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차 당대회’ 상무위원 인선 3가지 시나리오

샤샤오창(夏小強)
2017년 08월 1일 오후 1:50 업데이트: 2024년 02월 19일 오후 3:24

쑨정차이(孫政才) 충칭시 서기 겸 정치국 위원의 예상 밖 낙마로 중국 공산당(이하 중공) 기존의 정치적 평형이 무너지고 19차 당대회를 둘러싼 중공 계파 간 권력 쟁탈전도 치열해지고 있다. 아울러 19차 당대회에 있을 정치국 상무위원 인선은 더 불투명해졌다.

정치국 상무위원 역사

중공 중앙 정치국 상무위원은 정국급(正國級)에 속하는 최고위 지도자층이다. 서열은 통상 경력과 직위, 당정(黨政) 내 지위에 근거한다. 공식 석상 출석 명단 순서는 대개 바뀌지 않으므로 ‘당내 몇 인자’라는 말이 나온다.

그래서 중공 총서기와 국무원 총리는 상무위원에서 선출되는 것이 관례이자 묵계다. 그 외에 국가주석,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 중앙군사위 주석, 전국정치협상위원회 주석, 중공 중앙서기처 서열 1위인 서기, 국무원 서열 1위 부총리 등 다수 주요직무도 상무위원이 맡는다. 일반적으로 상무위원회에서 중대한 문제를 결정할 때 다수결의 원칙을 따르기에 표결권 행사와 상무위원의 직무는 상관이 없다.

문화대혁명이 끝난 1978년 11기 중앙위원회부터 현재 18기 중앙위원회까지 상무위원 인원은 5~9명으로 다양했다. 그중 주목할 만한 변화는 2002년 11월에 열렸던 16차 당대회 때였다.

15기 중앙위원회 상무위원은 장쩌민(江澤民), 리펑(李鵬), 주룽지(朱鎔基), 리루이환(李瑞環), 후진타오(胡錦濤), 웨이젠싱(尉健行), 리란칭(李嵐清) 등 총 7인이었다. 이들 중 후진타오를 제외한 전원이 16대에서 물러나야 했다.

당시 장쩌민은 파룬궁 탄압정책을 유지하려 16기 상무위원 인원을 7명에서 9명으로 늘렸다. 후진타오와 원자바오를 뺀 나머지 7명-우방궈(吳邦國), 자칭린(賈慶林), 쩡칭훙(曾慶紅), 황쥐(黃菊), 우관정(吳官正), 리창춘(李長春), 뤄간(羅干)은 모두 장쩌민파였다.

장쩌민은 선전계와 정법(政法)계를 장악했던 리창춘과 뤄간을 상무위원회에 넣고 후진타오의 실권을 빼앗아 후진타오-원자바오 집권 10년간 이른바 ‘정령불충중난하이(政令不出中南海·정책이 지도부가 있는 중난하이 밖으로 전달되지 않는 현상)’를 조성했다. 이를 ‘구룡치수(九龍治水)’라고도 한다. 9명이 각자 자기 권력을 행사했다는 뜻이다.

2012년 11월 18차 당대회에서 후진타오는 모든 직무를 내려놓는 전퇴(全退) 방식으로 시진핑을 지지했고, 정법위 서기는 강등돼 상무위원회에서 퇴출당했다. 상무위원은 9명에서 다시 7명으로 줄어 시진핑과 리커창(李克強), 왕치산(王岐山), 덩샤오핑 가족 세력을 대표하는 위정성(俞正聲)이 손을 잡고 이하 장쩌민파인 장더장(張德江), 류윈산(劉雲山), 장가오리(張高麗)가 대적하는 새로운 국면이 형성됐다.

관례대로라면 ‘7상8하(七上八下·67세는 유임하고 68세는 은퇴)’에 따라 19대에서 시진핑과 리커창을 제외한 상무위원 5명 모두 퇴진 대상이다. 이에 빈자리에 누가 앉게 될지 관심이 쏠리는 상황이다. 현재 상무위원 인선에 대해 3가지 시나리오가 높게 점쳐지고 있다.

