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년 만에 침수된 中 자금성…“국운 쇠퇴의 상징성”

강우찬
2023년 08월 3일 오후 4:35 업데이트: 2023년 08월 3일 오후 9:01

에포크타임스 중국 전문가들이 본 자금성 침수
“치수가 곧 치국, 공산당 지도력에 상징적 의미”
신화통신은 침수 소식 없이 ‘배수 시스템’ 선전만

최근 중국 북부지방 폭우로 베이징에서는 이례적인 현상이 발생했다. 그동안 숱한 물 폭탄에도 멀쩡했던 자금성이 물에 잠긴 것이다. 이는 60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자금성은 2016년, 2019년 기록적인 폭우가 내렸을 때도 전혀 이상이 없었다. 명나라 영락제 때 건설 당시 도입된 배수 시설 덕분이다. 자금성은 천여 개가 넘는 배수구를 통해 지하 배수로와 주변 하천으로 물을 내보낸다.

현재 중국인들의 관심사는 왜 이번에는 자금성이 물에 잠겼나 하는 것이다.

시사평론가 헝허(橫河)는 자금성의 상징성에 주목했다. 그는 “자금성은 명나라와 청나라 두 왕조의 황제가 살았던 곳으로 사실상 국가의 운명을 상징하는 의미가 있다”며 600년간 문제가 없다가 이번에 침수된 것은 불길한 징조로 보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인들은 징조와 상징을 중하게 여긴다. 지난 2021년 9월에는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 국기 게양식을 마친 직후 검은 백조 한 마리가 나타나 화제가 된 바 있다.

단순한 해프닝일 수 있지만 마침 시진핑 중국 공산당 총서기가 2019년 1월 베이징에서 열린 장관급 고급 간부 세미나에 참석해 “검은 백조 사건을 경계하고, 회색 코뿔소 사건을 방지하라”고 한 발언과 맞물려 더욱 큰 관심을 끌었다.

‘검은 백조(black swan·블랙 스완)’는 사회학이나 경제학에서 발생 확률은 낮지만 일단 발생하면 거대한 충격을 일으키는 위험한 사건을 가리킨다. ‘회색 코뿔소’는 예상할 수 있지만 무시하기 쉬운 위험을 경고하는 표현이다.

시진핑이 경계하라던 검은 백조는 이런 의미였지만 실제로 검은 백조가 톈안먼 광장에 내려앉은 사건은 중국인들에게 묘한 생각을 품게 만들면서, 이를 촬영한 사진과 영상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퍼지며 흉조냐 아니냐 논란을 일으켰었다.

제5호 태풍 ‘독수리’의 상륙으로 중국 베이징과 허베이성 등 수도권에 사흘간 폭우가 쏟아져 20명이 숨지고 33명이 실종됐다. 베이징시는 1일 오전 6시(현지시간) 기준으로 11명이 숨지고 27명이 실종됐다고 밝혔다. 허베이성에선 9명이 숨지고 6명이 실종됐다. 지난 600년간 침수되지 않았던 자금성 일부가 무릎 깊이로 잠겼다. 지난달 31일 자금성 태화전 옆 용머리가 빗물을 뿜어내고 있다. | 신화통신/연합

치수사업과 도시화에 따른 하천 소실

에포크타임스 주필 스산(石山)은 이번 자금성 침수가 직접적으로는 중국 공산당 정권의 도시화와 치수사업의 결과일 것으로 관측했다.

스산은 “자금성의 배수 시설은 명나라 당시 중국 화베이 지역 하천 유역을 바탕으로 설계됐다”며 “하지만 중국 공산당이 정권을 장악한 후 화베이 지역, 특히 하이허 유역에서 대규모 치수 공사를 벌여 많은 하천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그는 “하천들은 인위적으로 철거됐고 그 자리엔 주택단지가 들어섰다”며 “과거에는 자금성이 중심이었던 베이징도 대도시로 변모했다. 베이징의 배수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면 자금성의 배수 시설도 제 기능을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에포크타임스 중국어판 편집장 궈쥔(郭君)은 풍수를 중요하게 여기는 중국인들에게 물바다가 된 자금성은 단순한 침수 그 이상의 의미가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궈쥔은 “자금성은 명나라 때 건설된 이후 600년간 침수된 적이 없어 중국인들에게는 배수 시설의 우수성이 널리 각인됐다. 베이징 언론들도 이를 자랑스러워했다”며 “비가 많이 와서 거리가 물에 잠겨도 지금까지 자금성 내부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금성의 배수 시설이 복잡하지만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는 간단한 원칙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자금성은 북고남저의 지형을 가지고 있어 72만 제곱미터(㎡)에서 모인 물이 자금성 내부를 흐르는 ‘내금수하’라는 수로를 통해 자연스럽게 성 바깥으로 배출되도록 설계돼 있다.

이렇게 배출된 물은 자금성 외부 해자와 주변 수로인 외금수하, 서쪽에 있는 중남해라는 인공호수 겸 정원으로 흐른다. 중남해는 2개의 호수인 중해(中海)와 남해(南海)를 함께 일컫는 말로 중국 발음으로는 ‘중난하이’로 부른다.

중국 베이징 자금성 위성사진. 왼편에 보이는 인공호수가 위에서부터 북해, 중해, 남해다. 중해와 남해를 합쳐 중난하이(中南海)라고 부른다. 현재 중국 공산당과 중앙정부 수뇌부의 집단 거주지 겸 업무 지역이다. | 구글맵 중국판 화면 캡처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른다…물길 왜 막혔나

중난하이는 현재 중국 공산당과 중앙정부 수뇌부의 집단 거주지 겸 주요 기관이 모인 곳이기도 하다.

궈쥔은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는 원리에 비춰 “중난하이의 물이 막히지 않으면 자금성은 침수되지 않는다”며 자금성이 침수되면 중국인들은 ‘중난하이가 왜 막혔나’ 의문을 품는다고 분석했다.

아울러 ‘치수(治水)가 곧 치국(治國)’이라는 오랜 관념에 따라 이번 자금성 침수사태가 중난하이에 고여있는 중국 공산당 지도부의 통치력에 관한 문제로 인식될 수 있다고 봤다.

궈쥔은 “풍수지리나 주역의 관점에서 봤을 때, 자금성은 중국의 축소판”이라며 ‘자금성의 물길이 막혔다’, ‘자금성이 수몰됐다’는 표현에 모두들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그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편, 중국 관영매체 신화통신은 지난달 31일 ‘고궁(자금성)의 600년 된 배수 시스템이 폭우의 기습을 막아냈다’는 제목의 기사와 함께 이날 촬영했다며 베이징 자금성 내부에 흐르는 내금수하 사진을 게재했다.

중국 베이징 자금성이 침수된 지난달 31일, 관영 신화통신은 자금성의 배수 시스템을 추켜세우는 기사를 게재했다. | 신화통신 화면 캡처

이날 자금성은 일부가 침수돼 무릎 높이까지 물이 차올랐지만, 신화통신 기사에서는 이러한 장면이 잘 보이지 않는 각도에서 촬영된 사진을 사용하면서 “정교한 배수 시스템과 웅장한 건물들로 (자금성은) 폭우에도 무사했다”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