불어 상호 신뢰를 공고화‧증진하며, 교류·협력을 강화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1992 컨센서스는 국민당 리덩후이 총통 재임기인 1992년 중국 해협양안관계협회와 대만 해협교류기금회가 협상을 통해 도출한 중국 공산당과 대만 국민당의 양안 관계 원칙이다. 핵심 내용은 “하나의 중국 원칙을 견지하되(一個中國), 표현은 양안 각자의 편의대로 한다(各自表述)”는 것이다. 즉 중국은 하나임에 합의하고 대표성에 있어서 중국 본토에서는 중화인민공화국이, 대만에서는 중화민국이 가진다는 구두(口頭) 합의이다. 뿌리와 정체성을 중국 본토에 둔 국민당은 이를 존중하는 입장이지만 중국이 아닌 대만 정체성을 가진 민진당은 1992 컨센서스 수용을 거부하는 입장이다. 2016년 현 차이잉원 총통 취임 후부터 현재까지 중국은 대만 측에 1992 컨센서스에 대한 입장을 밝힐 것을 시종일관 요구하고 있으나 차이잉원 총통은 거부하고 있다.

천빈화 대변인은 “양안관계가 평화·발전이라는 올바른 궤도로 복귀하도록 힘쓰고 대만해협에서 평화와 안정을 지키며 양안 동포를 행복하게 하길 원한다.”고도 했다.

해당 발언은 현재 라이칭더 민진당 후보를 추격 중인 허우유이 국민당 후보, 커원저 민중당 후보의 양안관계 발언 관련 논평 과정에서 나왔다. 앞서 허우유이 후보는 대만 재계 인사 간담회에서 “당선되면 즉시 대등·존엄·우의 전제 아래 중국 본토와 전면적인 대화·교류를 재개하고 양안 상호 신뢰를 회복하겠다.”고 밝혔다. 국민당과의 후보 단일화 실패 후 독자 출마한 커원저 민중당 후보도 “양안 개방은 단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며 중국과 교류 재개 필요성을 언급했다.

천빈화는 대만 여야에 대한 극명한 시각차도 드러냈다. 국민·민중당 양당의 후보 단일화 결렬 관련 질문에는 “오늘날 대만은 평화와 전쟁, 번영과 쇠퇴라는 두 갈래 길에 직면하고 있다.”고 전제한 후 “수많은 대만 동포가 손익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시시비비를 분명히 분별해 ‘대만 독립’ 분열과 외세의 간섭을 단호히 반대하기를 희망한다.”며 단일화에는 실패했지만 연대 가능성은 존재하는 국민당과 민중당에 힘을 실었다.

반면 독립 성향의 집권 민진당에는 독설을 쏟아부었다. 라이칭더 후보가 샤오메이친 전 주미국타이베이경제문화대표부 대표를 부총통 후보로 지명한 것과 관련하여 “많은 네티즌이 ‘쌍독조합'(雙獨組合·독립 성향 정·부총통 후보 조합)’은 곧 ‘쌍독(雙毒組合‧ 홀로 獨 자와 발음이 유사한 독극물 毒 자를 쓴 표현) 조합’이라고 혹평하고 있다.”며 “대만 독립은 전쟁을 의미하고 민진당이 위험한 독립·독립 조합을 내놓은 것은 대만섬 내 동포의 이익에 해롭기만 할 뿐이다.”라고 비판했다.

라이칭더 총통 후보는 이른바 화독(華獨‧중화민국 독립, 대만의 중화민국은 실질적이 독립 상태이며 현상을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파로 분류되는 차이잉원 현 총통에 비해 대만 독립 문제에 급진적인 대독(臺獨‧대만 독립, 중화민국이 아닌 대만 명의로 실질적인 독립을 쟁취해야 한다는 입장)파로 분류된다. 샤오메이친 부총통 후보도 유사한 성향이다. 주미국 대표 재임 시절인 지난 4월, 중국 정부는 샤오메이친을 ‘대만 독립분자’로 지칭하며 중국(홍콩‧마카오 포함) 입국금지, 중국 내 자산 동결 등 제재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천빈화는 라이칭더가 “민진당에 투표하면 양안 간 평화가 없고 모든 청년이 전쟁터로 나가야 한다.”는 허우유이 후보의 발언에 대하여 “중국의 인지전이다.”라고 반박한 것에 대해서 “민진당이야말로 인지전 상습범이다.”라며 전면 반박하기도 했다. 그는 “선거 때마다 민진당 당국은 그럴듯하게 대륙을 비방하는 데 전력하고 있다. 자신들의 정치적 무능을 감춘 채 민중의 비판을 중국으로 돌린다.”고 비판했다.

중국이 노골적인 대만 대선 개입에 나선 가운데 후보 등록 전 단일화에 실패한 야권 연대 가능성은 다시금 제기되고 있다. 11월 29일 대만 일간지 ‘중국시보’는 자오사오캉 국민당 부총통 후보가 “(집권 시) 민중당 인사를 내각에 합류시킬 수 있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11월 28일, 자오사오캉은 “젊은 유권자들이 민진당의 재집권을 저지하려면 국민당을 지지해야 한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국민당이 중도 노선의 민중당과 총통·부총통 단일화에 실패했지만 선거 승리 후 연정(聯政) 가능성을 공개 천명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자오사오캉은 “국민‧민중당은 여전히 ‘화합’할 수 있다.”며 내각제 방식의 공동정부 운영 가능성도 시사했다. 그는 커원저 민중당 총통 후보가 직전 총통선거 때 내각제 옹호 발언을 한 걸 상기시킨 뒤 “아시아의 일본과 싱가포르는 물론 유럽의 여러 나라가 성공적으로 내각제를 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양당(국민당‧민중당)이 합의한다면 대만도 내각제를 못 할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를 두고 한 국내 대만 정치 전문가는 “국민당 지지세가 결집되어 라이칭더 민진당 후보와의 지지율 격차가 줄어들고 커원저 민중당 후보와의 격차는 벌어질 경우 투표일 전 ‘후보 사퇴’ 방식으로 단일화를 이룰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분석을 내놨다.

현행 중화민국(대만) 헌정체제도 야권 단일화 가능성을 높인다. 대만 헌정체제는 총통‧부총통하 행정‧입법‧사법‧고시‧감찰의 5권 분립제이다. 종전 3권 분립에 고시(공무원 선발)권과 감찰(공무원 비위 감찰)권을 독립 헌법 기관으로 추가한 형태이다. 4년 중임(重任)제 총통은 행정원장(국무총리 해당)을 입법원(국회) 동의 절차 없이 임명할 수 있다. 총통-행정원장 권력 분립에 있어서는 대만식 이원집정부제인 쌍수장제(雙首長制‧hybrid system)를 채택하고 있다. 다른 용어로 반총통제(半總統制‧semi-presidentialism)라고 불리는 헌정 구조로서 행정원장의 정치적 지위는 내각제 국가의 총리(정부수반)나 대통령제 국가의 총리와 중간에 자리하는 독특한 구조이다. 운용 방식에 따라 대통령 중심제에 가까워질 수도 내각제에 가까워질 수도 있다. 만약 내년 1월 선거에서 국민‧민중 양당이 연정으로 집권할 경우 별도 개헌 절차 없이도 내각제에 가까운 국정 운영이 가능한 구조이다. 국민당이 집권하여 민중당과 연정할 경우 커원저 민중당 후보가 행정원장을 맡아 양안‧국방‧외교 등 ‘총통 고유권한’으로 명시된 업무 영역 외 실질적인 행정수반으로 통치권을 분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