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신격화’ 점입가경…사용한 컵, 앉았던 의자까지 전시

한동훈
2023년 08월 30일 오후 6:44 업데이트: 2023년 08월 30일 오후 6:44

중국에서는 시진핑 공산당 총서기에 대한 개인숭배가 과거 모택동 시대를 방불케 하는 ‘ 신격화’의 단계로 진행되고 있다.

시진핑이 앉았던 의자나 사용한 컵 등 그의 손길이 닿았던 물건을 전시하는 현상이 중국 각지에서 포착된다. 일부 도시에서는 시진핑 어록을 낭독하는 코인 노래방 유사 시설까지 출현하고 있다.

전통문화를 ‘낡은 것’이라며 때려 부순 문화대혁명이 3년째에 접어든 1968년, 중국에서는 때아닌 ‘망고 숭배’의 광풍이 휘몰아쳤었다.

그해 8월 파키스탄 외무장관 알샤드 하산은 중국을 방문해 마오쩌둥을 만나며 열대과일인 망고 40개가 담긴 바구니를 선물했다. 마오쩌둥은 이 망고를 베이징의 ‘수도 노동자·농민 마오쩌둥 사상선전대’에 보냈다.

마오쩌둥이 하사한 망고를 받은 선전대는 감격한 나머지 마오 주석의 은혜를 모두와 나눠야 한다고 주장했고 40개에 불과한 망고를 전역에 나누기 위해 밀랍으로 망고 모형을 제작해 전국 곳곳에 보냈다.

진짜 망고를 받은 베이징 지역에서는 영구 보관하겠다며 포름알데히드 용액에 넣었다. 한 공장에서는 큰 물통에 넣어 그 물을 노동자들끼리 한 컵씩 마심으로써 마오 정신을 본받겠다고 다짐하는 계기로 삼기도 했다.

모형 망고도 마치 마오쩌둥 본인 모시듯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지방에 망고가 도착하는 날, 지역에서는 큰 환영 축제를 열었다. 축하 퍼레이드를 연 곳도 있었다. 이는 맹목적 숭배가 가져온 광기를 보여준 사건으로 남았다.

시진핑 어록을 읽는 모습을 호소하는 중국 베이징시 정치협상회의 소속 공산당원들. 이들이 읽고 있는 책은 시진핑의 연설과 담화문을 모은 ‘시진핑담치국리정(習近平談治國理政)’이다(아래). | 중국망 화면 캡처
중국 길거리에 등장한 코인 노래방 형태의 시진핑 어록 학습방. | 엑스 @TGTM_Official 캡처

이처럼 극좌적 분위기가 지배했던 시절의 일로만 여겨졌던 사건들을 떠올리게 하는 현상이 5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오늘날 중국에서 재현되고 있다.

현재 중국에서는 시진핑이 사용한 찻잔, 전시장을 방문한 시진핑이 사용했다는 마이크, 시진핑 서 있었던 보도블록과 앉았던 의자, 식기나 컵, 그릇, 마이크 등을 ‘성물(聖 物)로 삼아 전시하고 있다.

심지어 한 욕실용품 제조업체는 시진핑이 살펴보았다는 변기를 전시해 기업 홍보에 사용하고 있다. 해당 변기는 2019년 7월 시진핑의 네이멍구 시찰 때 한 주택을 둘러보는 과정에서 본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에는 기업의 과한 마케팅 정도라는 반응이 많았으나, 요즘에는 또 하나의 ‘시진핑 숭배’라는 각도에서 해석되고 있다. 시진핑 신격화가 곳곳에서 이뤄지고 있어서다.

중국 각지에서 전시 중인 시진핑 사용 물품들. 서 있었던 자리를 그대로 보존한 곳도 있다(왼쪽 위에서 세번째).| 엑스 @GvqVd6J2jdCOJYP 화면 캡처
시진핑 주석이 “보고 갔다”며 한 중국 기업이 전시 중인 변기. 사실임을 입증하기 위해 시찰 장면을 담은 사진과 설명이 담긴 안내문을 앞쪽에 세워 뒀다. | 화면 캡처

시진핑 집권 3기가 시작된 작년 11월 10일 중국 교육부는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시진핑 사상)’에 대한 교육 강화 방침을 발표하고 2025년까지 초·중·고교에 정치사상 교육 전담 교사를 두기로 했다.

앞서 같은 해 10월 채택한 당 규약(당장) 개정안에서는 공산당원이 반드시 지켜야 할 의무로 ‘시진핑 총서기의 당 중앙 핵심 지위 수호’, ‘시진핑 사상의 지도적 지위 확립’을 규정했다. 중국에서 당 규약은 법률보다 상위의 개념이다.

