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르몽드, 中 시진핑 방문에 “환상 품지마…친구 아냐”

강우찬
2024년 05월 7일 오후 3:06 업데이트: 2024년 05월 7일 오후 3:30

시진핑 방문 전날 “대화는 OK, 환상은 금물” 사설

시진핑 중국 공산당(중공) 총서기가 5일(현지시간) 프랑스를 국빈 방문한 가운데, 현지 유력 언론이 마크롱 정부를 향해 “환상을 품지 말라”고 일갈했다.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는 시진핑 총서기 방문 하루 전인 4일 발표한 ‘마크롱과 시진핑 만남…중국과 대화는 하지만 환상을 갖지는 말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중국을 친구로 착각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르몽드는 사설에서 프랑스는 중공을 상대로 혼자 싸우는 것이 아니며, 마크롱 정부가 중공에 아첨한다고 해서 얻을 것도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단결된 유럽만이 중공으로 하여금 유럽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할 수 있으며, 모든 분야에서 마찬가지라는 점은 말할 것도 없다고 덧붙였다.

시진핑은 프랑스를 시작으로 엿새 동안 헝가리, 세르비아 등 유럽 3개국을 방문할 예정이다.

르몽드는 중공이 유럽 순방지로 3개국을 선별한 데에는 ‘의도’가 있다고 분석했다.

우선 프랑스는 올해 중공이 수립한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한 지 60주년이 되는 해다. 시진핑은 이를 계기로 양국의 특별한 관계를 전 세계에 강조하고 싶어 한다.

나머지 2개국인 세르비아와 헝가리는 모두 유럽 내 친공국가다.

시진핑은 두 번째 방문지인 세르비아에서 나토 폭격기의 오폭으로 폭격당한 유고슬라비아 주재 중국 대사관 터를 방문할 예정이다. 이 자리에서 미국을 규탄해 유럽 국가들의 지지를 이끌어내겠다는 의중이 엿보인다.

마지막 목적지 헝가리는 일관적으로 친공을 유지한 국가다. 시진핑은 헝가리 방문을 통해 유럽의 결속을 약화하려 시도하는 동시에, 곧 방중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호의적 태도를 나타낼 것으로 보인다.

르몽드에 따르면, 중공은 항상 강한 유럽을 희망한다고 말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중공의 진정한 의도는 서구 민주주의를 약화시키고 미국이 주도하는 ‘대서양 협력을 위한 파트너십’과 유럽연합(EU)에 타격을 주는 것이다.

일례로 중공은 2012년 유럽 17개국과 협력 체계인 ‘중·동유럽(17+1) 정상회의’를 결성했지만, 이 체계는 리투아니아를 비롯한 발트 3국이 탈퇴하면서 ’14+1’로 위축됐다.

르몽드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중국이 중립적이라고 계속 믿는 것은 비생산적”이라며 “중국과의 대화는 문제의 해결책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중공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서방에 대응하는 협력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지난 3월 5선을 확정 지은 푸틴 대통령은 첫 해외 방문지로 중국을 선택했다. 중공은 러시아에 필요한 물자를 공급하며 우크라이나 침공을 돕는 등 사실상 동맹 관계를 맺고 있다.

최근 중국을 방문한 토니 블링컨 미 국무부 장관은 러시아 지원을 중단하라고 중공에 최후 통첩했고, 미국 정부는 러시아 군수 산업 기업을 지원하는 중국 기업 20여 곳을 제재 명단에 올렸다.

유럽 각국은 자국 방위비는 매우 적게 사용하면서 미국에 안보를 의탁하고, 경제적으로는 공산주의 중국의 막대한 노동력과 시장에 의존하며 번영을 구가해왔다.

그중에서도 프랑스와 독일은 경제적으로 높은 중국 의존도 때문에, 서방세계의 탈중국 움직임 속에서도 중국과 분리를 통해 디리스킹(위험 완화)을 거의 진전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5일 시진핑이 프랑스를 방문한 가운데, 파리 레퓌블리크 광장에서 티베트와 위구르족을 지지하고 중국 공산당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현수막과 플래카드를 들고 있다. 2024.5.5 | AFP/연합뉴스

대만 단장(淡江)대학 중국연구소의 젠시(兼系) 교수는 “미국과 유럽의 관계가 미묘한 시점에서, 시진핑은 중국 시장을 유럽에 ‘채찍’과 ‘당근’으로 사용하며 일부 요구사항을 관철시키려 한다”고 말했다.

젠 교수는 “EU는 현재 중국 전기차 업체와 태양광 관련 기업을 대상으로 당국의 보조금을 받는지 조사 중이다. 보조금 지급이 확인되면 징벌적 관세가 부과될 것”이라며 “시진핑은 프랑스와 헝가리가 EU 내부에서 중공의 이익을 대변해주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 6일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을 파리로 초청해 시진핑과 3자회담을 갖고 무역 불균형과 우크라이나 전쟁 등 현안을 논의했다.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마크롱 대통령은 시진핑과 양국 우호를 중시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중공의 과잉생산, 불평등한 시장 접근, 지나친 의존도 등을 거론하며 개선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젠 교수는 이번 3자회담에 관해 “마크롱 대통령은 프랑스가 중공과 어떠한 은밀한 거래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EU에 보여주려 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편, 파리 시내에서는 다수의 시민단체가 중공의 인권탄압과 폭정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며 EU에 단호한 대응을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