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상반기 해외도피사범 582명 검거…“비밀경찰서 존재 방증”

강우찬
2023년 08월 11일 오후 5:13 업데이트: 2023년 08월 11일 오후 5:13

중국의 상반기 해외 도피 부패사범 검거 실적을 두고 타국의 사법주권을 침해한 또 하나의 증거라는 분석이 나왔다.

관영 중국중앙(CC)TV에 따르면, 올해 1~6월 중국에 송환된 해외 도피 부패사범은 582명, 회수한 불법 자금은 19억3200만 위안(약 3526억원)에 달했다.

이번에 붙잡힌 582명에는 ‘적색 수배자 100명’ 중 한 명이 포함됐다. 또한 100명에는 속하지 않았으나 죄질이 중한 적색 수배자 25명도 포함됐다고 방송은 전했다.

‘100명의 적색 수배자’는 중국이 2015년 4월 발표한 ‘해외로 도망간 대표적인 비리 사범’으로 지금까지 62명 이상을 송환했으나 아직 38명이 남은 상태다.

해외 도피 부패사범은 대부분 중국의 중앙정부나 지방정부의 중간급 이상 공직자들이다.

이들은 언제든 해외도 도망갈 수 있도록 처자식과 자산을 해외로 빼돌리고 본인만 남아 권력형 비리를 저지르다가 기회를 봐서 달아나는 행태를 보여 중국의 골칫거리가 돼 왔다.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중국 공무원과 가족 100만 명 이상이 자산을 해외로 빼돌린 것으로 추산되며, 중국 중앙은행은 이들의 해외 도피자산이 수백조 원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한 바 있다.

여우사냥, 톈왕…돈 들고 달아난 간부 체포작전

중국은 2014년 7월부터 해외도피 부패사범을 중국으로 송환하는 작전인 ‘여우사냥(獵狐)’을 시작하고 이듬해부터 유사한 ‘톈왕(天網·하늘의 그물) 행동’을 개시했다.

관영 신화통신은 톈왕행동에 관해 “여우사냥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라고 설명한다.

여우사냥은 공안부가 주도하는 체포작전이지만, 톈왕행동은 중국공산당의 인사기관인 중앙조직부를 비롯해 최고검찰원, 인민은행 여러 부서가 참여하며 경찰력은 물론 외교·금융 수단까지 총동원하기 때문이다.

공산당 감찰기관인 중앙기율위원회는 작년 9월 홈페이지를 통해 “지난 5년간 진행한 ‘톈왕행동’으로 6900여 명을 체포해 327억8600만 위안(약 5조6천억원)을 회수했다”며 “이 중 328명은 강제송환, 821명은 체포, 45명은 범죄인 인도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 우젠충 타이베이 해양과학기술대 교수는 RFA에 “범죄인 인도는 100명도 안 되고 체포가 800명 이상이라는데, 문제는 체포를 현지 경찰이나 사법당국이 했다는 것인지 아니면 중국 비밀경찰이 집행했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는 점”이라고 평가했다.

중국-대만 관계 전문가인 우 교수는 “당연하게도 중국 공안은 해외에서의 법을 집행할 권한이 없다. 범죄자는 해당 국가와 체결한 범죄인 인도조약을 통해서만 넘겨받을 수 있다”며 중국이 타국에서 불법 비밀경찰서를 운영하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지적했다.

공산당 중기위는 작년 5월, 중국농업은행 장쑤성의 한 전직 지점장 쑨펑(孫鋒)을 체포해 송환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의 체포 소식은 다수 언론이 대서특필했고, 반부패 운동의 중대 실적으로 평가됐다.

“중국 비밀경찰서, 해외 체류 중국인 송환 작전 거점”

적색수배자 100명 중 61번째로 체포된 쑨펑 전 지점장은 재직 당시 8700만 위안(약 158억원) 이상을 편취하고 이 중 4천만 위안 이상을 해외로 빼돌린 다음 2011년 12월 해외로 달아났다가 도피생활 10여 년 만인 2022년 5월 송환됐다.

