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 민주주의, 선관위 그리고 유튜브 채널 ‘시크릿’

한동훈
2020년 06월 10일 오전 4:20 업데이트: 2021년 05월 16일 오후 1:15

이번 4·15 총선을 거치면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한바탕 홍역을 앓았다.

사전투표의 이례적 득표율, 선거용지 큐알(QR)코드 사용, 접힌 자국이 없는 선거용지, 화웨이 5G 장비 통신망 사용 의혹, 인지도 낮은 서버업체와 계약 등 ‘역대급’ 부정선거 논란에 휘말렸다.

총선이 끝난 후에도 한 달 이상 논란이 이어지자, 중앙선관위는 사상 초유의 투·개표 시연회를 개최하며 부정선거 의혹 해소에 직접 나서기까지 했다.

중앙선관위에 의심스러운 눈초리가 쏟아진 건 그만큼 역할과 책임이 막중해서다. 선거는 민주주의 꽃이고, 이를 관리·시행하는 선관위는 민주주의 파수꾼이다.

중앙선관위는 유권자들의 공정한 선거 참여를 장려하는 케이블 채널 ‘한국선거방송’과 공식 유튜브 채널도 운영한다.

“선관위가 중국이랑 무슨 관계인가요?”

부정선거 의혹이 한창 달아오르던 지난 5월 중앙선관위 유튜브 채널의 한 다큐멘터리 시리즈가 유권자 일부의 관심를 끌었다.

‘민주주의와 리더십’을 주제로 총 10편 제작된 이 다큐 시리즈 가운데 7편이 저우언라이(周恩來·주은래), 덩샤오핑(鄧小平·등소평), 왕후닝(王滬寧) 등 중국 정치인들을 소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네티즌은 이같은 내용을 국내 포털 게시판에 정리해 올리고는 “한국의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중국이랑 무슨 관계가 있다고 저런 영상을 올리느냐, 공산당에 중국인이 선거로 뽑은 정치인이 있기는 있나?”라고 의문 부호를 찍었다.

네이트 판 화면 캡처

중화인민공화국(중공)은 공산당 일당 독재국가다. 선거가 있기는 있다. 그러나 민주국가의 선거와는 다르다. 당의 결정을 확인하는 요식행위에 그친다.

직접선거는 기초행정 단위에서 지역 인민대표를 뽑는 선거가 유일하고 그 외는 모두 대표들이 상급 단위 대표를 뽑는 간접선거다.

지역 선거는 선거운동이나 유세, 공약 발표가 없고, 입후보하려면 당이나 주민 다수의 추천을 받아 한다. 그러나 당의 추천을 받지 않은 후보가 당선되는 일은 없다.

‘1%만 아는 리더들의 비밀, 시크릿’(이하 시크릿)이라는 제목의 이 다큐는 그 기획의도를 “각국 지도자들의 리더십과 정치·경제적 성과를 살펴 선거의 중요성에 대한 시사점을 위해서”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선거의 중요성에 대한 시사점”과 밀실정치인 중국 공산당 시스템 사이에서는 연결점이 보이지 않는다.

구글 검색 결과

다큐 제작진이 시리즈 첫 회에서 ‘글로벌 지도자’로 중국공산당 중앙서기처 서기 왕후닝을 선정한 점도 눈길을 끈다.

2018년 9월 21일 나란히 업로드된 1,2편에서는 다큐는 진행자와 전문가 2명의 대담 형식으로 왕후닝의 학창시절과 성격, 출세과정을 소개했다.

또한 왕후닝이 장쩌민(江澤民),  후진타오(胡錦濤), 시진핑(習近平) 등 중국 주석 3인의 통치이념 기획자임을 설명하는데 영상 분량 상당부분을 할애했다.

그러나 왕후닝이 다른 지도자들에 비해 국내 인지도나 무게감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출연자들은 ‘지혜 주머니’ ‘킹메이커’ ‘중국의 브레인’ 등의 친숙한 용어로 설명을 시도했다.

왕후닝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 겸 중앙서기처 서기 | WANG ZHAO/AFP/Getty Images

중화권 정치평론가 사이에서 왕후닝은 ‘시진핑의 책사’로 불린다. “지도자의 생각을 잘 읽고 포장하는 데 능하며, 자신의 생각을 중국 공산당 내부의 언어로 표현해 낼 줄 아는 인물”이라는 평가다.

한 언론인은 더 직설적으로 그를 “정치 분장사”로 묘사했다. “저질 정치를 그럴듯하게 보이게 하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현재, 해당 다큐 영상은 전편이 내려졌고 ‘민주주의와 리더십’이라는 코너도 삭제돼 찾아볼 수 없다.

홍역과 비슷한 질병으로 수두가 있다. 홍역은 한번 앓고 나면 평생 면역이 되지만, 수두는 바이러스가 체내에 남아 훗날 대상포진으로 재발한다.

부정선거 논란이 한풀 꺾였지만, 지금도 강남역에는 매주 부정선거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소규모 시위가 벌어진다. 중앙선관위가 괜히 의혹 살 일이 없어야겠다.

*이 기사는 저자의 견해를 나타내며 에포크타임스의 편집 방향성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