1안 : 왕치산과 장쩌민파 1인 선출

1안은 시진핑이 7상8하 관례를 깨고 왕치산을 유임하며 상무위원 서열 3위에 둔다는 구상이다. 상무위원은 시진핑과 리커창, 왕치산, 리잔수(栗戰書), 왕양(汪洋), 후춘화(胡春華), 한정(韓正)으로 구성된다. 장쩌민파는 왕치산의 유임을 막으려 19차 당대회 개최 전, 시진핑과 왕치산을 이간했으나 실패했다. 나머지 리잔수, 왕양, 후춘화 등 친시진핑 사람들도 선전계와 중앙기율위원회 등 주요부문을 장악한다.

친장쩌민 성향이 짙은 한정이 상무위원 명단에 포함된 것을 두고, 이미 대세가 기운 장쩌민파 사람의 상무위원 선출을 막아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을 것이다. 현재 장쩌민파 중 상무위원회 자격 조건이 되는 사람은 한정뿐이다. 그의 상무위원 선출 여부는 시진핑이 19대 당대회 이후 장쩌민파를 제거하는 속도와 방식에 달렸다.

정치는 일상적으로 거래와 타협, 담판과 정치적 이익 교환 등을 통해 갈등을 해결하는 일이 다반사다. 큰 변수가 없다면 현재 안정을 추구하는 시진핑식 책략 하에 ‘쑨정차이 낙마-왕치산 유임’이란 정치적 교환으로 한정이 상무위에 들어갈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한정이 정치 국면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지는 못할 것이다. 상무위원 7인 중 시진핑을 제외한 5명이 시진핑의 사람이기 때문에 한정이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또한 19차 당대회 이후 더욱 대세가 기울 장쩌민파를 위해 목숨을 내걸고 시진핑에 대항하기도 어렵다. 오히려 장쩌민파를 거슬러 친시진핑으로 돌아설 가능성이 크다.

2안 : 왕치산과 장쩌민파 모두 배제

2안은 시진핑이 7상8하 관례에 따라 왕치산을 유임하지 않되 한정도 배제한다는 구상이다. 비록 왕치산은 상무위원에서 빠지나 왕치산식 맞춤 디자인한 국가감찰위원회를 주관하면서 계속 시진핑을 도와 반부패를 추진한다. 시진핑은 권력 기반이 안정됨에 따라 지속해서 중공 고유의 틀과 관례를 타파해 점차 상무위원의 권력을 약화하고 최종에 가서는 상징적 의미만 남게 할 것이다.

3안 : 상무위원 7인→5인 축소, 강력한 반부패 척결

3안은 시진핑이 상무위원을 7인에서 5인으로 줄여 그를 포함한 리커창과 리잔수, 왕양, 후춘화로 구성하고 왕치산은 여전히 국가감찰위원회를 맡아 반부패를 계속한다는 구상이다. 3안은 시진핑이 개의치 않고 정치 게임의 규칙을 크게 바꾸고 정적(政敵)인 장쩌민과 쩡칭훙에게 강력하고 신속한 수단을 취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채택될 가능성이 가장 낮은 시나리오다.

이 외에도 다른 인선안이 있을 수 있지만 상무위원이 어떻게 구성되더라도 장쩌민파의 대세가 기울면서 대거 퇴출당한다는 것은 공통적일 것이다.

사실 시진핑 당국이 현재 맞닥뜨린 정치적, 사회적 국면은 상기된 현안보다 더 심각하고 중요하다. 장쩌민파가 저지른 범행을 어떻게 청산하고, 마르크스-레닌주의가 100년간 중국인과 중국 사회에 끼친 위기와 재난을 어떻게 풀어가며 어떻게 중국을 정상 궤도에 올려놓을 것인지, 또한 공산당이 파괴한 중국의 5천년 전통문화를 어떻게 되살려 융성시킬 것인지 하는 이것들이야말로 시진핑 앞에 놓인 더욱 관건적인 문제다.

*이 기사는 저자의 견해를 나타내며 에포크타임스의 편집 방향성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