당국과 관영매체는 쑨펑이 어느 나라에 숨어 있다가 체포됐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다만 인민일보는 작년 9월 “당국은 500만 장 이상의 사진을 분석해 얻은 단서로 쑨펑 가족의 해외 은신처를 파악하고 중앙부처가 전염병(코로나19 사태) 영향을 극복하고 단호하게 공격했으며, 외국 법 집행기관의 도움으로 쑨펑을 체포할 수 있었다”고 보도했다.

인민일보는 또한 “톈왕의 그물망이 더욱 촘촘해지고 있다”며 중국 공산당의 반부패 작전이 국제협력을 통해 해외에서 더욱 강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우 교수는 “중국은 사진 500만 장을 어디서 입수했을까”라며 당국이 해외 도피 부패사범 검거를 내세워 해외에서 불법적으로 정보 수집 활동을 벌이고 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중국의 해외도피 부패사범 추적작전인 ‘톈왕행동’은 줄여서 ‘톈왕’으로 불리기도 한다. 공교롭게도 톈왕은 중국 국내에서는 정부의 디지털 감시 시스템을 가리키는 용어로 쓰인다.

공산당은 2004년부터 ‘범죄자를 추적하겠다’는 구실로 전국에 감시카메라를 설치하고 목표한 인물을 추적하는 통합적인 시스템을 구축해 왔다.

이후 디지털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안면인식 기술이 적용된 감시카메라를 지난해 말 기준 최소 5억 대 이상 가동하는 등 단순히 범죄자 추적을 뛰어넘어 전 국민을 감시하는 시스템으로 대폭 강화됐다.

지난해 공개된 허페이 국가과학센터 홍보영상에는 인공지능(AI)으로 영상을 분석, 공산당의 사상 교육 콘텐츠를 시청하는 교육생들의 시선과 얼굴 표정 등을 분석해 교육에 얼마나 적극적인지 판단하는 내용이 담겨 ‘세뇌 시스템’ 논란이 일기도 했다.

중국 문제 전문가 탕징위안은 “자국민 감시 시스템과 해외 도피 부패사범 추적작전에 모두 ‘톈왕’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며 “단순한 우연일 수 있지만, 중국인들이 가장 미워하는 해외 도피 부패사범 체포에 따른 호의적 반응을 자국민 감시 시스템에도 연결 지으려는 의도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대만으로 망명한 1989년 6·4 톈안먼 학생운동 지도자 출신의 반중공(중국 공산당) 인사인 궁위젠(龔與劍)은 “중국은 톈왕을 해외 도피 부패사범 송환을 위한 정의구현 수단처럼 선전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인권탄압 의도를 감추고 있다”고 비판했다.

궁위젠은 RFA에 “중국은 해외로 피신한 반체제 인사들의 약점을 잡으려 해외 감시망을 동원한다”며 “이렇게 잡은 약점을 이용하거나 중국 내 가족, 친구를 위협해 ‘자발적’ 귀국을 종용한다. 외국 정부에는 신병인도 요구를 정당화하려 해외 반체제 인사들에게 ‘범죄자’라는 누명을 씌우기도 한다”고 했다.

스페인에 본부를 둔 인권감시단체 ‘세이프가드 디펜더스’는 지난해 말 중국 당국이 세계 53개국에 최소한 102개 이상의 비밀경찰서를 설치·운영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르면 비밀경찰서의 주된 임무는 해외에서 활동하는 민주화 운동가, 반체제 인사를 감시하고 탄압해 본국에 송환하는 일이다.

중국의 비밀경찰서는 해당 국가 정부의 허가를 받지 않은 불법 조직이다. 지난 4월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뉴욕에서 비밀경찰서를 운영한 혐의로 중국인 2명을 체포해 기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