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차 3법’ 존폐 갈림길…인수위 “폐지·축소” vs 민주당 “개정 반대”

이윤정
2022년 03월 30일 오후 6:10 업데이트: 2022년 03월 30일 오후 6:50

인수위 “민주당 설득해 개정…단계적 추진”
윤호중 “교각살우” 박홍근 “원칙 지켜져야”

시행 2년째 접어든 ‘임대차 3법’이 존폐 갈림길에 놓였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임대차 3법 개정을 공식 발표한 가운데 민주당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반발하고 있어 난항이 예상된다.

인수위는 3월 29일, 임대차 3법과 관련해 법 개정 추진 의지를 재차 확인했다. 인수위는 전날(28일)에도 임대차 3법을 바꾸겠다고 밝혔다.

인수위 부동산 태스크포스(TF) 팀장을 맡은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이날 종로구 통의동 인수위 브리핑을 통해 “현 정부에서 임대차 3법을 충분한 사회적 합의와 유예기간 없이 급격히 도입해 인위적 시장 개입에 따른 부작용을 낳아 국민의 거주 안전성을 크게 훼손했다”며 “민주당을 설득해 임대차 3법을 개정하겠다”고 말했다.

심 교수는 조속한 법 개정이 어려운 상황을 고려해 단기 방안으로 ▲민간임대등록 활성화 ▲민간임대주택 활성화를 제시했다.

심교언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부동산 TF 팀장이 3월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통의동 인수위에서 브리핑하고 있다. | 연합뉴스

민간임대등록은 민간 임대인이 주택 임대사업자로 지방자치단체에 등록하면 세제 혜택을 제공함으로써 임대주택 확대를 유도하는 제도다. 인수위가 제시한 ‘민간임대등록 활성화’는 기존 운영 중인 ‘민간등록임대’ 제도를 보다 확대한다는 의미다.

‘민간임대주택 활성화’는 지난 2015년 도입됐던 ‘뉴스테이(민간기업형 임대주택)’를 모델로 한다. 당시 박근혜 정부는 공공임대만으로는 공급 물량이 시장 수요를 따라잡을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해 민간임대공급을 촉진하는 택지·금융 지원 정책을 펼쳤다.

원일희 인수위 수석부대변인은 “임대차 3법 폐지·축소를 포함한 주택 임대차 제도 개선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단계적으로 추진한다”며 “민주당을 설득해 법 개정을 추진하면서도 시장 안정화를 위해 법 개정 없이 정부 의지만으로 할 수 있는 것부터 한다는 게 인수위의 의견”이라고 부연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대선 후보 시절이던 지난 2월 3일, 첫 TV토론에서 취임 후 가장 먼저 손 볼 부동산 정책으로 임대차 3법을 언급한 바 있다. 윤 당선인은 당시 “오는 7월이면 임대 기간이 만료돼 전셋값 상승이 예상되니 임대차 3법을 개정할 것”이라며 “전면 폐지 역시 시장에 혼란을 줄 수 있어 (임대 기간을) 기존 2년으로 돌아가되 임대 가격이 상승하지 않도록 협조하는 분들에게 세제 혜택을 주는 방식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민주당은 임대차 3법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30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인수위의 임대차 3법 폐지·축소 방침에 대해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를 범할 우려가 있다”며 “임대차 시장에 대단한 혼란이 올 것”이라고 비판했다. 윤호중 비대위원장은 지난 2020년 7월 민주당이 임대차 3법을 단독 처리할 당시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으로서 이를 주도했다.

윤 위원장은 “임대차 3법 시행 뒤 재계약 갱신율이 70% 넘는다”며 “임차인의 주거 안정성이 개선됐다”고 주장했다. 다만 “신규 계약할 때 임대료가 과도하게 인상되는 점은 보완이 필요하다”며 “신규계약 시에도 임대료를 과다하게 인상하지 못하게 하는 강력한 전셋값 안정화 정책이 오히려 필요할 때”라고 말했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도 29일 국립현충원 참배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지난 대선에서 이재명 전 후보와 저희 당은 이 문제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지켜야 한다고 말씀드렸다”면서 “올해 하반기에 접어들며 계약 기간이 새롭게 갱신되는 상황에서 현장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 면밀히 살펴보겠다”고 밝혔다.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좌)과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 | 연합뉴스

2020년 7월 도입된 임대차 3법은 ▲계약갱신청구권제 ▲전·월세상한제 ▲전·월세신고제가 골자다. 계약갱신청구권제는 세입자가 기존 2년 계약 기간을 1회에 한해 추가 2년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전·월세상한제는 임대료 증액 상한을 직전 계약의 5% 이내로 제한한 것이며, 전·월세신고제는 임대차 계약 당사자가 계약 30일 이내 임대 사실을 신고하도록 한 제도다.

