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공산당 ‘3중전회’ 이례적 연기…시진핑 권력이상설 재점화

강우찬
2024년 02월 27일 오후 3:59 업데이트: 2024년 02월 27일 오후 4:05

“경제 실패 책임 추궁하는 자리 될까봐 우려”

중국 공산당의 주요 정치행사인 중앙위원회 제3차 전체회의(3중전회)가 이례적으로 연기되면서 의혹이 커지고 있다.

중국 정치 전문가들은 3중 전회가 자칫 그간의 정책 실패로 누적된 불만이 폭발 직전인 상태와 맞물려 ‘시진핑 성토의 장’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시진핑이 주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현재 중국의 정치 분야에서 가장 큰 이슈는 3중 전회의 실종이다.

3중 전회는 새 지도부의 경제 청사진을 제시하는 회의다. 관례에 따른다면 시진핑 3기가 출범한 지난해 10~11월에 열렸어야 할 이 회의가 석 달이 넘도록 열리지 않고 있다. 다만, 올해 3월 예정된 양회(전인대+정협) 전까지는 어떻게든 개최될 것이라는 게 홍콩 언론들의 예상이다.

분석의 초점은 국제사회의 의심스러운 눈초리에도 시진핑이 양회를 늦출 수밖에 없는 속사정이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지난 22일 자 기사에서 “시진핑 주석이 자신의 약점이 노출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으며, 자신의 강점을 보여줄 수 있다고 확신할 때만 전체회의를 개최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즉 약점이 노출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안보에 대한 보장’이 없어 개최를 못 하고 있다는 것이다.

안보에 대한 보장이 없는 것은 지난 수개월간 이어진 군부 숙청과 관련이 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지난 9일, 전날 공산당 중앙위원회와 국무원이 베이징에서 개최한 2024년 신년 단배회 소식을 전했다. 단배회는 공산당 전현직 고위층이 모여 신년(설날)을 축하하는 행사다.

그런데 기사를 보면, 이 자리에 국무위원이자 국방부장(장관)을 지낸 웨이펑허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웨이펑허는 앞서 7일 신화통신에 발표된 ‘원로 동지(老同志)’ 명단에서도 빠졌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시진핑 등 당 지도부가 설날을 맞아 직접 방문하거나 사람을 보내 문안 인사를 전하는 원로 동지 명단에 전임 국방부장들은 모두 포함됐으나 웨이펑허만 들어있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홍콩 언론들은 웨이펑허가 무기 조달과 관련한 부패 혐의로 낙마한 것으로 보고 있다. 후임 국방부장인 리상푸와 마찬가지로 시진핑의 반부패 운동의 대상에 올라 조사를 받고 있다고 추측했다.

시진핑은 집권 3기가 시작되고 채 1년도 되지 않아 리상푸 국방장관, 친강 외교부장, 리위차오 로켓군 사령관, 쉬중보 로켓군 정치위원 등을 해임했다. 전원 자신이 직접 발탁한 인물들이었다. 또한 12명 이상의 군 장성들과 최고 과학자들을 퇴임시켜야 했다. 모두 시진핑에게 정치적 부담이다.

절차에 따른다면 리상푸, 친강, 리위차오, 쉬중보의 해임은 모두 3중전회 승인을 거쳐야 한다. 이들의 잘못과 책임을 거론하는 과정에서 이들을 임명한 시진핑에게까지  책임론 논의가 번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장펑(江楓)’이라는 필명을 사용하는 상하이의 한 정치학자는 최근 미국의소리(VOA) 중문판과의 인터뷰에서 3중전회가 아직까지 열리지 않는 상황에 관해 “명백한 정치적 실패의 신호”라고 말했다.

그는 전례 없는 안팎의 어려움, 국제 사회와의 탈동조화, 그것을 되돌릴 수 없는 여건, 국내 경제의 대대적인 침체, 대중의 신뢰 상실 등 “중국 공산당 지도부는 1962년의 ‘7천인 대회’가 반복되는 것을 막기 위해 애쓰고 있다”고 평가했다. 7천인 대회는 대약진 운동 등 정책 실패를 수습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였으나, 마오쩌둥을 비롯한 고위층에 관한 비판의 장이 되어버린 사건이다. 이 대회로 마오쩌둥은 실권했다.

대만에서 활동하는 시사평론가 중위안은 “연기된 3중전회가 만약 열리게 된다면, 시진핑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이 회의가 책임 추궁의 장이 되어버리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라며 “시진핑이 직접 뽑은 고위인사들의 해임을 승인하는 과정에서, 현 지도부가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중위안은 “중국의 현 상황은 90년 전 중국 공산당의 기반이 무너진 숙청 당시와 비슷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1935년 쭌이 회의(遵義会議)에서 중국 공산당은 대규모 검토 작업을 거친 뒤 지도부를 교체했다”며 “이번 3중전회에서 만약 대규모 검토를 실시한다면 현 지도부가 책임을 회피하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따라서 현 지도부는 3중전회가 성토의 장이 되지 않도록 하려 할 것이며 그로 인해 정책 실패에 대한 진지한 반성과 검토, 근본적인 문제 해결도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 쭌이 회의 : 1935년 1월 중국 구이저우성 북부 쭌이에서 열린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회의. 국민당 장제스의 토벌군에 쫓겨 도주하던 도중 개최했다. 이 회의에서 국민당과의 전투 패배를 책임지고 지도부가 교체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