獨 교육부 장관, 전국 대학·교육당국에 공자학원 실태 파악 요구

김윤호
2021년 11월 27일 오전 11:41 업데이트: 2024년 01월 27일 오후 9:03

 “오랫동안 우려…재평가 통해 정확한 결론 내달라”

독일 정부가 뒤늦게 공자학원 현황 파악에 나섰다. 대학 차원에서 중국 공산당의 정치적 개입을 우려해 관계 단절에 나선 적은 있지만 정부가 직접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처음이다.

진보성향 주간지 독일 슈피겔에 따르면, 지난달 안자 카를리체크 교육부장관은 독일대학과 지역 교육당국에 “공자학원의 역할을 재평가하고 그것으로부터 정확한 결론을 이끌어낼 것”을 요구했다.

카를리체크 장관은 독일대학교 총장회의와 각 주(州) 교육부장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현재 독일 대학에 설치된 19개 공자학원에 대해 “오랫동안 우려해왔다”고 밝혔다.

독일에서 대학의 정책과 운영은 각 주 교육당국과 대학이 자율적으로 결정한다. 연방정부 교육부 장관이 대학과 지역 교육당국에 직접 이같이 요구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이번 서한 발송은 지난 10월 뒤센베르크 에센 대학과 하노버 대학의 공자학원에서 개최하기로 했던 온라인 북 이벤트가 중국 공산당 측 인사들의 압력으로 취소된 사건이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고 슈피겔은 전했다.

이 이벤트는 독일 작가 겸 기자 아드리안 가이게스(Adrian Geiges)가 쓴 시진핑 중국 공산당 총서기 비판 서적 ‘시진핑 세계최강의 권력자'(Xi Jinping Der Machtigste Mann Der Welt)를 소개하는 자리였다.

책의 저자와 학교 관계자들은 시진핑의 신격화를 비롯해 그의 다양한 면모를 다룬 서적을 중국과 학술교류를 위해 설립한 기관인 공자학원에서 개최하는 것을 매우 당연한 일로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중국 공산당 측 인사들이 항의하면서 북 이벤트는 취소됐다.

이와 관련 독일 주재 중국대사관 대변인은 “공자학원에서 진행하는 행사는 양 국민의 이해를 증진한다는 목적에 따라 진행돼야 한다”며 양측 간 소통이 없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즉, 중국 측에 사전에 알려 협의하지 않았기에 행사가 취소됐음을 시사했다.

중국이 외국의 문화·학술행사에 대해 ‘중국과 관계’를 내세워 시설 측에 대관 계약을 해지하거나 주최 측에 행사를 취소하게 하는 것은 이미 여러 차례 발생했다.

이탈리아 주재 중국대사관은 지난 10월 중국의 중공 바이러스(코로나19) 대처, 홍콩 탄압, 신장 위구르족 탄압 등을 비판하는 작품들이 출품된 미술전시회를 막으려 시도했다.

이에 이탈리아에서는 예술가가 자신의 예술적 영감과 양심에 따라 그린 작품을 외국에서 전시하는 것조차 막으려 하는 중국의 검열 확장에 비판적인 여론이 일기도 했다.

중국은 한국에서도 중국 전통문화 부활을 표방한 미국의 공연단 ‘션윈예술단’ 내한 공연과 관련, 대관 계약을 여러 차례 취소시킨 바 있다.

이번 독일 사례에서도 중국이 공자학원을 통해 해외에서 부당하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점을 경계하는 반응이 나왔다.

독일 교육부 카를리체크 장관은 서한에서 “공자학원과 협력 관계를 검토하고 중국의 영향력을 면밀히 살펴보라”고 각 대학과 주 교육부에 권고했다.

또한 장관 대변인이 각 대학에 “연방헌법수호청(BfV), 연방정보원(BND)과 긴밀히 협력할 것”을 당부했다고 슈피겔은 보도했다.

헌법수호청은 독일의 자유민주와 기본질서에 대해 적대적 활동을 감시하는 국내 정보기관이며, 연방정보원은 독일정부의 유일한 해외 정보기관이다.

교육부 장관이 각 대학에 독일의 국내·해외 양대 정보기관과 긴밀한 협력을 당부한 점은 공자학원이 사실상 중국 정부와 공산당 산하 스파이 기관이라는 점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