임대차 3법은 세입자의 주거권 보장, 임대차 시장의 투명성 제고 등 주로 세입자 보호를 목적으로 도입됐다. 하지만 부작용도 적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기존 전세 세입자들이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하면서 아파트 전세 매물이 급감하고 전세 수요 증가, 입주 물량 부족 등이 겹치면서 전셋값 급등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평균 전셋값은 임대차 3법이 시행된 2020년 7월(4억6458만 원)부터 2022년 1월(6억3424만 원)까지 1년 7개월 사이에 1억6966만 원 오른 것으로 조사됐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 5월(3억8414만 원)부터 임대차 3법 시행 직전인 2020년 6월(4억6224만 원)까지 약 3년간 평균 전셋값은 7810만 원 오른 것에 비하면 가파른 상승세다.

이 밖에 ‘전세의 월세화’도 부작용의 하나로 꼽힌다. 아울러 임대차법 시행 2년을 맞는 올해 7월 말부터는 1회 계약갱신청구권을 소진한 세입자들이 2차 전세 대란에 내몰릴 것이란 우려도 나오고 있다.

서울 도심 아파트 | 이유정/에포크타임스

명지대 부동산학과 권대중 교수는 한 매체 인터뷰에서 “시장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정부가 공급을 늘리거나 세제 혜택 등으로 시장에 개입해 가격을 안정화해야 하는데 (문재인 정부가) 강제로 가격 인상을 5% 이하로 제한해 부작용이 생긴 것”이라며 “인위적 가격 통제로 ‘임차인을 보호하겠다’는 취지에도 불구하고 임대료가 올라가고 임차인에게 불리하게 작용한 사례들이 많기 때문에 임대차 3법은 어떤 방식으로든 손을 봐야 한다”고 말했다.

임대차 3법이 권리 보호의 불균형을 심화시켜 사회적 갈등을 유발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지난해 11월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공정주택포럼 창립 기념 세미나’에서 송현담 박사는 “계약갱신청구권제와 전월세상한제 등은 임차인의 권리를 보호하는 긍정적인 면이 있으나 헌법이 기본권으로 보장하고 있는 임대인의 재산권과 거주·이전의 자유 등이 제한될 수 있다”며 “새 정부에서 시장 친화적인 주거정책의 로드맵을 주도면밀하게 수립·시행해야 현재의 시장 혼란과 불확실성을 종식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세미나에서 이혁주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는 “통계적으로 이번 정부에서 정책을 발표할 때마다 집값이 올랐고 그에 반응한 추가 대책이 나오면 집값이 더 올랐다”며 “진보 계열 학자들이 지난 5~10년 평균보다 최근 주택 공급이 더 많다고 주장하지만, 공급량이 충분하다는 것을 입증하지는 못한다”라고 주장했다.

정부에서도 임대차 3법 실패를 인정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노형욱 국토부 장관은 지난해 7월 “그동안 정부가 다 잘했다고 할 수 없다. 국민께 송구한 마음”이라며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 시행 이후 전셋값이 크게 올랐다는 지적은 뼈아프게 새기겠다”고 말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해 9월 국회 대정부질문 경제 분야에서 “임대차 3법이 전세 대란의 원인이라는 주장이 있는데 사실인가”라는 질문에 “해당 법안 시행 과정에 문제점이 노출된 것은 사실”이라며 “정부는 임대차 3법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다각적인 대안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인수위의 임대차 3법 축소·폐지 방침을 놓고 각계 반응도 엇갈렸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는 29일 적극적으로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협회는 2020년 6월 임대차 3법이 발의될 당시부터 해당 법안이 과잉 입법임을 우려하며 법안을 반대했다. 법안이 시장 원리를 무시하고 무리하게 추진될 경우, 당시 주택 가격 급등 현상이 전·월세 가격 폭등으로 번져 오히려 임차인들에게 부담이 될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시민단체가 반발하기도 했다. 주택임대차보호법개정연대는 30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인수위 사무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임대차 3법 폐지·축소 논의 중단을 촉구했다. 개정연대는 “2년마다 임대료를 올려주거나 이사를 해야 했던 세입자들이 31년을 요구한 끝에 2020년 임대차법이 개정된 것”이라며 “임대차 3법에 사각지대와 미비한 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개선하지도 않고 성급히 법 폐지와 축소를 언급하는 행태는 납득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