시진핑 신격화는 지방정부의 종교 정책에서도 드러난다. 일례로 허난성 정부는 지역 내 모든 기독교인 가정에 마오쩌둥과 시진핑의 초상화를 걸도록 했다. 신보다 공산당 지도자가 우선하도록 한 것이다.

중국 시사 평론가 장광위(姜光宇)는 “나치의 히틀러, 리비아의 카다피, 이라크의 후세인 같은 전례를 볼 때, 우러나온 민심이 아니라 강요된 숭배를 받았던 독재자들은 파국을 맞이했다”며 “이는 역사가 남긴 교훈”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직 시진핑 망고 정도까진 아니지만, 시진핑이 사용한 물건을 호기심 이상으로 떠받들고 전시하는 모습은 중증으로 진행하는 단계라고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제로 코로나 실패 시진핑, 대약진 후 마오쩌둥”

중국은 ‘초고도 감시사회’로 불린다. 주민을 대상으로 한 정부의 감시활동이 개인의 신원뿐만 아니라 활동, 사회적 관계로까지 확산한 것으로 알려졌다.

작년 6월 뉴욕타임스(NYT)는 중국 공안의 감시장비 입찰 관련 서류를 1년 이상 분석해 감시 카메라에 주변 수십 m 반경의 사람 목소리까지 녹음할 수 있는 장비를 부착, 분석을 거쳐 영상과 음성까지 모두 데이터베이스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미 5억 대 이상의 감시카메라로 촘촘한 그물망을 펴고 있는 상황에서 특정인 목소리만으로 신원을 확인하고 주변 인물까지 함께 추적할 수 있는 감시 시스템을 가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범죄자 추적이란 명분으로 생체 정보도 수집한다.

인터넷에서도 여론의 동향을 철저히 검열한다. 중국 정부에 비판적이거나 공산당 지도자를 조롱하는 글이나 이미지는 곧 삭제되고 해당 게시물을 올린 계정은 차단당한다. 공안이 연락하거나 찾아가 위협을 가하는 일도 흔하다.

그러나 이런 감시 시스템을 도입하고도 여전히 시진핑에 대한 불안감이 역력하다. 마오쩌둥과 시진핑의 차이라면 검열과 통제 속에서도 중국인이 점점 독재를 거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마오쩌둥은 확실히 광신적 수준의 숭배를 받았지만, 시진핑은 자신이 숭배를 창출해야 하는 상황이다. 따라서 시진핑이 추진하는 ‘제2의 문화대혁명’과 마오쩌둥의 문화대혁명은 형태는 비슷하지만 맥락은 전혀 다르다.

1950년대, 마오쩌둥은 의욕적으로 대약진 운동을 개시했으나 수천만 명의 아사자를 발생시키고 중국 경제를 크게 후퇴시키는 등 엄청난 실패에 대한 책임으로 당시 부주석인 류사오치(劉少奇)에게 주석직을 물려주고 권좌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막후에서 여전히 실권을 발휘하려던 마오쩌둥은 상황이 뜻대로 되지 않자 홍위병을 부추겨 문화대혁명을 일으켰고, 혼란상을 이용해 권력을 탈환했다.

시진핑은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려는 제2의 문화대혁명을 일으키던 도중, 코로나19 사태를 맞았고 최고 권력자로서 가혹한 방역정책인 ‘제로 코로나’를 결정했다. 그리고 이제 그 결정에 따른 책임을 지고 있다.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었던 중국은 제로 코로나를 거치며 경제 활력을 잃어버리고는 회복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정권에 대한 신뢰도 추락했고 중국은 마침 국제사회에서도 외교적으로 고립이 심화하는 상태다.

현재 시진핑은 대약진운동 실패 후의 마오쩌둥에 가깝다. 그러나 불만을 표면상의 최고 권력자에게 쏟아붓게 만들기만 하면 됐던 마오쩌둥과 달리 시진핑은 자신이 최고 권좌에 있어 책임 돌릴 곳이 마땅찮다.

미국과의 갈등, 반일 정서, 대만과의 통일 등을 불쏘시개로 삼고 있지만 문제는 중국인들도 예전 같지 않다는 점이다. 청년들은 이미 제로 코로나 때 백지 운동으로 한 차례 정권에 맞선 바 있다. 자칫 불길이 현 정권으로 향할 수도 있다.

아참, 시진핑이 앉았던 의자는 한국 서울대에도 9년째 전시돼 있다. 2014년 시진핑 부부 방문 때 앉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진핑 신격화가 성공한다면 성지(聖地)될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