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 남성 사라진 영국 리즈 트러스 내각, ‘빅4’ 여성, 흑인 임명

다양성 중시 호평, '보은인사' 혹평

최창근
2022년 09월 8일 오후 4:28 업데이트: 2022년 09월 8일 오후 4:28

9월 6일 공식 취임한 리즈 트러스 영국 신임 총리가 내각 주요 각료를 비(非)백인, 여성으로 채웠다. 트러스 총리는 부총리를 비롯하여 재무·외무·내무부 장관 등 주요 요직에 백인 남성을 임명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파이낸셜타임스(FT)’는 “총리, 재무·외무·내무 장관 등 주요 4개 공직에 백인 남성이 없는 것은 영국 역사상 처음이다.”라고 보도했다. 전통적으로 이들 장관직은 내각 핵심으로 꼽힌다.

리즈 트러스(우) 신임 영국 총리가 관례에 따라 엘리자베스 2세(좌) 영국 여왕을 스코틀랜드 밸모럴성에서 알현하고 총리로 공식 취임했다. | 연합뉴스.

유사시 총리 권한을 대행하는 내각 서열 2위 부총리(Deputy Prime Ministe)에는 여성인 테레즈 코피(Thérèse Anne Coffey) 보건사회복지부 장관을 임명했다. 신임 부총리는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niversity College London) 화학 박사 출신으로 데이비드 캐머런 내각에서 보수당 하원 원내총무를 맡았고 테레사 메이 정부에서 환경·식량·농촌지역부 부(副)장관, 전임 보리스 존슨 총리하에서 고용·연금부 장관을 역임했다.

쿼지 콰텡(Kwasi Kwarteng) 재무부 장관은 부모가 아프리카 가나에서 영국으로 이주한 이민자 가정 출신이다. 어머니는 변호사, 아버지는 내각 영연방 사무국(Commonwealth Secretariat)에서 경제학자로 근무했다. 이튼 칼리지를 거쳐 케임브리지대를 졸업했고, 케네디 장학금으로 미국 하버드대에서 경제사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데일리 텔레그래프’ 칼럼니스트로 활동했고 JP모건 체이스 등 투자은행에서 경력을 쌓았다. 2010년 하원의원에 당선됐고 브렉시트 담당 정무차관(Parliamentary Under-Secretary of State), 상업·에너지·녹색성장부 부(副)장관·장관을 거쳐 선임 장관이라 할 수 있는 재무부 장관(Chancellor and Under-Treasurer of Her Majesty’s Exchequer)에 임명됐다. 영국에서는 총리(Prime Minister)가 명목상 제1 재무경(First Lord of the Treasury)을 겸하며 제2 재무경(Second Lord of the Treasury)이 실질적인 재무부 장관이다.

제임스 클리버리(James Cleverly) 외무부 장관은 백인·흑인 혼혈 가정 태생이다. 어머니는 아프리카 시에라리온 출신이다. 보수당 하원의원 당선 후 보수당 부의장, 브렉시트 담당 정무차관, 보수당 의장, 유럽업무 담당 부(副)장관, 교육부 장관을 역임한 후 외무·영연방개발부 장관으로 영전했다. 보리스 존슨 전 총리의 곁을 끝까지 지키며 트러스의 신임을 얻었다. 클레버리 장관은 앞으로 트러스의 대중·대러 강경 노선을 실행으로 옮길 것으로 보인다.

리즈 트러스 내각 주요 각료. | 연합뉴스.

여성인 수엘라 브레이버먼(Braverman) 내무부 장관은 부모가 각각 아프리카 케냐와 남아시아 인도양 모리셔스 출신이다. 1960년 케냐·모리셔스에서 영국으로 이민 왔다. 2015년 정계 입문 후 유럽연구회(European Research Group) 회장, 브렉시트 담당 정무차관, 법무부 장관을 역임했다. 보수당 내 흑인 유권자를 대표한다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다. 브레이버먼 장관은 영국의 이민정책을 주도할 예정이다.

트러스 내각의 기조는 ‘여성’ ‘소수인종’으로 요약된다. 다만 영국 언론들은 다양성보다 ‘보은인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공영방송 BBC는 “트러스가 동료들에게 보상으로 내각의 요직을 제공했다.”고 전했다. 보수당 대표 경선에서 경쟁자인 리시 수낵 전 재무장관을 지지한 인사들은 모두 인선에서 제외됐다. 가디언은 “트러스 총리는 수낵 전 장관을 지지했던 사람들을 소외시켰다. 정치권에선 트러스에 대한 충성도에 따라 내각을 임명한 존슨 전 총리의 실수를 피하라고 경고한 바 있다.”며 “하지만 트러스는 가까운 동료들에게 직책으로 보상했다. 이는 결정적인 순간에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논평했다.

로이터통신은 흑인과 소수인종이 내각에 대거 진출할 수 있었던 이유로 보수당이 최근 선거에서 다양한 인물을 영입해 성공을 거둔 점이 영향을 미쳤다고 보도했다. 공직 등의 상위 요직은 여전히 백인이 강세다. 보수당에서 여성 의원 비중은 4분의 1이고, 소수민족 출신은 6%에 불과하다.

40대 총리에 맞춰 내각도 젊어졌다. 주택사회부 장관에는 37세인 사이먼 클라크(Simon Clarke), 문화부 장관에 38세의 미셸 도넬란(Michelle Donelan)이 임명되는 등 30~40대를 중용했다. 신규 임명 장관 12명 가운데 9명이 30~40대이다.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가 런던 다우닝가 10번지 총리관저 앞에서 취임 연설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한편 리즈 트러스 총리는 “함께 폭풍우를 헤치고 경제를 재건하고 현대 멋진 영국을 만들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그는 9월 6일 오후 다우닝가 10번지 관저 앞에서 취임 후 첫 연설을 하면서 이와 같이 밝히고 “고임금 일자리, 안전한 거리, 기회가 있는 열망의 나라로 변혁시키겠다.”고 강조했다. 국정 우선과제로는 경제, 에너지, 국민보건서비스(NHS) 의료 문제 등 3가지를 제시했다.

트러스 총리는 “영국이 다시 작동하게 할 것”이라며 “감세와 개혁을 통해 경제를 성장시킬 담대한 계획이 있다.”고 밝혔다. 그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위기를 직접 해결할 것이며 에너지 요금 문제와 미래 에너지 공급원 확보에 관한 조치를 이번 주에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NHS의 기반을 다져서 모두가 진료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외교 분야에서는 ”동맹들과 함께 세계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킬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총리 취임 전 외무부 장관을 맡았던 그는 대(對)중국·러시아 강경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