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팔고 식용유 한 병…中 지상 최대 인공지능 훈련 현장

강우찬
2022년 09월 8일 오후 2:42 업데이트: 2022년 09월 8일 오후 4:54

미 매체 워싱턴포스트, 중국 현지 특파원 보도
시골마을 주민들, 헐값에 개인·생체정보 ‘선뜻’

“이 마을 사람들은 얼굴인식 알고리즘 훈련에 자신의 얼굴을 팔고 있었다. 그 사람들은 지상 최대의 인간 감시 실험에서 작지만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었다.”

워싱턴포스트는 지난 4일(현지시간) 중국의 한 시골 마을에서 진행 중이던 인공지능(AI) 알고리즘 훈련 현장을 목격한 안보전문기자 케이트 카델의 기사를 공개했다.

지난 2019년 당시 로이터통신의 중국 특파원이었던 카델 기자는 중부 허난성 핑딩산(平頂山)시 자(郟)현에 있는 한 농촌 마을을 찾았다. 그녀는 이 한가롭고 작은 마을에서 예상치 못한 ‘이상한 광경’을 목격했다.

한낮의 더위 속에 60여 명의 노인들이 마을 광장에 마련된 촬영 부스 앞에 줄을 서 있었다. 한쪽에는 식용유, 주전자 등 경품이 쌓여 있었고 촬영용 삼각대 뒤에는 낡은 책상 위에 값비싸 보이는 대형 컴퓨터가 놓여 있었다.

카메라 앞에서 한 노부인은 얼굴 절반을 가리는 커다란 선글라스를 쓰고 지시받은 대로 머리를 상하좌우로 움직였다. 또 다른 노인은 눈과 코가 잘려나간 다른 사람의 얼굴 사진을 건네받고 그 사진을 자신의 얼굴과 겹쳐 코만 내놓은 채 촬영에 응했다.

지시대로 촬영을 마친 노인들은 상품권을 하나씩 받았고 경품 진열대로 가서 상품권을 내고 원하는 상품을 하나씩 받아갔다. 한 노인은 자신의 상품권을 식용유 한 병과 교환하고 현장을 떠났다.

카델 기자에 의하면, 최근 중국에서는 얼굴인식 등 AI 알고리즘의 훈련에 사용하는 데이터 수요가 급증했으며 주민 수만 명이 참여하는 대형 프로젝트가 진행되기도 한다.

이날 해당 마을에서 식용유를 주고 주민들의 얼굴 데이터를 사들인 업체는 핑딩산시에 기반을 둔 데이터 수집·판매 업체였다.

이 업체 관계자는 누구를 위해 데이터를 수집하는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지만, 그의 고객 중에는 중국 정부와 미국의 대형 하이테크 기업도 포함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카델 기자는 수년에 걸쳐 중국 경찰의 발주 기록 수천 개를 검토해 중국 당국의 감시 시스템의 성능과 요구사항 등을 추적해왔다.

2018년 베이징과 광시성 당국이 발주한 주문서에는 감시 카메라(CCTV)에 소수민족이 포착됐을 때 이를 식별해 경고하는 기능을 넣어달라는 요구사항에 적혀 있었다.

베이징 중심가인 차오양구에 설치된 1500대의 감시카메라 통합 운영시스템 관련 주문서에는 마스크와 안경을 착용하더라도 얼굴 구조와 패턴을 이용해 식별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

톈진시 시칭구 경찰의 2018년 발주서에서는 심야 시간대에 특정 지역에서 몇 차례 이상 반복적으로 모습을 나타내는 등 ‘수상한 행동’을 하면 현지 경찰에 경보를 울리게 해달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중국 전역에 설치된 안면인식 CCTV는 불특정 다수의 행인을 스캔해 신분을 파악할 수 있으며 데이터베이스와 연결돼 범죄 및 정신질환 기록, 민원 제기 이력 등을 조회하고 출신 민족(위구르·티베트 등)도 식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카델은 경찰이 위구르족이나 티베트족, 정신질환 경력이 있는 사람들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간주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캐들 기자는 로이터 출신 중국 특파원으로 오랜 기간 중국의 정치, 감시, 검열 등에 대해 보도해왔으며 2021년부터 워싱턴포스트 안보전문기자로 일하고 있다.

국제 인권단체들은 중국에서 급속히 보급 중인 얼굴인식 기술이 민원인이나 반체제 인사, 소수민족 등에 대한 감시 및 탄압 도구로 악용될 수 있다고 우려해왔다.

중국에서 민원인까지 감시 대상에 오른 것은 공산당 간부나 정부관리, 지방정부의 부패상을 고발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목적에서다.

뉴욕타임스(NYT)는 6월 발표한 조사보고서에서 중국 정부가 통치 유지를 위해 개인정보, 행동이력, 사회관계 등을 포함한 세계 최대의 DNA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국민 개개인의 개인정보와 활동, 사회적 관계망을 최대한 파악하려 한다고 지적했다.

현재 전 세계에 설치된 약 10억 대의 CCTV 중 절반 이상이 중국에 설치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기관 외에도 대학과 각급 학교, 병원 등 민간에서도 다수 설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