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정치전 못 깨달으면 한국도 위험” 韓·美·호주 학자들 한목소리

이윤정
2023년 08월 22일 오후 9:44 업데이트: 2024년 01월 6일 오후 8:27

8월 22일 오후 1시 30분, 서울 종로구 서울글로벌센터 9층 국제회의장에서 ‘중국의 정치전과 자유민주주의의 위기’를 주제로 국제회의가 개최됐다.

한반도선진화재단(이사장 박재완)이 세계지역학회(KAAS·한국회장 주재우)와 공동으로 개최한한선 국제회의 2023’에선 국내외 중국 전문가와 정책 실무자, 외교관, 언론인 등이 함께 논의하는 장이 마련됐다. 

이번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호주의 클라이브 해밀턴 교수와 미국의 케리 거샤넥 교수, 한국의 계명대 이지용 교수가 주제 발표를 했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와 박병광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실장이 사회를 맡아 진행했다. 토론에는 이철재 중앙일보 외교안보 부장, 이춘근 박사, 이창형 대륙전략연구소 소장과 조현규 국방외교협회 교수가 참여했다.

해밀턴 “中 정치전에 포획된 韓 엘리트들…시민사회가 나서야”

호주의 클라이브 해밀턴 교수 | 이유정/에포크타임스

1세션에서 호주 찰스 스터트 대학 부총장인 클라이브 해밀턴(Clive Hamilton) 교수는 “중국의 목표는 호주를 중국의 영향력 내로 흡수하고, 미국-호주 동맹을 파괴하는 것”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중국은 주로 경제적 이익과 정치적 특혜 등을 미끼로 호주 사회의 엘리트들을 포섭해 오고 있다”며 “그 결과 호주의 유력 정치인, 기업인, 정당, 교수, 언론인 등이 친중 여론을 이끌고 있다”고 폭로했다. 중국이 통일전선 공작을 통해 호주에 거주하는 화교와 중국인들을 친중 대열에 앞장세우면서 호주에 깊은 영향력을 행사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해밀턴 교수는 2021년 6월 국내에 번역·출간된 ‘중국의 조용한 침공(Silent Invasion)’의 저자이다. 중국 공산당이 다른 나라의 정치, 기업, 언론, 대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영향력을 확장해 온 실태를, 호주 사례를 통해 적나라하게 파헤친 이 책은 호주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중국의 침탈에 대응해 정책을 수정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이어지는 그의 설명이다.

“2017년 집권한 턴불(Trunbull) 자유당 정부는 중국의 간섭에 대응하는 정책을 전개했다. 이에 중국은 경제무역 보복과 늑대전사(전랑) 외교로 호주를 압박했으나, 이는 오히려 호주 사회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호주 사회는 중국의 경제 보복에 따르는 희생을 감수하면서 호주의 주권과 독립성을 유지하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앞서 중국은 지난 2020년 호주 정부가 코로나19 팬데믹을 두고 코로나19 발원지에 대한 국제 조사 지지를 촉구하는 등 미국 편에 서서 ‘중국 책임론’을 들고나오자, 호주 와인·랍스터 등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고 석탄 수입을 금지했다. 그러다 최근 원자재 가격이 크게 오르자, 중국은 올 초 호주 석탄 수입을 재개했다.

하지만 호주 내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해밀턴 교수는 “호주의 친중 엘리트들은 지속해 중국에 대한 유화정책을 주장하고, 친중 노동당이 집권하면서 중국의 침탈과 간섭에 대항하는 호주의 정책은 후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5월 중국 정부와 날을 세우던 스콧 모리슨 전 총리(자유당)가 물러나고 앤서니 앨버니지 노동당 정부가 출범하자 원자잿값 부담을 피하고 싶은 중국이 해빙 무드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해밀턴 교수는 “중국은 노동당 정부의 정책 선회에 호응해 호주에 대한 보복 정책을 완화한 상태”라며 “하지만 중국의 ‘보복 완화’와 ‘우호적’ 가면은 정치전을 강화하기 위한 시그널”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중국공산당에 대한 지속적 경계와 대응만이 자유세계의 자유와 주권을 지킬 수 있는 길”이라고 역설했다.

마지막으로 해밀턴 교수는 한국 사회도 중국 정치전의 예외가 될 수 없다는 우려와 함께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한국이 중국에 대해 정상적 외교만을 유지한다면, 반드시 중국의 정치전에 희생물이 될 것”이라며 “중국의 정치공작전에 ‘포획’된 한국 사회 엘리트들과 달리, 한국의 시민사회가 중국의 침탈에 대응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단, 한국이 중국의 침탈에 단호하게 맞설 경우, 한국은 반드시 그에 따르는 ‘보복과 고통’을 감수해 낼 각오가 돼 있어야 한다고 전제했다.

