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낙태 찬성 시위대, 대법관 자택 몰려가 촛불 켜고 항의

한동훈
2022년 05월 11일 오후 12:51 업데이트: 2022년 05월 11일 오후 12:54

대법관 “원하는 결과와 다르다고 괴롭힘 안돼”
백악관은 시위대 두둔 “우리는 민주주의 국가”
주정부 “개인 주택 앞 소요 금지한 州법 위반”

미국 연방 대법원이 낙태를 합법화한 과거 판례를 뒤집을 가능성이 높아지자, 낙태 찬성 시위대의 행동이 과격해지고 있다. 떼법 현상도 나타났다.

지난 9일(현지시각) 약 100명의 시위대가 미국 워싱턴DC 근교의 버지니아주 알렉산드리아에 위치한 새뮤얼 알리토 대법관 사택 앞마당에서 항의했다.

시위대는 “우리의 몸, 우리의 권리, 우리의 결정”이라고 쓴 팻말을 들고 촛불을 켰다. 확성기로 알리토 대법관 이름을 부르고 “대법원을 멈춰라”라는 구호도 외쳤다.

현재 미국 워싱턴DC 연방 대법원 청사 앞에는 철제 바리케이드가 설치돼 있다. 낙태 찬성 시위대가 격렬한 농성을 벌이고, 이들에 반대하는 낙태 금지 지지자들까지 더해지면서 현장의 긴장 상태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달 초 미국에선 대법원 사상 초유의 결정문 초안 유출 사태가 발생했다.

초안에는 낙태를 합법화한 ‘로 대 웨이드'(1973) 판결이 처음부터 잘못됐으며 무효화돼야 한다는 견해가 담겼다.

이전까지는 낙태가 금지였으나, 이 판결을 계기로 지난 50년간 미국에서는 태아의 자궁 밖 자생이 가능해지기 전 낙태하는 일이 허용됐다.

하지만 초안에서는 낙태권 보장은 사법부가 결정할 사안이 아니며 국민의 대표인 의회에서 결정돼야 한다고 밝혔다. 즉, 낙태권을 보장한 판결이 권한 밖 결정이었으므로 철회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9명의 대법관 중 보수성향 5명이 찬성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낙태 찬성 측의 거센 반발이 이어졌다. 시위대는 대법원은 물론 대법관 사택에까지 찾아가 항의했다.

단체행동으로 재판 결과에 영향을 미치려는 행위에 대해 대법관들은 “사법부의 독립성을 훼손하려는 시도”라고 비판했다.

미국 워싱턴DC 근교 버니지아주 알렉산드리아에 위치한 새뮤얼 알리토 대법관 사택 앞에 모인 낙태 찬성 시위대 2022.5.9 | STEFANI REYNOLDS/AFP via Getty Images=연합

클라렌스 토마스 대법관은 이와 관련해 “원치 않는 결과를 받아들일 줄도 알아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특정한 결과를 원하는 것에 중독돼 가는 시대를 살고 있다”고 전했다.

토마스 대법관은 의견서에서 “우리(연방대법원)는 당신이 원하는 결과만 제공하도록 괴롭힘당하는 기관이 돼선 안 된다”면서 “최근 사건들이 그러한 징후를 보여주고 있다”고 걱정했다.

아울러 최근 미국의 젊은 세대의 공공기관과 법에 대한 존중이 이전 세대에 비해 약화됐다는 우려도 덧붙였다.

조 바이든 행정부와 민주당은 이 같은 우려에 미온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미 법무부는 떼법 시위의 위법성에 대한 논평을 거부했고, 백악관은 시위대를 두둔했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우리는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나라”라며 “우리는 나라 안의 다양한 장소에서 평화로운 시위를 허용한다. 시위는 지금까지 평화적이었으며 우리는 이를 계속 장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법관 사저 앞 마당 시위는 명백한 불법이라는 게 관할 주 정부의 판단이다.

버지니아주 검찰총장(법무장관 겸직)은 알리토 대법관 사저 앞에서 시위를 벌인 100여 명을 기소할 것을 지방 검찰에 촉구했다. 검찰총장은 개인의 집 앞에서 소요하는 행위를 금지한 버지니아 주(州)법을 근거로 들었다.

버지니아 법무장관실은 에포크타임스에 “개인의 집 앞에서 시위를 하는 것은 3급 경범죄”라며 “모든 지방 검찰은 이 범죄에 대해 기소할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 임명된 관할 검사인 스티브 데스카노 전 민주당 의원은 시위에 대해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고 있으며, 기소할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있다.

백악관 사키 대변인 역시 명백한 범죄 행위임에도 정부가 기소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한편, 연방 대법원은 “초안은 최종 판결이 아니다”라면서도 이번 유출 사태를 매우 심각한 사안으로 보고 있다. 대법원에 대한 외부의 신뢰와 대법관-직원 간 신뢰를 크게 해쳤다는 이유에서다.

일각에서는 대법원 내부 관계자(직원)가 의도적으로 초안을 유출한 것으로 보고 있다. 판결이 나오기 전 반대 여론을 촉발시켜 대법관들에게 영향을 미치려 했다는 것이다.

대법원 판결은 6월 중 나올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