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서 반중 서적 샀더니 중국서 걸려온 수상한 전화…중국의 인지전

최창근
2023년 05월 15일 오후 1:06 업데이트: 2023년 05월 25일 오후 3:27

대만 대형서점에서 반중(反中) 성향의 서적을 구입한 고객에게 중국을 선전하는 수상한 전화가 걸려와서 파문이 일고 있다.

대만 ‘타이완뉴스’는 5월 14일이 대만 독립주의 정당 대만기진(臺灣基進)이 개최한 기자회견을 보도했다. 양신츠(楊欣慈) 대만저차계화(臺灣佇遮計畫·Here I Stand Project)) 부집행비서(副執行秘書)가 5월 13일 받은 보이스 피싱 전화 내용을 공개하며 안보당국에 조사를 촉구했다.

양신츠는 5월 13일 오후 2시 30분경 ‘국가코드 28’이 표시된 수상한 전화 두 통을 놓쳤다. 그러다 오후 7시경 같은 번호로 전화가 걸려와 받았다. “청핀서점(誠品書店·Eslite Bookstore) 직원”이라고 주장하는 여성의 전화였다. 청핀서점은 대만을 대표하는 대형서점 체인이다.

해당 여성은 양신츠가 지난 2월, 청핀서점에서 구매한 ‘중국이 공격하면 어떻게 해(阿共打來怎麼辦)’ 책과 관련해서 설문 조사를 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어 “당신이 구매한 책은 매우 민감한 내용을 담고 있다.”며 “책 내용은 부적절하다. 당신의 의견을 듣고 싶다.”고 말했다. 해당 서적은 왕리(王立)와 선보양(沈伯洋)이 공저한 서적으로 중국군의 대만 침공 계획과 그에 대한 대책을 담고 있다.

양신츠는 “해당 여성의 억양이 처음부터 대만인과 달랐다. 대만인과 비슷해 보였지만 진짜 대만인은 아니라는 게 분명해졌다.”고 밝혔다. 이어 “그 순간 나는 긴장도 되고 흥분도 됐다. 중국 공산주의자와 직접 대결할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후 그 여성에게 잠시 후 다시 전화를 해달라고 요청한 후 통화 녹음 준비를 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이후 청핀서점 마케팅부 직원이라고 주장하는 남성이 전화를 걸어왔다. 설문을 시작하자 해당 남성은 “중국의 군사력은 강하고 대만이 승리할 리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은 대만을 돕지 않을 것이다.” “대만 병사들은 전쟁을 두려워한다.” “국민당이 낫다.” 등의 주장을 반복했다.

해당 남성은 대만 독립·통일 주장에 대한 주장을 이어갔다고 양신츠는 말했다. 그에 의하면 해당 청핀서점 마케팅부 직원이라 주장하는 남성은 “대만 통일은 불가피하며 민진당에 표를 주면 무력에 의한 통일을 낳을 것이고 국민당에 표를 주면 평화 통일과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로 이어질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양신츠에게 “대만에서 나고 자랐어도 당신도 ‘중국인’이다”라며 “대만은 중국 영토의 양도할 수 없는 부분이며 대만이 당신의 조국이라는 의견은 좋지 않다.”고 지적했다.

양신츠는 해당 남성과의 대화 내용을 자신의 소셜미디어 계정에 올리고 기자회견에서도 공개했다.

그는 “보이스 피싱 전화가 만연한 것을 알지만 이번에는 그들은 내 돈을 뜯어내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나를 상대로 인지전(cognitive warfare)을 펼친 것이다. 대만 여론과 해당 책에 대한 대만인의 생각을 알아내려 한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일부는 이 사건을 우스갯거리로 치부하겠지만 청핀서점은 고객 개인 정보가 어떻게 중국으로 유출됐는지 해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지전은 가짜 뉴스 등으로 정부에 대한 반감을 부추기고 민간과 군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등 민심을 교란해 적을 무력화하는 전쟁 개념이다. 중국 인민해방군은 2003년 인지전을 공식 전술로 채택하고 대만 등을 겨냥해 다양한 방식으로 인지전을 실행하고 있다.

대만 기진당의 의사 출신 정치인 우신다이(吳欣岱)는 “이번 사건이 보이스 피싱이 아니라 세뇌다. 이번 사건에서는 ‘중국이 공격하면 어떻게 해’ 독자를 겨냥했다면 향후 중국은 친중 서적 독자에게 전화를 걸 수 있으며, 해당 독자에게 세뇌가 먹혀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들 프로파간다 기법이 성숙해지기 전에 이번 사건의 배후와 중국의 관련성에 대해 대만 정부가 조사를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대만디지털발전부(數位發展部·Ministry of Digital Affairs)는 보도자료를 통해 5월 15일, 청핀서점 관계자를 소환해서 이번 사건과 사이버 보안 문제 관련 해명을 들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앞서 대만 안보 책임자인 구리슝(顧立雄) 국가안전회의(NSC) 비서장은 2023년 3월, “중국 공산당이 최근 몇 년간 대만을 겨냥한 인지전을 늘렸으며 내년 1월 총통·입법원 선거에 개입하려 할 것이다.”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차이밍옌(蔡明彥) 국가안전국 국장은 “중국이 인지전을 통해 대만인이 차기 총통 선거에서 ‘독립 반대’ ‘융화 촉진’ ‘외국 세력 개입 반대’ 등을 표방하는 후보를 지지하게 함으로써 차기 정부의 대중국 노선이 친중 노선으로 변경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