그는 한국의 많은 도시가 중국 도시와 자매도시 협약을 맺고 있는 점을 언급하며 중국 공산당은 관계 구축 이후엔 이를 무기 삼아 베이징의 요구를 수용하도록 압박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아울러 중국의 인지전과 여론전에 대한 각별한 경계와 주의를 당부하며 “한국은 중국의 영향력 공작에 맞서 장기전을 치를 준비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거샤넥 “한국도 대만·태국 사례 반면교사 삼아야”

미국의 케리 거샤넥 교수 | 이유정/에포크타임스

2세션 첫 번째 발제자로 나선 케리 거샤넥(Kerry Gershaneck) 대만국립정치대 교수는 태국과 대만에 대한 중국의 정치전 전개 현황과 문제점을 설명했다. 현재 나토(NATO) 펠로우로 활동 중인 거샤넥 교수는 35년 넘게 국가 정보, 방첩, 국제관계, 전략적 소통 등을 연구해 왔다. 중국의 계속되는 정치공작 행위를 태국과 대만의 사례를 중심으로 소개한 ‘중국은 지금도 전쟁을 하고 있다’를 비롯해 ‘중국의 정치전’, ‘중국의 미디어전’ 등을 저술했다.

거샤넥 교수는 “중국은 전통적 무력을 증강·투사하는 한편, 무력을 동원한 전면전 없이도 미국과 자유세계를 파괴하고 세계 패권을 장악하기 위해 정치전을 전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세계 패권 장악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중국의 전략을 ‘싸우지 않고 이기는’ 전략과 ‘싸워서 이기는’ 전략의 혼합전으로 설명했다.

그는 중국의 정치전과 정치 개입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대만과 태국을 들었다. 태국에서는 친중 군부 쿠데타가 성공했고, 현재의 태국 정치 상황이 지속될 경우 태국은 실질적인 친중 종속 국가로 전환될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는 중국의 성공적인 정치전의 결과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전방위적·종합적 정치전은 대만에서도 똑같이 전개됐다. 중국은 대만 총통선거와 지방선거에 친중 정치인을 선정하고, 전폭적 지원을 통해 정치권력을 장악하도록 지원해 오고 있다. 대만은 중국의 2019년 홍콩접수 사태를 목도하고 뒤늦게나마 중국의 정치전을 차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거샤넥 교수는 “대만은 특히 (중국의 침투를 막기 위해) ‘반(反)삼투법’을 제정해 효과적으로 중국의 정치전과 정치 개입을 차단할 수 있었다”며 “이것은 대만이 2020년 대만 총통선거에서 선거 무결성을 확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부연했다.

한국에 대한 충고도 잊지 않았다. 그는 “중국이 전 세계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에서 전개하고 있는 정치전을 한국에 강도 높게 전개하고 있다”며 중국 정치전이 비슷한 패턴을 보인다는 점을 한국도 하루빨리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한국도 중국이 한국에 대해 전개하는 정치전과 정치 개입 양상을 파악하고, 다른 국가의 성공적 대처 사례와 한국만의 특수한 대응 방식으로 한국의 자유와 주권을 지킬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그러면서 한국이 아시아와 세계 자유 진영의 모범적 리더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 산업기술 등의 역량을 감안할 경우, 한국은 중국·북한과 같은 전체주의 국가들의 악의적 정치 개입을 차단하고 자유와 인권을 수호하는 세계적 중심 국가이자 리더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만약 자유민주주의 모범 사례인 한국이 중국의 정치전 침탈의 실상을 인식하고 이에 대한 대응을 전개할 경우, 한국의 사례는 다른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에 모범적 사례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지용 “한국, 中 초한전 주요 대상…인식·대응 서둘러야”

이지용 교수 | 이유정/에포크타임스

한국의 이지용 계명대 교수는 “자유세계는 현재 중국과 전쟁 중”이라며 “중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들과 전쟁의 방식이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지난 3월 ‘중국의 초한전: 새로운 전쟁의 도래’를 출간했다. 그간 논문, 매체 기고문, 강연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중국의 초한전의 위험성을 경고해 온 이 교수는 이 책에서 중국 공산당의 세계 패권 장악 전략과 그 위험성, 한국의 대응 방안을 집대성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중국 공산당은 그들만의 전쟁 방식을 이른바 ‘초한전’으로 개념화했다. ‘초한전’은 전쟁과 관련한 지금까지의 그 어떠한 경계와 금기도 초월하는 무제한 전쟁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정치공작전, 통일전선공작전, ICT 정보통신전, 여론전·미디어전·인지전·법률전, 교육문화전, 마약범죄전, 경제투자전, 무역전, 생물학전 등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 걸쳐 모든 한계를 뛰어넘는 전쟁 방식이 포함된다.

그는 “초한전의 주 대상 중 하나가 바로 한국”이라며 “수많은 증거가 있는데도 한국의 정부와 사회는 문제의식조차 없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중국의 정치전과 정치 개입을 차단하고 한국의 자유와 주권을 지키기 위해 다음과 같은 정부 차원의 대응을 주문했다. ▲대만처럼 외세의 침투에 대응하는 ‘반삼투법’ 제정 ▲국가정보원 등 안보 기관의 국내 방첩기능 유지 ▲유관 안보공안 기관들로 구성된 공동 대응 조직 설립 ▲ 선거무결성 확보를 위해 중국 등 악의적 세력의 직간접 개입 차단 ▲한국의 군·안보·사회기반시설 정보통신시스템에 장착된 중국 제품에 대한 전면적 검사와 재고 ▲한국의 사이버 담론장에 중국의 여론전 방지 등이다.

회의에는 국내외 주요 언론사와 주한 외교관, 국내 관련 연구기관들과 시민 단체들이 참석했다. | 이유정/에포크타임스