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농민공’ 관련 보도 연이어 삭제…당국 금기 건드렸나

샤오뤼성(蕭律生)
2024년 01월 13일 오후 7:47 업데이트: 2024년 01월 13일 오후 7:47

중국에서 농민공(農民工) 관련 동영상과 기사가 인터넷에 올랐으나, 곧바로 삭제되는 일이 잇달았다.

네티즌들은 이를 두고 “이 신문사들이 죽으려고 작정했나”라는 반응을 보였다. 당국이 어떻게 나올지 뻔히 알면서 무모한 짓을 했다는 것이다.

중국 인터넷 업체 넷이즈(網易)가 지난 9일, 동영상 사이트 비리비리(Bilibili)에 ‘30년 동안 이렇게 일했다’라는 동영상을 올렸다. 하지만 이 영상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삭제됐다.

이어 10일에는 경제매체 제일재경이 ‘이른 새벽 길가에서 일을 기다리는 농민공’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발표했으나, 이 역시 곧바로 삭제됐다. 이 기사는 허난성 정저우에서 가장 큰 일용직 노동력 시장인 ‘류완(劉灣)노동력시장’ 상황을 다뤘다.

농민공은 중국에서 원래 살던 농촌을 떠나 도시에서 노동자로 일하는 사람을 이르는 말이며, 농민공 또는 이주노동자라고도 한다.

기사에 따르면 새벽 4~5시경 정저우시 류완노동력시장은 이미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고, 이들 중 상당수는 헬멧을 쓰고 있었다.

장(張)모씨는 몇몇 고향 사람들과 함께 1인당 월세 100위안 남짓 내는 셋방에 기거하면서 일을 기다린다. 장씨는 새벽 4시가 좀 넘어 노동력시장에 나와 찬바람 속에서 오후 6시까지 기다렸지만 품을 팔지 못했다.

장씨는 “내가 가진 돈은 87.12위안(약 1만6000원)이 전부다”며 다음 날까지 일을 찾지 못하면 끼니조차 해결하기 어려워진다고 했다.

사실 이날 일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장씨는 건축 현장으로 가는 차에 올랐다가 내렸다. 33층 건물의 외벽 단열재 작업을 하는 일이었는데, 추운 날씨에 크레인 바구니에 서서 일하다가 자칫 추락하는 불상사라도 생기면 가족을 돌볼 사람이 없다는 생각에 포기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가 내린 미니버스는 곧바로 다른 농민공으로 인원을 채워 떠났다.

그에 따르면, 지난해 많은 건설사가 공사를 중단해 일자리가 없는데도 여전히 매일 5000~6000명이 일을 찾으러 온다고 했다.

왜 공사 현장에 가서 장기간 할 수 있는 일을 찾지 않느냐고 묻자 그는 임금 체불이 걱정된다고 했다. 장씨는 1년 전 한 공사 현장 청부업자를 믿고 반년 가까이 일했지만 2만 위안이 넘는 임금을 지금까지 받지 못했다고 했다.

기사에 따르면 류완노동력시장을 통해 일을 소개받는 농민공들 가운데 임금 체불을 경험한 이들이 적지 않다.

장씨에 따르면 그는 지난해 상반기에 저축한 3만 위안으로 설 명절 때 귀향해 작은 사업을 해볼 계획이었지만, 아버지가 지난해 8월 뇌경색으로 쓰러져 모은 돈을 몽땅 병원비로 써버렸다. 장씨는 정저우에서 20여 년 동안 모은 돈을 결혼예물·집·자동차를 마련하고 두 자녀 학비 대느라 다 썼다고 했다.

허난성 상추(商丘)에서 온 농민공 자오(趙)모씨는 하루 방세 10위안을 내고 일주일 넘게 차가운 쪽방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아직 일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그는 근처 택배 분류장에서 야간 근무를 할 계획이다. 하룻밤 열심히 하면 130위안을 벌 수 있다고 했다.

리(李)모씨는 “하루에 130위안이라니, 기가 막혀 헛웃음이 나온다”며 예전 같았으면 거들떠보지도 않았겠지만 지금은 그런 일거리도 찾기 어렵다고 했다.

장씨는 예년에는 철근공, 용접공, 목공 같은 기술공은 일당이 350위안이었는데, 지금은 180위안으로 떨어졌다고 했다.

밤이 깊어지자 새벽에 일하러 나간 농민공들이 하나둘 돌아왔고, 일을 찾지 못한 농민공들은 행여나 야간 일을 찾을 수 있을까 해서 자리를 뜨지 못했다.

장씨는 예년 같았으면 날씨가 이렇게 추우면 일찌감치 설 쇠러 고향으로 갔겠지만, 지금은 너나없이 손에 쥔 돈이 없어 가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지난 9일 넷이즈가 빌리빌리에 올린 ‘30년 동안 이렇게 일했다’는 제목의 영상에는 주로 안후이성 허페이시 농민공들이 생계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담겼다. 하지만 해당 영상은 빠르게 차단됐고, 넷이즈의 빌리빌리 계정도 팔로우할 수 없게 됐다.

네티즌들은 “이 매체들이 충타(沖塔·죽음을 자초함)했다”는 표현으로 당국의 언론 통제를 우회적으로 비난했다.

제일재경이 ‘충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앞서 제일재경은 ‘산에 오르는 것은 쉽지만 내려가기는 어렵다? 수요 측면에서 본 경제’라는 논평을 내보낸 바 있다. 물론 곧바로 삭제됐다.

네티즌들은 “2024년은 ‘충타’가 일상화될 것이다”, “언젠가 빛이 거짓을 찢어버릴 것이다”라는 반응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